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여섯 날은 우리의
“있음”이 흔들리는 날이다. 우리의
“좋음”이 흔들리는 날이다. 우리가 무지하고 늙고 병들고 무능하고 죄 많아 우리의
“좋음”과
“있음”이 의심스러워지는 날이다. 바람직한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나의 있음이 의심스러워지는 날이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으로도 천사의 방언을 말하는 능력으로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으로도 예언하는 능력과 모든 비밀을 알아내는 지식으로도 흔들리는 나의
“있음”을 안정시킬 수 없다. 사방으로부터 나에 대하여 들려오는 소리는
“없이하라”는 아우성뿐이다. 나를 향한 아우성은
“없어지라”는 것뿐이다. 여섯 날들은
“없이하라”하는 아우성이 우리에게 물결치는 날이다. 마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창 2:2) 날들과 같다. 그러나 안식일의 성령은 이 공허하고 허무한 수면에 운행하신다. 제칠일은 여섯 날의 위에 있는 날이고, 여섯 날의 수면 위에 운행하는 하나님의 신의 날이다. 제칠일은 여섯 날의 위에 운행하는 날이다. 성령은 제칠일과 함께 여섯 날의 수면에 운행하신다. 제칠일과 제칠일의 성령은 암탉이 알을 품듯이 이 여섯 날의 허무 안에 있는 우리를 품으신다. 그리고 허무와 없이함의 깊은 수면 위에서 우리에게 부르짖는다.
“너 있으라!” 그리하여 제칠일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피투성이의 목숨이지만 죽지 않고 사는 것이다. 죄 많은 목숨이지만 사는 것이다. 부족한 삶이지만 여전히 사람이며 부모이며 자식인 것이다. 친구이며 형제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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