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여 이교도들이 폭동을 일으킬 경우에 이 폭동을 평정하기 위하여 전체 그리스도인들 대신에 한 명 혹은 소수의 기독교인들을 처형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카르타고의 주교(主敎)인 키프리아누스(Cyprianus)는 기원후 258년에 순교했다. 그가 섬기던 교회의 교인들은 그의 최후를 지켜보기 위하여 처형장으로 나왔고, 어떤이들은 처형 장면을 더 똑똑히 보기 위하여 나무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로마의 관리들은 그들 중의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대지 않았다.9 (123.3)
 가혹하고 조직적이었던 박해는 두 차례로 끝났다. 하나는 기원 후 250년 데키우스(Deciaus) 황제에 의해 이루어 진 짧은 기간의 박해였고, 다른 하나는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의 치하에서 10년 가까이 계속된 박해였다(303~313). 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기간에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목을 도끼로 찍었기 때문에 도끼 날들이 무디 어져서 망나니들이 도끼를 바꾸어야 했으며 또 피곤해서 교대하면서 목을 쳤다고 한다.10 (123.4)
 


로마 제국의 야만적인 핍박을 받았던 수천의 그리스도인 중 두 사람이다.
(123.5)
 그러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프랜드(W. H. C. Frend) 교수가 수집하여 분석한 증거들에 의하면, 이교 로마 치하에서 순교당한 자의 총수가 5천 명을 넘지 않는다.11 이 수자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것이다. (124.1)
 필자 자신의 연구 결과도 프랜드 교수의 결론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그 당시의 박해 전모를 설명하는 것은 못 된다. 그것은 단지 신앙을 이유로 하여 사형에 처해진 기독교 순교자의 수효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교회를 위협했던 박해의 두려움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에, 물리적인 박해는 간헐적이며 산발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이것은 박해가 어느 때에나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며, 기독교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박해의 두려움 그 자체가 일종의 박해였고 매우 파괴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언급한 바 있는 기원후 250년에 있었던(데키우스의 박해는 비교적 소수의 순교자를 내는 데 그쳤지만, 그 박해가 자아낸 공포심은 수많은 배도자들을 만들어 냈다. 프랜드 교수가 산출해 낸 5천 명의 순교자수는 오순절(A.D. 31)때로부터 디오클레시 아누스의 박해 (A.D. 313)가 종료되는 시기까지 발생된 순교자의 총 수이다. 이제 명목상으로나마 기독교 국가가 된 로마 제국이 공식적으로 이단자로 규정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함으로써 발생한 4세기의 엄청난 무명 순교자들의 수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프랜드 교수가 제시한 순교자의 수자를 거론하는 취지는, 예언에 나타난 “놀랍고 무서운” 인상을 심기 위해서 로마 제국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상, 로마 제국은 여러 면에서 훌륭했다. 로마는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라고까지 표현되었다(롬 13:1 KJV). 그 사회의 야수성과 부도덕성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수백만의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가능케 한광범위한 평화와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나, 다니엘 7장에서, 하나님은 박해자들에 대한 당신의 혐오감을 나타내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로마 제국을 형언할 수 없이 추한 모습으로 나타내셨다. (124.2)
 바로 이 점이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사항인 것이다. 가정에는 확고한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가지 생활의 필수품과 안락을 마련해 주는 일을 통해서 황제나 여왕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식구들의 의지를 억누름으로써 독재자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124.3)
 3. 신약에도 박해가 예언되었다
 박해하는 짐승과 뿔에 관한 구약의 예언이 교회의 핍박에 관한 신약의 예언에 의해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초대 교회의 일원이었던 사도 바울은 박해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채찍질과 매질을 당했고, 적어도 아홉 번에 걸쳐 돌팔매질을 당했으며, 투옥도 여러 번 당했다(고후 12장). 이러한 그가 나이가 많아 효수형을 당해 사망한 사실은 오히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거울 삼아 그의 젊은 동역자(조수)인 디모데에게 교회의 미래에 관련된 예언적 경고를 주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124.4)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라는 그 유명한 분부를 통해 같은 뜻의 교훈을 주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구약과 신약이 하나같이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의 때가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 (124.5)
 4. 신약에서도 배도를 예언하셨다
 교회 역사의 앞날에 관한 가장 분명하고도 가장 서글픈 신약의 예언 중 하나가 배도와 관계된 것이다. 신약 교회들 중에서도 큰 교회에 속했던 한 교회의 장로들의 눈을 똑바로, 그러나 서글픈 눈으로 쳐다보면서 바울은 성령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데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행 20:29, 30). (124.6)
 바울의 사후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복잡한 사회 사정과 얽히게 되면서, 배도에 관한 바울의 예언은 계속적으로 성취되었다. 참으로 초대 교회의 급속한 배도의 속도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예를 들면, 기원후 1세기가 끝나기도 전에, 사데 교회에는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교인들이 별로 없었다(계 3:4). 두아디라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또는 육적인 음행을 하고 있었다(계 2:20~22). 거짓 교사들이 새 신자의 가정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신앙을 위태하게 하고 그 가족을 그릇된 길로 유혹하고 있었다(딤후 2:18, 딛 1:11). (125.1)
 2세기에, 마르키온파 영지주의(Marcionite Gnosticism)가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다르므로 구약의 하나님께 순종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이로써, 교회가 크게 황폐되었다. 이 밖에도 그 지도자들의 이름을 딴 여러 가지 영지주의 종파들, 즉 바실리데스(Basilides), 발렌티 노스(Valentinus), 케린투스(Cerintus) 같은 사람들이 이끄는 영지주의 종파들이 번창했다. 엘케사이파(派)(Elkesaites) 사람들은 개에게 물린 상처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새로운 방식의 침례를 자랑하고 다녔다.12 “가톨릭”(혹은 “보편적”) 그리스도인들(기독교의 주류를 이루었던 신자들)은 이 이단들의 활동에 대해 경고하는 문서들을 발송하였다. 여행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도시의 특정한 그리스도인 모임에는 찾아가지 말고 진정한 교회 무리를 수소문하여 찾아가도록 권고하였다. (125.2)
 이와같이, 수세기에 걸쳐 그리스도교를 특징지었던 배도와 박해는 성서 예언의 신뢰성에 대한 증거를 제공해 주었다. (125.3)
 이상의 네 원칙 즉

 (1)적 그리스도는 그 수가 하나 이상이며, 우리는 여기에서 “그”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작은 뿔의 정체를 밝히려 하고 있다는 것,

 (2) 다니엘 7장에서 하나님은 박해에 대한 혐오감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로마를 무서운 짐승으로 묘사하셨다는 것,

 (3) 구약과같이 신약도 교회에 대한 핍박을 예언했다는 것,

 (4) 신약도 교회 내의 심각한 배도를 예언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125.4)
 신원을 밝히는 여덟 가지 특징들
 다니엘 7장은 작은 뿔의 신원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여덟 가지 특징이 나타나 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25.5)
 1. 그것은 “네째 짐승”에게서 나왔다(8절, 24절). (125.6)
 2. 그것은 다른 “열 뿔”이 나타난 이후에 생겼다(24절). (125.7)
 3. 처음에 보았을 때는 “작”았으나 때가 이르매 그것은 “동류보다 강하게” 되었다(8절, 24절).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