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천사가 다니엘 7장에서 가장 크게 관심을 나타낸 부분은 심판의 장면이었지만, 다니엘의 넋을 빼앗은 대상은 네째 짐승, 그리고 그 머리에서 자라나 성도들과 전쟁을 한 “작은 뿔”이었다. (121.1)
 작은 뿔의 중요성에 비추어서 지면을 더 많이 할애하고자 하며, (a) “네 가지 원칙들” (b) “작은 뿔의 신원을 밝히는 8가지 표”라는 두 항으로 나누어 이를 기술하고자 한다. (121.2)
 네 가지 원칙들
 1. 적 그리스도의 수(散)는 하나 이상이다
 작은 뿔도 사람의 눈과 입을 가졌지만 같은 이상 중에 등장하고 있는 인자의 모습과는 현저히 다르다. 인자는 그의 왕국을 성도와 공유하고 있지만, 작은 뿔은 성도를 괴롭힌다. 인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만, 작은 뿔은 그분을 대적하고 그분의 율법을 변개코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뿔을 적 그리스도로 인식한 것은 이 사실로 볼 때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떤 성경 주석가들은 적그리스도가 오래 전에 출현했다고 말한다(과거주의적 해석). 다른 주석가들은 적그리스도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미래주의적 해석). 그리고, 세번째 그룹의 해석자들은 적그리스도가 교회 역사 전체에 걸쳐서 활동했으며, 특히 중세 기독교 시대에 그 활동이 두드러졌다 한다(역사주의적 해석). 이 주장들은 각기 그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121.3)
 “적그리스도”라는 말은 성경에서 요한의 편지서에만 사용되었다. 요한1서에 보면, 적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요일 2:22)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요이 1:7)하며, 적그리스도의 영이 기원후 90년경에 이미 “세상에 있”(요일 4:3)다고되어 있다. 또한,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며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요일 2:18)다고 하였다. (121.4)
 이 성경절들로 미루어 볼 때, “적그리스도”는,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우리에게서 나갔”으며 예수님과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부인하여 배도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된 용어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일부 그리스도교 영지주의자들과 1세기의 적그리스도를 연관시켜 생각한다. 오늘날도 그 때의 적그리스도들이 존재하고 있다. (121.5)
 그러나, “적그리스도”라는 말은 수세기에 걸쳐 관례적으로 기원후 1세기의 적그리스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원수들에게도 적용되어 왔다. 예컨대, 수많은 기독교 저술가들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7, 8절“불법한 자”(혹은 죄의 사람:흠정역)를 적그리스도로 생각해 왔다. (121.6)
 성경은 이 “불법한 자”“주께서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게 될 대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적그리스도가 미래에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122.1)
 그런가 하면, 교황一현재의 교황이거나 미래의 교황이거나 또는 교황권을 통틀어一을 적그리스도로 생각한 로마 가톨릭 대변인들이 수세기에 걸쳐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로마의 영적 방종이 심했을 때 오를레랑(Orleans)의 주교 아르눌프(Arnulf)는 로마의 교황들을 “죄악의 괴물들”이라고 개탄했는가 하면, 991년에 프랑스의 왕이 소집한 한 회의에서는 자주 옷과 금으로 옷 입은 교황이야말로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으로 행세하는 적그리스도”라고 선언했다.3 (122.2)
 잘츠부르크(Salzburg)의 대주교인 에버하르트 2세(Eberhard II, 1200~1246)는 1240년 (어떤 학자들은 1241년이라고 주장한다)에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에서 개최된 주교들의 종교 회의에서 말하기를, 당대의 사람들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부르는 데 “익숙해”있다고 했다.4 (122.3)
 서방 교회가 로마와 프랑스의 아비뇽에 자리잡은 두 적대적인 교황의 지지 세력으로 분열되었던 40년간, 교황들은 상대편을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 그리고,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양쪽 말이 모두 맞다고 말한 것으로 소문났었다. 즉 “각각 적그리스도의 두 반쪽으로서, 합치면 완전한 죄의 사람이 될 것”5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122.4)
 비텐베르크(Witten berg) 대학에 봉직하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도승 마르틴 루터는 오랜 주저 끝에 “사실상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몇몇 개별적인 교황들을 적그리스도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적으로, 그의 가장 아름다운 소책자의 하나인「그리스도인 자유론」은 교황 레오(Leo) 10세에게 헌정된 것이었다. 이것은 레오가 때만 잘 만나면 유망한 교황감이 될 것이라는 기대 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6 (122.5)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많다”고 했으며 “적 그리스도”란는 말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성경에서 사용된 것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적그리스도가 하나뿐인 양 이것이 적그리스도다 저것이 적그리스도다 하며 다투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어쨌든, 이 장에서 우리가 목적하는 바는 “적그리스도”의 신원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작은 뿔의 신원을 밝히는 것이다. (122.6)
 2. 다니엘의 이상에 나타난 로마 제국의 모습은 의도적으로 그 제국의 한 면만을 나타내고 있다
 로마 제국은 역사상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 업적들 중에 가히 전설적이라 할 로마의 포장 도로망과 로마법, 그리고 유명한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 Pax Romana)가 우선 마음에 떠오른다.(지중해 연안에 사는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태평 성대를 누렸다.) 바울은 자신의 로마 시민권에 자부심을 느꼈고 그 특권을 이용했다(행 22:25-29). 로마서 13장에서, 그는 로마 당국자들을 일컬어 악행하는 자(66~68 페이지를 보라)의 처벌권을 위임받은 하나님의 종들이라 하였다. 다니엘 7장요한계시록 12장이 로마 제국을 추한 괴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로마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즉 로마서 13장에서는 로마가 백성을 교화시키는 세력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박해하는 세력으로 묘사되었다. (122.7)
 우리는 모두 로마의 박해에 대해 익히 들어 왔다. 그러나, 상대적인 의미에서, 로마에 의해 살해된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122.8)
 네로 황제는 로마 시를 방화했다는 죄목으로 수많은 선량한 기독교인들을 가로등에 매달아 화형에 처했다. (122.9)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황제 때, 사도 요한은 밧모 섬으로 유배 당했다. 기원후 202년경에,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지금의 튀니스)에서 페르페투아(Perpetua)와 펠리치타스(Felicitas)가 그들의 젖먹이들을 다른 이들의 보호에 맡기고 야수가 날뛰는 원형 경기장으로 용감하게 나아갔다.7 (123.1)
 그러나, 순교를 초래한 혹심한 박해는 대개 국지적이었고 그나마도 단기간이었다. 코모도스(Commodus) 황제는 추방되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귀환령을 내렸다. 로마의 총독들은 재임 기간에 비록 그 대상이 죄수라 할지라도 단 한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일 없이 임무를 마치고 로마로 귀환하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8 로마의 총독들은 로마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임명된 사람들이었다. 평화가 유지되는 한 종교의 자유도 가능했다. (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