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하라! 끝없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개인적 구주가 되심을 인식하고 자신의 모든 사정을 그분의 어깨 위에 두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옴에도 불구하고 종종 지속적인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표상에서 개인이 제사장에게 기름 이외의 다른 어떤 부분도 주지 않았던 경우처럼 우리도 다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분은 우리의 죄를 취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친구들에게 신뢰를 주고, 주의 품에 의지하여 범사에 그분을 우리의 막역한 친구로 삼지 아니하며, 목자가 그의 양들을 돌보듯이 그분이 우리 앞에 길을 닦아주실 것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업무의 정사를 그분의 강하고 능하신 어깨 위에 두지 않는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현세의 일을 담당하시도록 신뢰하기를 두려워한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받은 이후라 할지라도 우리는 즉시 매일의 의무에서 오는 당혹과 시련들에 다시 휘말리게 된다. 무궁한 평화를 누리는 대신, 우리는 끊임없는 시련들을 직면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사의 열쇠 또는 지배권을 그리스도께 드릴 때, 그분은 어떠한 세상의 세력으로라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우리 앞에 열어놓으실 것이며, 우리가 여행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길은 닫아서, 지상의 어떠한 세력도 그 길을 열어놓아 우리의 발로 올무에 걸리게 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사 22:22).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기름을 부은 후, 그는 사울을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삼상 9:23~24). 사무엘이 먹으라고 명했다. 만일 사울이 사무엘의 행한 이 일의 상징적 의미를 깨달았더라면 그의 정사를 위대하신 평강의 왕의 어깨 위에 두었을 것이며. 그의 평생 사업이 난파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체적인 화목제물의 영구적 평화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각 사람이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양상이 표상적 화목제에 있었다. 각 화목제물의 두 볼은 제사장에게 주어졌다(
신 18:3). 크신 실체적 평강의 왕께서는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사 50:6)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세상이 줄 수도, 빼앗아 갈 수도 없는 평화를 누리고자 원하는 사람에게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 5:39). 여호와께서 완전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신 욥도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욥 1:8; 16:10)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는 종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굴욕과 수치를 받아야 할 때도 있다.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