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G. 조셉 베이츠(Joseph Bates)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안식일 신학
 엘렌 화잇도 후에 안식일과 예수님의 하늘 성소봉사에 연결된 신자들의 영적 발전의 개념에 대하여 여러차례 언급하였다. 그 일례로써 엘렌 화잇은 1888에 출판된 「각시대의 대쟁투」(The Great Controversy)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1844년의 밀러파)재림 신도들은 그 당시에 아직 그들의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마땅히 수행해야하는 준비 작업이 남아있었다. 그들의 마음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게 하는 빛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으로 그들의 대제사장을 따라 그가 봉사하는 곳에 이르게 될 때 그들에게 안식일 준수를 포함한 새로운 의무가 드러나게 될 것이었다. 새로운 경고와 교훈의 기별(셋째 천사의 기별)이 교회에게 주어져야만 했다∙∙∙그리스도의 중재 사업이 하늘 성소에서 끝나게 될 때 이 지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중재자 없이 거룩한 하나님의 눈 앞에 서야 할 것이다. 그들의 옷은 마땅히 아무런 얼룩이 없어야 하며 그들의 성품은 피 뿌림에 의해 성결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 자신의 부지런한 노력을 통하여 그들은 죄악과 의 전투에서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이 모두 완성될 때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그의 나타나심을 맞을 준비를 다 마치는 것이다.”20 (346.1)
 그룹 연구와 확인
 베이츠는 고립적으로 그의 안식일 신학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과 화잇 부부와 하이 람 에드손과 스티픈 피얼스(Stephen Pierse)와 일단의 안식일 준수 재림 신도들에 의해 이미 발표된 안식일 신학들의 해설자로 기여했다. 이 작은 무리들은 “숨겨있는 진리의 보화를 찾아 때로는 온 밤을 지새우며 성경을 연구했다.”21 (346.2)
 1848년 1월에 「제칠일 안식일의 옹호」가 출판된 이후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들도 베이츠와 그의 동료들의 안식일 준수 신념을 격려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그 사건들은 또 베이츠로 하여금 그 해 말에 안식일에 대한 또 하나의 심오한 해석을 내놓도록 유도하였다. (346.3)
 베이츠는 1848년에 안식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재림 신자들의 유익을 위해 소집된 일곱 차례의 “총회”에 화잇 부부와 함께 참석하였다. 이 총회들에는 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 총회들은 개인의 거처나 농장 건물에서 모였다. 4월과 9월에는 콘넥티커트의 로키힐에서, 6월에는 콘넥티커트의 브리스톨에서, 8월에는 뉴욕의 볼니와 포트 깁슨에서, 10월에는 메인의 톱스햄에서, 그리고 11월에는 마사추세츠의 돌체스터에서 모였다.22 (346.4)
 이 일련의 총회들이 의도한 일차적인 기능은 성소와 안식일에 관한 개념을 서로 확인하여 신자들의 이해를 통일시키는 일이었다. 제임스 화잇은 재림 운동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도력의 증거들을 재검증하였다. 베이츠는 성소와 안식일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엘렌 화잇은 이러한 싱앙 사상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특성에 대하여 강조하였다.23 (346.5)
 처음의 세 총회에서는 여러 가지 반대되는 소리들이 참석자들로부터 나왔다. 볼니에서 회집된 세 번째의. 그리고 그 중 가장 큰 규모의 총회에서 베이츠와 화잇 부부는 자신들이 여러 가지 불필요한 주장들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들이 받은 새로운 기별을 가르치려고 총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피력했다. 그들은 참석자들에게 그들이 제시하고 있는 “위대한 진리들”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24 (346.6)
