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5 편 지성소 제28장 심판과 안식일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창 2:1~3)다. 유명한 성경 번역가 굳스피드는 하나님의 율법의 중심이자 능력인 안식일은 “우주가 조직된 바로 그때 제정되었다”고 말한다. 시내 산에서 두렵고 장엄함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은 “표징” 곧 성화의 표징이라고 선포하셨으며,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2~17)고 말씀하셨다. (259.3)
 어떻게 안식일이 성화를 지적해 주는 인과 표징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성화가 성소 안에 포함된 세 가지의 분명한 경험의 결과, 즉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순종, 기도와 하나님을 위한 봉사라는 사실을 배웠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으로부터의 개혁을 경험함으로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고자 하는 자는, 자신도 모르게 더욱더 진지한 성경 연구에 힘을 내므로 잘 깨닫게 된다. 때때로 완전한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밤이 맞도록 연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그의 기도는 더욱 분명해지고 열렬해진다. 그렇게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의 첫 관심은 자신에게 아주 소중하게 된 진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친척이나 이웃 동료들과 친구—들을 복음으로 감화시켜 하나님을 섬기도록 봉사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축복 중의 하나를 잃게 된다. 만약 그가 생동감이 넘치도록 성장하는 성화의 경험을 갖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층 더 부지런히 연구할 것이고, 좀 더 열렬히 기도하며, 자신의 빛을 충실히 비취게 할 것이다. (259.4)
 그때에 진실한 안식일 준수자들은 철두철미한 성경 연구자,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 하나님을 위하여 지칠 줄 모르는 일꾼,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영혼의 실제적인 짐을 지는 자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안식일은 지상 성소의 성소가 표상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 지상 생애의 목적인 성화를 가리키는 표징이며 참표지판이 된다.3) (260.1)
 하나님의 율법, 사랑의 법
 한 바리새인 율법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트집 잡아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5-40, 46)고 대답하셨다. 이것으로 그 율법사는 침묵하게 되었고, 감히 더 이상 그분에게 질문하지 못했다. (260.2)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분의 율법은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라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첫 돌비의 앞부분 네 계명에 포함되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되는 계명은, 두 번째 돌비에 있는 나머지 여섯 계명에 표현되어 있다. 십계명은 죄의 결과로, “범법함으로 눈먼 인간의 마음 때문에 ∙∙∙ 타락한 지성적 존재의 상황에 맞는 언어로 표현되어진”(영문 시조, 1875. 4. 15.) 법이었다. “율법은 ∙∙∙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갈 3:19)다. (260.3)
 그렇다면 그 전까지 하나님의 법은 어떻게 보존되고 전달되었는가? “홍수 전의 ∙∙∙ 기록이 없었다. 그러나 탁월한 육체적 · 지적 능력의 소유자들인 그들은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전달된 것을 이해하고 보전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손상됨 없이 차례로 그들의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83). 이와 같은 방법으로 거의 천 년 정도 되는 아홉(九) 세대를 통해, 아담은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쳤다. “노아 ∙∙∙ 에 의하여 보존되었고 ∙∙∙ 그의 자손들에게 십계명을 가르쳤다 ∙∙∙ 여호와께서 저들을(이스라엘) 애굽에서 불러내셨을 때 ∙∙∙ 매우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시내 산에 강림하사, 온 백성이 듣는 가운데서 당신의 율법을 말씀하셨다 ∙∙∙ . 그때 ∙∙∙ 당신의 요구를 잘 잊어버리는 백성의 기억력에 당신의 교훈을 의탁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돌비에 기록하셨다”(부조와 선지자, 363, 364). 그때에 율법은 하나님의 보좌와 율법을 거룩하게 수호하는 하늘의 가장 높은 두 천사인 두 금 그룹이 있는 속죄소의 기초인 법궤 안에 놓여 있었다. (260.4)
 후에 이 사랑의 율법은 완전한 성경에 기록됨으로 인류를 다루시는 당신의 섭리를 통해서 더욱더 명확히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상 십계명은 “성경의 축소판”이라 불리었으니, 이는 “사람의 모든 의무”(전 12:13, 킹제임스역)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261.1)
 영원하고 보편적인 율법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의 영원한 과거 동안,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의 율법은 돌이 아니라 타락하지 아니한 존재들의 마음속에 기록되어 있었다. 죄가 이 우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들 타락하지 않은 존재들은 율법의 제재를 느끼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법은 “자유의 율법”(약 2:12)이기 때문이었다. 율법을 순종하였던 자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렸으며, 율법의 존재 자체도 의식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선언했다. 단지 어떤 이가 율법을 불순종했을 때만 그 권위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사탄이 여호와의 율법을 거역하였을 때, 천사들은 마치 전혀 의식하지 않던 것을 갑자기 떠올리듯 율법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했다”(산상보훈, 109). 