네 손을 내밀라 제 3 장 신적 권위를 직접 드러내신 기적들 기적 14 ►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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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막 11:12-14, 20-25, 참조:마 21:18-22
 만물이 소생하는 유월절 계절, 곧 오늘날 4월 중순경쯤 됐을 때였다. 3월초부터 잎이 나기 시작한 무화과나무는 제법 잎사귀가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틀 전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승리의 입성(入城)을 하신 예수님께서는 백성의 뜻대로 유대 왕으로 취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다시 성을 빠져나가 베다니로 가셨다. 백성들은 실망했고 제자들마저 망연자실(范然自失)했다. (210.1)
 “우리는 그분이 유대나라의 왕이 되셔서 로마를 무찌르고 우리를 해방시켜 줄줄 알았어.” (210.2)
 “글쎄 말이다.” (211.1)
 승리의 입성이 있은 지 하루 지나서 예수님께서는 동산에 나가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한숨 주무시지도 않고 붉은 태양이 예루살렘 성을 황금색으로 물들일때에야 다시 성전으로 향하셨다. 지친 선생님의 모습에서 제자들은 안쓰러움을 금할 길 없었다. 무화과 밭을 지나실 때에 너무나 시장하신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라도 따서 잡수시고자 하였다. (211.2)
 “옳지, 저쪽에 있는 나무로 가보아야겠군” (211.3)
 거기에 유독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어 예수님 눈에는 마치 열매가 많이 달린 것같아 보였다. 봄철에는 무화과나무에 잎사귀보다 열매가 먼저 달리기 때문에, 벌써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는 얼마나 많은 열매가 달렸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그곳으로 가시어 이리저리 훑어 보셨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잎사귀 외에 아무 열매도 없는 게 아닌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무화과나무에 주님은 그만 크게 실망을 하시는 듯했다. 사실 무화과나무는 일 년에 두 번 수확한다. 첫 번째는 3월 초에 잎이 나서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열매를 맺고 두 번째는 9월에 수확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무화과를 찾으신 4월에 열매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마가는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정확히 기록했다. (211.4)
 잠시 어떤 생각에 잠기셨던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에게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 저주를 내리시는 게 아닌가! (211.5)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211.6)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제자들은 잔득 호기심에 찼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제자들은 길을 갔다. (211.7)
 다음날 아침,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어제와 같은 길을 지날 때에 주님께서 저주한 무화과나무에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쪽에 잎이 무성했던 바로 그 나무가 뿌리까지 바짝 말라죽은 게 아닌가! 신기하게 생각한 베드로가 말했다. (211.8)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12.1)
 나무까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확인한 제자들은 그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212.2)
 그리스도께서 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죽게 했을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유대 나라의 임박한 멸망을 제자들에게 실물 교훈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비유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열매가 없으므로 망하게 된다는 것을 교훈하고자 하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이 비유를 해석하지 못하지만 화잇 부인은 영감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212.3)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행동화된 비유였다. 바로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무성한 잎사귀로 의기양양하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유대 민족의 상징이었다. 구주께서는 이스라엘의 파멸의 원인과 확실성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다. 이러한 목적에서 예수께서는 나무에게 도덕적 특성을 부여하여 거룩한 진리의 해설자로 삼으셨다”(시대의 소망 3권, 582). (212.4)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생애를 살았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오셔서 열매를 찾고자 하였으나 실패한 것처럼 그들에게서 아무런 열매를 찾지 못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 만민중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총애를 받았었다. 제사장 나라요 택함 받은 민족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선민(選民)임을 자랑하던, 외적으로 나타난 모든 것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나 내적으로는 교만하고 사랑과 자비가 없는 그야말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생활이었다. 거룩한 열정과 무아적인 헌신, 선교열, 이기심 없는 봉사와 섬김 등의 열매는 없었다. (212.5)
 열매는 맺지 아니하고 잎만 무성하던 나무는 주님의 저주로 말라죽었다. 이것은 하나의 경고이다. 열매 없는 생애를 사는 자들은 결국 멸망할 것을 표상했다. 무아적인 봉사의 열매, 동료에 대한 동정심, 회개의 열매, 영혼의 열매 등을 열어야 한다. 형식과 의식만 화려하고 내적으로 이타심, 선행, 자비, 품성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저주받아 말라죽은 무화과나무의 결국과 같이 될 것이다. (212.6)
 무화과 과원에 있던 모든 나무들은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처럼 열매가 없었다. 그러나 잎사귀가 무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아예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열매 없던 다른 나무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화잇 부인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213.1)
 “이 나무들은 이방인들을 대표하였다. 이방인들은 경건한 체하는 유대인들과 같이 열매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지 않았고 선하다고 거만하게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과 방법에 어두웠다”(시대의 소망 3권, 583). (213.2)
 어떤 면으로 생각하면 그들에게도 아직 희망은 있다. 이제 곧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가 열리게 될 것이다.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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