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행복하려거든(시편강해) 제 4장 나의 주 나의 하나님 25. 인생이 중년(中年)의 위기를 겪을 때
 일생의 겨우 1/4만을 성장(growing up)으로 보낸 뒤, 나머지 3/4은 쇠퇴(growing old)로 보낸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더디 깨닫고 뒤늦게야 인정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죽음을 부인하는 인간의 심산(心算)은 죽음의 전주(前奏)인 쇠퇴를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아직도 청춘으로 착각하는 중반기의 인생은 쇠퇴를 부인(denial)하려 든다. 그러나 이내 제시된 증거에 압도되어 수긍은 하지만 그것을 분노(anger)로 받아들인다. (263.3)
 삶의 기대와 꿈이 사로잡았던 인생의 오전을 이렇게 공허하게 만든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한 분노가 일시에 폭발하는 것이다. 분노의 대상은 남편이나 아내일 수 있고 부모나 자식일 수도 있다. 환경도 탓해 보고, 하나님과 세상의 무관심도 원망해 보지만, 결국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자신이 모든 것의 장본인임을 깨닫고 심한 자책(guilt)에 빠진다.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가중되는 심적 부담을 경감시키려 보상도 해보지만(bargaining) 끝내는 좌절을 수반하는 의기소침(depression)에 빠지게 된다. 어지럽도록 신속히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고 어느 새 뒤로 쳐진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무엇이었으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맥 빠진 낡은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63.4)
 이렇게 닥쳐온 신원(身元)의 위기(identity crisis)는 제2의 사춘기를 재연(再演)시키지만, 상황은 그때보다 사뭇 불리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제한당하고 가출이나 도피의 자유마저 박탈당한 현실에서 마음만 사춘기로 들볶이는 것이다. 헌옷처럼 빛바랜 가정생활, 인생의 전부가 아닌 자식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만, 이런 것들로 고통당하며 중년 인생의 고개를 넘는 사람이 80%도 넘는다는 사실이 비단 미국의 통계만은 아닌 것이다. (264.1)
 시온의 돌들과 흙을 나르며
 인생의 중반기인 중년 인생은 그 동안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키우며, 직장을 드나들며 허겁지겁 정신없이 살다가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제정신을 찾아 그 동안 잊었던 자신(自身)에게로 되돌아오는 때인 것이다. (264.2)
 그러나 다시 찾게 된 자신이 한낮의 기운 인생의 오후를 사는 무력해진 인간임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내 자기 연민(憐憫)에 빠지는 것이다. 자기 연민은 사람을 철저히 자기중심적이 되게 한다. 자기가 중심이 된 세상은 언제나 불안하고 불만스럽기 마련이다. 세상의 중심도 못되면서 중심(中心)에 자신을 두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자기중심적인 자기연민(伯己憐憫)의 늪에 빠진 중반 인생의 위기를 어떻게 헤어날 방도가 있는가? (264.3)
그렇다. 하나님은 모처럼 철이 난 성숙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중년 인생의 고뇌와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시고 치료하실 수 있는 영혼의 주치의이시다. 해 뜨는 아침 못지않게 해 지는 저녁 노을을 아름다운 낙조로 찬란하게 하시는 ∙∙∙
(265.1)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憐恤)히 여기나이다 ∙∙∙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02편 12~17절). (265.2)
 그렇다. 자기 중심적인 자기 연민의 외로운 자전(伯轉)을 그치고, 하나님 중심적인 천래(天來)의 공전(公轉)궤도에 들어서야 한다. 그러고서 지금 하나님이 회복시키고 계시는, 무너져버린 인간의 이상(理想) 세계인 시온의 재건에 여하튼 나서야 한다. 시온의 폐허에 나딩구는 한 개의 돌과 한줌의 흙에도 애정을 느끼며, 그얼이 장래 세대에도 이어지도록 정성을 쏟으며 기도드리는 것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재건되는 시온의 위대한 중심이 아니라 위대한 시온의 재건을 위해 한 개의 돌과 함중의 흙을 나르는 한 사람의 빈궁한 소시민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년기의 부질없는 자학(自虐)과 자기 비하{卑下)를 예방하는 하늘의 상책이다. 마음이 가난한 땅 위의 소시민은 하늘의 시온에서 위대하기 때문이다. (265.3)
 그토록 많은 교회당을 지어 이름을 남긴 우렌(Christopher Wren)경이 평복 차림으로 런던의 성 바울 성당을 짓고 있는 현장에 나가서 몇 명의 일꾼들을 만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한 사람은 생계를 위해 목수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고, 다른 사람 역시 배운 재주가 그것뿐이라 색 유리를 맞추고 있노라고 했다. 몇 사람의 비슷한 대답을 들은 뒤, 마지막으로 부지런히 돌을 쪼고 있는 석공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저는 영광스럽게도 우렌 경이 설계한 위대한 성당을 짓고 있는 중이랍니다.” (266.1)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그가 하고 있는 생각인 것이다. (266.2)
 중년(中年)에 데려가지 마옵소서.
 “저가 내 힘을 중도(中途)에 쇠악케 하시며

   내 날을 단축케 하셨도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中年)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나이다 ∙∙∙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102편 23~28절). (266.3)
 40대에 들어섰던 유다의 선한 왕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참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자신을 중도에 잘려지는 다 짜지 못한 베틀의 베로, 슬피 우는 외로운 비둘기로 표현하며, 인생의 허무와 삶의 애착을 부둥켜안고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내 영혼의 고통을 인하여 내가 종신토록 각근히 행하”겠다는 다짐을 거듭하며 고백했다.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이사야 38장 16, 17절). (267.1)
 그렇다. 하나님은 모처럼 철이 난 성숙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중년 인생의 고뇌와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시고 치료하실 수 있는 영혼의 주치의이시다. 해뜨는 아침 못지 않게 해 지는 저녁 노을을 아름다운 낙조로 찬란하게 하시는 영원한 인생의 걸작 예술가이신 하나님께 모처럼의 공허로 여백(餘白)이 마련된 중반기 인생의 캔버스를 맡겨 드리자. 40대 사망률이 세계 제일이라는 우리나라 중년의 아슬아슬한 인생길에 하나님은 구급차를 몰고 지금 오셔야 한다. 위급한 중년 위기의 응급 구호를 위하여 ∙∙∙ . (2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