 일련의 총회들이 다 끝나기 전에 통일과 확인의 과업이 잘 이루어졌다. 10월에 톱스햄에 모였던 회중들은 베이츠에게 안식일 신학에 관한 또하나의 출판물을 내놓도록 기대하였다. 베이츠가 망설이고 있던 11월 어느날 그는 돌체스터에서 화잇 부부와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곳에서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에 대하여 서로 집중적으로 토론하고 있을 때 엘렌 화잇이 묵시에 들어갔고 그 묵시에서 하나님의 인은 안식일이며 요한계시록 7:1-3은 안식일의 기별이 태양처럼 온 세계를 비추게 될 때까지 그 위력이 증가할 것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았다.25 (347.1)
 묵시 후에 엘렌 화잇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남편에게 정기 간행물을 간행할 것과 베이츠에게 톱스햄의 모임에서 일부 참석자들이 요청한대로 안식일에 관한 새 책의 출판을 준비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요한계시록 7장의 인이 안식일이란 주장을 성서적인 해석으로 인정한 후인 1849년 1월에 베이츠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A Seal of the Living God, A Hundred Forty-Four Thousand, of the Servants of God being Sealed in 1849)라는 책자를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베이츠는 제칠일 안식일을 분명하게 요한계시록 7장의 종말론적인 인(印)에 연결시켰다. 그리고 또 인에 대한 그의 새로운 이해를 그가 앞서 주장한 성품의 개발에도 연결시켰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성소를 정결케하실 때 불굴의 정신으로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굳은 확신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인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신다고 주장하였다.26 뿐만아니라 그는 안식일에 의하여 인침을 받게 되는 144,000명이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그 성도들만이 예수님의 재림을 살아서 맞이할 것이라고 가르쳤다.27 안식일의 기별이 몇 안되는 미국의 소읍들에서 퍼지기 시작하여 끝내는 기독교 세계 전체에까지 전파될 것이며 안식일 교리의 신봉자는 수십명에서 144,000명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안식일 신학에 대한 베이츠의 확신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347.2)
 1849년 7월에 제임스 화잇은 「더 프레즌트 투르즈」(The Present TruthX, 그리고 1850년 8월에는 「디 아드벤트 리뷰」(The Advent Review)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1850년 11월에는 두 잡지를 하나로 묶어 「세컨드 아드벤트 리뷰 엔드 사바드 헤랄드」(Scond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이 잡지의 이름은 미래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대신에 이 잡지는 독자들에게 지난 1844년 10월로 절정에 도달했던 재림 각성운동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증거를 계속적으로 고찰하겠다는 의도를 표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1844년 10월 이후에 시작된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가 안식일의 신학과 실천에 현저한 의의를 마련한다고 주장하였다. (347.3)
 「세컨드 아드벤트 리뷰 엔드 사바드 헤랄드」의 출판은 분명히 그동안 베이츠가 안식일에 관하여 수행해온 출판 활동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이 잡지의 발행인 란에는 제임스 화잇과 제이. 앤. 앤드루스(J. N. Andrews)의 이름이 실렸다. 그의 젊은 동료들의 등장과 함께 베이츠는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 신학의 주요 저술가의 책임을 마치게 되었다. (347.4)
 조셉 베이츠의 안식일 신학에 나타난 중요한 다른 개념들
 베이츠의 안식일 신학과 후기의 제칠일 안식일 재림 신앙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 보기 전에 지금까지 설명한 사실들을 요약하고 또 몇가지 부연해야 할 추가 개념들과 역사적 사실들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348.1)
 앞에서 우리는 베이츠가 제칠일 침례교회의 안식일 신학을 수용한 이후에 종말론적인 개념을 안식일 신학에 결부시켜간 과정을 살펴보았다. 베이츠의 종말론적인 신앙 인식은 그의 밀러파 재림 신앙 경험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베이츠는 연속적으로 안식일을,

