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에게는 싸워야 할 원수가 있다. 죄의 장본인인 사단인 것이다(계 12:9 참조). 구속의 고지(高地)인 십자가에서 외로운 싸움을 싸우다 고독하게 돌아가신 그리스도는 이제 더 이상 혼자 싸우는 외로운 대장이 아니시다. 십자가의 사랑에 강권(强勸)된 무수한 의용군, 십자가의 모태에서 생산된 아침 이슬 같은 참신한 백성이, 이슬처럼 절로 맺혀 그들의 구주를 위해 이슬같이, 자원하는 제물같이, 목숨을 바칠 헌신을 다짐하고 전쟁터에 나선 것이다. 그들은 용감하고도 거룩한 “왕 같은 제사장”(베드로전서 2장 9절)들로 십자가에서 발꿈치를 상하신 그리스도께서 원수인 사단의 목을 발로 밟아(수 10:24 참조)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즐거이 헌신”할 십자가의 군병들인 것이다. (254.3)
죄로 상실된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밀담을 나누셨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약속대로 인간으로 태어나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침내 지금 왕이신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255.1)
 왕이신 제사장, 제사장이신 왕—그리스도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110편 4절). (255.2)
 아버지와 아드님 두 하나님이 나누신 밀담(密談)의 내용 중에는 구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한 제사장이 되시겠다는 서약(哲約)이 있었다. 제사장은 세습제였기 때문에 레위 자손으로 태어나면 기득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유다 지파였기 때문에 기득권 없이 예외적으로 서약에 근거하여 온 인류를 위한 제사장이 되시기로 자원하신 것이다(히 8:11~21 참조). 그것은 마치 아브라함 당시 [예루]살렘의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기도 했던 멜기세덱의 경우와 같았다(히 7:1~3, 11~15 참조). (255.3)
 흑인을 대신하고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흑인이어야 하듯이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대신하고 대표하는 제사장도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되시겠다는 서약 가운데 인간이 되시겠다는 성육신(成育身)의 밀약(密約)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 얼마나 사연이 깊은 구속의 신비인가? (255.4)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대표하는 제사장은 마음이 부드럽고 동정심이 많으며 눈물도 함께 흘려야 하는 연약한 인간이어야 했으므로 백성을 권위와 힘으로 다스리는 강한 왕의 직분을 수행 할 수가 없었다. 이 둘은 분리된 직분으로 결코 한 사람이 수행하도록 용납되지 않았다. (256.1)
 그러나 대제사장이 왕의 면류관을 쓰고 왕좌에 앉는 특별한 사건이 있을 것임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표상으로 예고되었다. 그것은 왕권과 중보(中保)의 제사장 직분이 초림하실 그리스도에게서 일치될 것임을 예고한 것인데(슥 6:12, 13 참조), 놀랍게도 그것은 시편 110편의 경우처럼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13절)은 결과로 확인하고 있다. 이리하여 시편 110편은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천 년 전에 제사장이 되기 위하여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의 죽음을 죽으신 후 승천하신 후에는 왕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대제사장이 되실 것을 예고한 것이다(히 4:15 참조).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섬기는 구주이신 그리스도는 동정심은 많지만 실권이 없는 인간 제사장이 아니요, 동정심도 넘치고 능력도 넘치는 왕 같은 대제사장이신 것이니,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믿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6절). 이리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이다(벧전 2:9 참조). (256.2)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

   열왕을 쳐서 파하실 것이라

   열방 중에 판단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시며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인하여 그 머리를 드시리로다”

   (110편 5~7절). (256.3)
 죄로 상실된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밀담을 나누셨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약속대로 인간으로 태어나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침내 지금은 왕이신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거기서 십자가의 일격으로 머리에 치명상을 입은 채 운명의 날을 기다리는 사단의 마지막 분노에 대처 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오래 계속된 선과 악의 대쟁투를 마무리 짓고 계신다.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때까지 부득불 왕 노릇하”(고린도전서 15장 25절)실 것이므로 승리는 결정적이며 싸움은 끝난 바와 다름 없다. 믿음에 철이 나기전 야곱은 하나님을 “아버지의 하나님”으로 불렀으나 하나님을 체험한 뒤 그는 “나의 하나님”이라 불렀다. 부활한 주님을 만져 본후 도마는 부르짖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다윗은 그 분을 “내 주”라고 불렀다. 그 주님이 지금의 “나의 주”가 되시니 무엇이 못미덥고 무엇이 두려우랴! (2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