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7장 하나님, 법정에 계신 우리의 친구 IV.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인의 안식일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된 것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의한 것이라는 가톨릭 학자들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틀린 것인지를 철저히 따져 보지 않고는 속이 편치 못할 것이다. (133.1)
 십계명에 대한 루터의 여러 가지 논평에 대해서는 141, 142 페이지의 “관련 문제와 해답”편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가톨릭 교도들의 주장이 최소한 하나의 근거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가톨릭은 대단히 일찍부터 몇몇 일요일 법률들을 제정하였다. (133.2)
 콘스탄티 누스 황제는 321년 3월 7일에 최초의 일요일 법령을 반포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가 최초의 기독교인 황제로 알려지긴 했지만 그의 첫 일요일 법령은 전반적으로 세속적인 것이었다. 이 법령은 “기독교인의 안식일”을 주창했던 것이 아니다. 일요일은 태양을 숭배하는 그의 이교적인 백성들 중에 유행했었다. 그는 확실히 그 날을 공휴일로 제정함으로써 이교도인들이나 기독교인 모두에게 기쁨을 주고 이로써 그의 통치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하나로 묶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133.3)
 그의 법령은 비 기독교적 언어로 표현되었다. 이 법령은 “이 숭고한 태양의 날에는 도시에 거주하는 관료들이나 백성들이 다 쉴 것이며, 모든 공장들도 문을 닫도록 하라”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농부들은 농사가 “땐를 다투는 것”이라는 사정이 참작되어 일요일 휴식에서 제외되었다.36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面)유럽에서 제정된 최초의 종교적인 일요일 법령은 가톨릭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 법령은 콘스탄티누스의 일요일법보다 상당히 엄격하였다. 이 법령에 의하면 “일요일에는∙∙∙ 사람들의 교회에 출석해야 하므로 농사일도 제쳐 놓아야”했다.37 (133.4)
 의미 심장한 이 규정은 프랑스의 오를레앙 제 3 차 공의회(The Council of Orleans)의 제28조에 나타나 있다. 이 제 3 차 오를레앙 공회의는 동고트 족의 세력이 파괴된 해, 즉 1260년 예언이 시작되는 해인 538년에 소집되었다. (133.5)
 이 때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8세기에 이르면,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신성한 의무들을 제칠일에서 첫째날인 일요일로 옮겼다고 하는 이상스런 옛 문서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그 하나가 “하늘에서 온 편지”라고 하는 것으로서, 예수께서 한 여인에게 일요일에 일하면 날개 달린 뱀이 날아와서 그녀의 유방을 낚아채 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고 했다).38 그 당시 교회법은 너무나 엄격하여, 어떤 곳에서는 일요일에 머리를 감았다 하여 7 일의 고행을 선고받은 사람도 있었다.39 (133.6)
 가톨릭 교도들이 루터 당시와, 그리고 트렌트 회의(Council of Trent)때 그들이 안식일의 의무를 일요일로 옮겼다고 주장했을 때는 그럴 만한 논점이 있었다. 가톨릭 교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율법을 변개시킬 수 있는 권위를 위임받은 것으로 믿고 있던 나머지 십계명의 변개 작업을 공공연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수행했다. (134.1)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을 기독교 예배의 날로 솔선하여 준수하기 시작한 것은 제 3 차 오를레앙 공회의 때도 아니고 콘스탄티누스의 일요일 법령이 반포되고서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이 자발적인 준수가 유래되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134.2)
 십계명은 제칠일을 안식일로 거룩하게 지키라 하였는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첫째 날을 거룩히 지키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134.3)
 자발적인 일요일 준수의 기원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자발적으로 준수하는 현상은 2세기 중엽 이전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그 동기였던 것 같다. (134.4)
 기원후 160년경에, 순교자 유스티노스(Justin Martyr)는 “일요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모이는 날”이라고 쓰고 있다.40 유스티노스는 여행을 많이 하여 견문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가 “우리 모두”라고 말했을때, 그는 그의 시대의 대부분의 신자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134.5)
 우리에게 이와 같은 소식을 전하고 있는 유스티노스는 주님을 크게 사랑하고 있던 사람이다. 165년경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바쳤다. 그는 로마 당국자에 의해 효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체포되기 얼마 전에, 그는 생명이 위태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자랑스러우며 그리스도인으로 발견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글이 포함된 작은 책자 “제 2변증서”를 출간했다.41 유스티노스는 활동적인 기독교 평신도였다. 그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에게 성경의 예언을 가르쳤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교회로 인도했다. (134.6)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모이는 것에 대해 유스티노스는 어떤 이유를 제시했는가? 그가 제시한 이유는 3 가지이다.

 (1) 일요일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2) 일요일에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셨다.

 (3) 일요일은 일곱째 날 뒤에 오는 “여덟째” 날이며, 주일의 순환에서는 다시 첫째 날이 되는 날이다.42 (134.7)
 이 “여덟째 날”의 개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초기 기독교의 여러 저술가들은 사내 아이가 출생한 지 8일 만에 받아야 했던 구약의 합례 의식과 기독교가 제 8일을 예배 일로 삼는 것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일곱째 날 다음의 여덟째 날은 일주일의 첫째 날과 동일한 날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제8일에 예배를 드립으로써 할례받은 이스라엘 인들에게 부여된 언약의 약속듣을 상속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 다른 그리스도교 저술가인 바르나바스(Barnabas)는 기원후 130년경에,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으로” 여덟째 날을 준수하고 있다고 말했다.43 바르나바스는 유스티노스와 같이 “그 날에 주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고 말했다. (134.8)
 초대 기독교인들은 일요일 예배를 옹호함에 있어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논리를 많이 제시했다. 예컨대 “그리스도는 새 율법이시다”라든지, “그리스도는 새 언약을 도입하셨다”든지, “그리스도는 재림 후에 제칠일 안식일에 해당하는 복천년을 허락하신 후에 여덟째 날에 해당하는 영원한 하늘의 안식(쉼)을 준비하실 것이다”라는 등의 논리가 그것이다.44 그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추종자들을 위하여 안식일을 계지하셨다고 주장한다. (134.9)
 그러나,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성경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135.1)
 복음서들은 반복해서 예수님께서 주일 중 첫째 날에 부활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45 따라서,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첫째 날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맞는 부활 기념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135.2)
 그러나, 더 고려되어야할 문제가 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던 당시에 안식일은 인간이 만든 잡다한 규정들로 덮여 있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양이나 소는 구덩이에서 건져낼 수 있지만 만성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그 날에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유전들을 무시하셨다(마 12:1-14). 일요일을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도 포기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안식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통이 만든 ‘율법주의적인 안식일’을 포기 하는 것이라고 추론했을 것이다. 부활의 기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일요일은 구세주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기에 대단히 적합한 기념비적인 날로 보였을 것이다. (135.3)
 우리는 “안식일을 포기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말을 간단히 사용해 왔다. 사실상 초대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일요일을 위하여 제칠일 안식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불확정적인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방법으로 제칠일 안식일을 계속 준수하였다. 제 2,3 세기에는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그리스도인에 관한 보고가 로마제국 전역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의 분포는 이집트, 투니시아, 터어키,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그 밖의 지역에 걸쳐 있었다.46 5세기에 이르면, 동로마 제국 내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정규적인 예배가 안식일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47 아르메니아와 이디오피아(Aksum)에서는 안식일이 일요일과 함께 휴식하는 날로 준수되었다. 안식일 예배가 전반적으로 이행되지 않은 지역은 주로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했던 서로마 제국에서였다(138, 139페이지 지도와 도표 참조).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