   (a) 요한계시록 14장의 세천사 기별에,

   (b) 그리스도가 1844년에 요한계시록 11장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하늘 성소에 있는 언약궤 곁에서 수행하는 봉사에,

   (c) 요한계시록 14:9-11에 나오는 “짐승의 표”에,

   (d)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하나님의 인”에. 그리고

   (e) 144,000에 관련시켰다. (348.2)
 이러한 개념들외에 베이츠는 또 안식일 준수자는 마지막 시대의 “진정한 이스라엘”이라는 티. 엠. 프레블의 주제에 관심을 나타냈다. 베이츠는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의 첫 판에서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안식일 준수자들은 진정한 이스라엘로서 이사야 58:13, 14“너희가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면∙∙∙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리라∙∙∙”는 약속과 의무의 후예들이라고 주장하였다.28 베이츠는 또 안식일을 사도행전 3:21에 약속된 “만유의 회복”에 연결시켰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제칠일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이전에 회복되어야 할 만유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29 (348.3)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의 제2판에서 베이츠는 사도행전 3장에서 나오는 회복의 개념과 이사야 58장에 나오는 안식일의 약속의 개념을 이사야 58:12의 회복 예언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사야 58장 12절이 여러 십년에 걸쳐 제칠일 안식일 재림 신앙을 나타내는 특징적인 개념의 표현으로 사용될 것을 예시하였다. 그는 “네게서 날자들은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곳이 되게 하는자라 하리라”(사 58:12)는 말씀으로 안식일 준수자들의 특징을 묘사했던 것이다.30 베이츠는 이 예언에 곧바로 이어지는 13절과 14절의 관점에 비추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것은 안식일의 회복을 언급하는 것으로 관찰하였다. (348.4)
 베이츠는 1849년 1월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과 1850년의 「표상적 성소와 그 적대적인 성소에 관한 해설」31이라는 소책자에서 그 앞서 출판되었던 재림 신자들의 문헌 자료들과 다니엘 7장8장에 기초하여 재림 전 심판(Pre-Advent Judgement)이 1844년에 시작한다는 주장을 재론하였다.32 (348.5)
 또 하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베이츠가 자신의 안식일 신학을 옹호하기 위하여 교회사를 사용한 방식이다.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의 제 1판과 제2판에서 그는 여러 면들을 할애하여 이른바 주간의 제칠일로부터 첫째날로 안식일이 변경된 역사를 기술하였다. 이 일에 있어서 베이츠는 물론 제칠일 침례 교도들의 자료를 사용했고 제칠일 침례교도들은 또 초기 청교도들의 안식일 신학 자료를 차용한 것이었다. 니콜라스 보운드(Nicholas Bownde)는 이른바 일요일을 안식일로 주장하는 신학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사도들의 시대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음을 교회사로부터 끌어내고자 하였으며 사도들의 시대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으므로 이것은 성서적으로 승인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제칠일 침례교도들과 베이츠는 안식일로부터 일요일로의 변화가 사도들의 시대보다 훨씬 후대에 발생하였으며 따라서 이러한 변화는 성서적으로 인정된 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기독교 초기 역사를 사용했다. 이같은 변화는 사도들의 시대가 아닌 배도의 시대의 교회에 의하여 발생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베이츠는 일요일이 짐승의 표가 된다고 주장했던것이다. 19세기 중반의 미국에서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종교개혁 시대의 유럽에서도 그러했듯이 역사적으로 배도한 기독교의 상징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349.1)
 요한계시록 14장의 셋째 천사에 대한 베이츠의 이해는 여기서 취급하는 기간에 중대한 변화를 겪었다. 베이츠가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의 제1판에서 셋째 천사의 기별에 대해 논평했을 때 그는 요한계시록 14:9~11로 언급을 제한하였다. 12절은 생략했다. 그리고 그는 앞의 두 천사의 기별에서처럼 셋째 천사의 기별도 밀러파 재림운동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주장했다. 이 점에 있어서 제임스 화잇은 베이츠와 의견을 달리했다. 이 문제가 1848년의 안식일 총회들에서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셋째 천사의 기별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 하는것 조차도 이 총회들에서 토의되지 못했다. 하이람 에드손은 처음에 베이츠의 가르침을 수용했다가 1849년에 그 자신이 그 주제에 대하여 집필할 때는 제임스 화잇의 주장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리고 베이츠도 1850년에는 화잇의 주장을 수용함으로써 세 사람은 앞의 두 천사들의 기별이 밀러 운동으로 실현되었지만 요한계시록 14:12을 포함하는 셋째 천사의 기별은 1844년 이후까지는 그 실현이 시작하지 않았다고 동의하였다.33 (349.2)
 베이츠의 유산의 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