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7장 하나님, 법정에 계신 우리의 친구 IV.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인의 안식일
 우리는 지금까지 초대 교인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일요일을 채택했다는 사실을 살폈다. 반면에, 많은 저술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 예배를 특별히 요청했기 때문에 일요일 예배가 채택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2세기와 3세기의 저술가들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일요일을 준수해야 할 증거로서 단 한 구절의 성경절도 제시하지 않았다. 바르나바스, 이 그나티우스, 유스티노스, 이레나이우스, 테르툴리아누스, 로마의 클레멘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게네스, 키프리아누스, 빅토리누스, 그리고 예수님과 동시대인이거나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저술가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으로부터나 혹은 성경의 어느 부분에서 그 같은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135.5)
 2, 3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특별한 뜻을 가지고 일요일을 준수한다면 예수님이 기뻐하실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교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주 성경상의 증거를 제시하면서도 유독 주일 중 첫 날을 준수해야 하는 근거로 성경의 계명을 인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이것은 8세기와 그 이후에 예수께서 네째 계명의 안식일을 제칠일에서 제일일로 변경토록 명하셨다는 내용의 고대 문서들이 왜 “발견”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피터 하일린(Peter Heylyn) 교수는 광범위한 연구44 끝에 “주의 날을 표시하는 칭호로서 그리스도인 안식일(Christianorum Sabbatum)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 기원 1,100년경에 페트루스 알폰소(Petrus Alfonsus)”임을 알아냈다. (135.6)
 “주를 사랑한 안식일 준수자들”
 이제는, 일요일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안식일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초기 기독교도들에 관해서 살펴보자. 그들이 안식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135.7)
 

이디오피아의 동굴 사원에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다. (136.1)
 불행하게도, 그들이 남긴 저술은 하나도 없다. 그들이 전혀 저술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마르틴 루터 당시와 그 이후 시대에 살았던 안식일 준수 그리스도 인들에 대한 자료는 꽤 있는 편이다. 이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오히려 안식일을 준수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137.1)
 안식일 준수자들인 오스왈드 글라이트(Oswald Glait), 안드레아스 피셔(Andreas Fischer) 부부, 그리고 존 제임스(John James)는 유스티노스와 다른 일요일 준수자들이 2, 3 세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했듯이 16, 17세기에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이다. 존(John)과 도로시 트라스케(Dorothy Traske)와 존 밤프필드(John Bampfield) 같은 안식일 준수자들은 감옥살이를 했다. (137.2)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목숨을 바칠 만큼 그리스도를 사랑했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버리고 일요일을 채택했는가 하면, 역시 그분을 위하여 죽는 것도 개의치 않았던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을 포기하고 안식일을 택했던 것이다. (137.3)
 그러면, 어느 쪽이 옳았는가? (137.4)
 후기의 안식일 준수 그리스도인들과 초기의 일요일 준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안식일 준수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옹호하기 위해 특정한 성경 구절을 사용했다고 하는 것이다. (137.5)
 마르틴 루터는 교수로 봉직하던 가톨릭의 사제로서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즉 “성경, 그리고 성경만이”라는 원칙을 주장함으로써 전 유럽을 진동시켰고 종교 개혁을 시작하였다. 이에 경건한 신앙을 가진 수많은 가톨릭 교도들이 감동을 받아 루터의 지지자가 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루터교도들이 생명을 잃어야 했다. 크게 분노한 가톨릭의 주교들이 루터의 무리들을 무더기로 나무에 매달았다.49 (137.6)
 그러나, 루터 교도로 개종한 가톨릭 교도들 중에는 루터의 “성경만으로의” 원칙을 따라 성경 연구에 열중하던 중에 기독교 인의 일요일이 성서의 명확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때 가톨릭의 사제였던 루터교의 목사 오스왈드 글라이트와 안드레아스 피셔는 1527년에 “여호와 너의 하나님의 안식일”(출 20:8~11)인 성경의 안식일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137.7)
 루터는 그의 추종자들이 이렇듯 특이한 결론에 도달한 사실에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그는 글라이트와 피셔의 마음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뛰어난 신학자 몇 사람을54 보내 두 사람을 방문케 했다. 루터는 그들을 파견하면서 글라이트와 피셔에게 전하는 말을 부탁하였다. 루터가 그들에게 전한 말은 이렇다. 십계명은 전체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이지만 제칠일 안식일 만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실 때 철폐된 단순한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루터의 견해에 대한 토론은 141, 142페이지의 관련 문제와 해답의 항목을 참고할 것). 루터가 보낸 신학자들과 안식일 준수자들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37.8)
 1. 안식일은 의문(儀文)의 율법에 속하는 것인가?라고 루터의 신학자들이 물었다. 피셔와 글라이트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안식일 율법은 인간이 범죄 후에 제정된 제사와 할례의 율법 같은 것이 아니다. 의문의 율법은 죄인들로 하여금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상징적으로 제정된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 계명은 인간이 범죄하기 전 곧 인간의 창조와 더불어 제정된 제도이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은 인간에게 구세주를 상징하기 위해 의식들을 제정해야 할 필요가 생기기 이전에 제정된 것이다. (137.9)
 2. 그러나, 안식일 그 자체는 단순히 의식이 아닌가?라고 루터교들이 주장하였다. 피셔와 글라이트는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으며 십계명은 루터 자신이 인정했듯이 도덕적인 율법이다. (137.10)
 