그들이 “죄는 불법”(요일 3:4)으로 죽음을 의미함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불법이 얼마나 무서우며, 하나님의 율법은 결코 변경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타락지 않은 인류의 마음 가운데 쓰였고, 과거 영원 속에서 존재했던 똑같은 율법이며,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사랑의 위대한 두 계명은 다가올 영원 속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우주의 근본법으로 존재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행하기를 기뻐하오니, 참으로 주의 법이 내 마음속에 있나이다”(시 40:8, 신킹제임스역)라고 하신 그 법이다. 구속받은 자들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그들의 마음속에 기록”(렘 31:33, 신킹제임스역)하셨다고 말씀하신 그 법이다. 또한 바울도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쓰면서,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 3:3)고 하였다. 과거의 영원에서와 같이 다가올 영원에서도, 온전한 그대로의 십계명이 하나님의 “보물 상자”요, 그분의 “보석 상자”에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십계명이 하나님의 온 우주를 위한 영원하고 보편적인 율법이며, 모든 시대를 통하여 그분께서 창조하신 지성적 존재를 위한 율법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나타내지 않는가?4) (261.2)
 완전한 하나님의 율법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말한다. 이것은 율법을 만든 자의 성품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다윗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262.1)
“여호와의 율법(律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證據)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敎訓)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誠命)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道)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規例)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7~11)
(262.2)
 영원한 여호와의 율법에 대한 이 영감적인 해석은 유한한 인간의 마음속에 불변함으로 길이길이 간수될 것이다. (262.3)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법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완전하므로 결코 변경될 수 없다. 완전한 것을 변경하는 것은 그것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저자는 하나님의 법이 결코 변경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 있게 선포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불타는 산 정상으로부터 율법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생각해 보라! 거룩한 천사들의 광대한 무리가 하나님을 호위하고 있다. 수백만의 남녀가 주의를 기울이고 서 있다. 번개가 번쩍이고 땅이 흔들린다.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시는 징후들 속에, 거룩하신 입법자께서 ‘사람의 본분’(전 12:13)을 아우르는 교훈을 선포하셨다. 만약 그 율법이 변경될 수 있는 것이라면, 진실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시내로부터 선포하실 때보다 덜 장엄하고 덜 눈에 띄는 방법으로 율법을 변경하시거나 취소하시겠는가? 과연 그분의 율법은 교회가 알지 못하고 불확실한 가운데 처해 있도록 은밀하게 변경되어져야만 하는가? 만약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일요일로 대신하시기를 원하셨다면, 과연 그분의 선택받은 제자들조차도 여러 해가 지나도록 그 사실을 모르도록 공표하셨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Our Time, 1947. 12. Roy R. Cottrell). (262.4)
 또 다른 저명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대는 어떤 존재가 율법을 변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성전 내부 깊은 곳의 호위 천사들을 뚫고 들어가, 여호와 하나님을 보좌에서 끌어내리고, 용서와 구원을 위한 우주의 시은좌 자리를 들어낸 후, 돌비의 불멸의 기록을 자칭 자신의 전능한 손가락으로 삭제해 버리기 전에는 결코 불가능하다”(스미스, 예수를 바라봄, 321). (262.5)
 “하나님의 뜻의 계시요 그분의 품성의 사본인 하나님의 율법은 ‘궁창의 확실한 증인’으로서 영원히 존속하지 아니하면 안된다”(각 시대의 대쟁투, 434). (263.1)
 안식일 준수자의 안식일 개혁
 적은 하나님의 율법에 “파괴된 곳”(사 58:12, 킹제임스역)을 만들었다.5) 자기의 때가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그는 안식일 계명 즉 “많은 세대들의 기초”(사 58:12)가 되는 계명에 그의 모든 공격을 퍼부었다.6) 이사야는 이 동일한 예언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안식일을 준수하는 문제의 개혁이 있을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이 예언은 여호와의 안식일에 대해 무지하거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하는 자와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 자”“야곱(의) 집”, “내 백성”에게 선포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경고의 소리를 보내시며,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 .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고하라”(사 58:1, 2)고 하셨다. 그들의 허물이 무엇인가? “내 백성”된 그들이 안식일을 발로 짓밟았다. 이것은 누구에게 주신 말씀인가? 먼저 우리는 안식일 준수에 관한 하나님의 표준을 점검하고, 참으로 누구의 깃발 아래 서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2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