기원후 1054년 당시의 안식일 준수 상황
주후 1054년은 기독교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안식일 준수 역사에서도 분수령을 이룬다. 그 해에 정교와 가톨릭은 서로를 파문하였다. 이 대분렬은 1967년까지 계속되었다.
1054년의 비극적인 분리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로마가 안식일을 반대한 것이다. 1053년과 1054년에 콘스탄티노플의 미가엘 세룰라리우스 대주교와 그의 조력자들은 로마 가톨릭이 우울한 안식일 금식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가톨릭 교도들이 안식일을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성경의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쁨의 날로 지정된 뜻을 심각하게 왜곡시켰다고 말하였다.
교황 레오 9세는 변경 요구를 묵살하였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이 베드로의 후계이므로 그의 말은 모든 신실한 기독교인이 순종해야 할 법이라고 주장하였다.
분노한 교황 레오는 교황 특사인 추기경 훔베르트를 명하여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에게 그의 “정교”“마귀와 그의 사자들”의 계통이라고 정죄하는 문서를 보내었다.
(138.1)
 


이 지도는 1054년에 기독교의 주종을 이루는 교파들을 설명한다. 가톨릭, 정교, 아르메니우스 파, 이디오피아 파로 그려진 지역에서는 일요일과 함께 안식일이 정규 예배일로 준수되었다. 집회로 모였을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우스 파와 이디오피아 파는 일요일과같이 안식일에도 휴식함으로 그 날을 존귀케 하였다.
7세기부터 네스토리우스, 아르메니우스, 콥트교회들은 모슬렘의 정복으로 인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생각과는 달리 초기 모슬렘들은 후기 모슬렘들과 다르게도 기독교도들이나 유대교도들에게 이슬람을 믿지 않으면 죽인다는 식으로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들에게 특별 부과세를 받았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을 조세 감소의 이유로 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점령지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크게 감소시켰다.
그리하여 가톨릭은 제칠일 안식일의 기독교 주요 반대자로 부상했다. 이것은 다니엘 7장이 가톨릭 교회를 “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한 ” 것으로 묘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을 배척하고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종교 개혁 이후에 가톨릭과 개신교에 의해 맹렬한 선교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 선교사들은 전세계에 안식일을 반대하는 가톨릭의 주장을 퍼뜨렸다.
(139.1)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에는 도덕적인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140.1)
 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안식일을 폐하시지 않으셨는가? 피셔와 글라이트는 또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폐하기는커녕 마태복음 5장 17, 1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 음을 받으리라”하셨다(마 5:19). (140.2)
 4. 그러나, 사도들이 안식일의 의무가 끝났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루터교도들이 질문 하였다. 피셔와 글라이트는 다시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바울은 로마서 3장 31절에서, 믿음으로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그것을 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야고보도 그의 편지에서(약 2:10~12) 십계명의 “하나”를 범함으로써 그 모든 것을 범한 사람이 된다고 경계하였다.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