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그림자 제5편 각종 제사 제 23 장 화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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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은 평화를 구하고 있다. 나라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있고, 수천의 사람들은 부(富)가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헛된 기대를 간직한 채, 부를 얻으려고 그들의 영혼을 팔고 있다. 그러나 위대하신 평화의 왕으로부터 이르러오는 평화 이외에는 참되고 지속적인 평화가 없다. 세상의 탐욕이나 피 흘림이나 전쟁의 대가로는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구주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유산은 평화의 유산이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요 14:27). (157.1)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평화는 세상의 명성이나 부를 추구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레위기의 봉사 중 화목제는 사람들이 그토록 탐하고 있는 보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표상과 그림자를 통하여 아름답게 가르쳐 주고 있다. (157.2)
 화목제(和睦祭)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외의 다른 제물들과 달랐다. 이 예식은 유월절 예식을 제외하고는 백성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예식이다. 유월절과 다른 것이 있다면 1년 중 하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57.3)
 화목제로 드리는 동물은 무리나 떼 중에서 선택되었다, 그들은 흠이 없어야 했다. 왜냐하면 흠이 있는 동물은 평화의 왕을 잘 표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레 3:1). 화목제는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것으로서 맹세나 계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었고, 또한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이었다(레 7:12, 16). 모세는 이 화목제로써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언약을 공고히 하였다(출 24:5~8). 우리가 구약에서 보는 대로 특별히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화목제가 드려졌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을 때, 그는 화목제를 드렸고,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대상 16:1~3). 화목제는 가끔 다른 제사와 연관되어 드려지기도 했다. 유월절 축제 이 외에 백성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 때는 바로 화목제를 드린 때였다. (157.4)
 화목제를 드린 사람은 동물의 머리 위에 안수한 후에 그것을 죽였다. 그 다음에 그는 몸의 각 지체로부터 모든 기름을 떼 내었고, 제사장은 그 기름을 번제단 위에 태웠다(레 7:29~34). 모든 제물의 기름뿐만 아니라, 가슴, 우편 앞 넓적다리, “두 볼”을 제사장에게 주었다. (158.1)
 기름을 떼 내어 태우는 것은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표상하는 것이었으니, 곧 우리의 모든 죄를 그 합당한 주인에게 돌림으로써 되는 것이었다(시 37:20; 사 43:24). 평화의 왕, 곧 복되신 구주께서는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갈 1:3~4). 그분께서는 죄를 멸망시키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하여 죄들을 대속하셨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로서 섬기는” 제사장에 의하여 적합하게 표상되었다. 제사장은 화목제를 드리는 사람의 손으로 떼 낸 기름을 받아 번제단 위에 태웠다. 그는 기름과 뒷다리를 여호와 앞에 흔든 다음 그의 음식으로서 화목제의 고기 일부를 먹었다. (158.2)
 기름, 가슴, 우편 앞 넓적다리를 처분하는 것은 평화를 얻는 비결을 보여주는 것이다. 평화를 얻는 사람은 마땅히 죄로부터 분리되어야 하고, 사랑받는 제자[요한]처럼 구주의 품에 기대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열두 제자에게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을 배반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가 누구인지 여쭈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구주와 자신들과의 참 관계를 거의 알지 못했다. 그러나 구주의 품에 기댄 요한은 그분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주여, 그가 누구입니까?”라고 물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은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159.1)
 선지자 이사야는 모든 화목제물의 가슴을 제사장에게 주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는 그가 구주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라고 한 것을 봐서 알 수 있다. 오늘날도 사랑받는 제자 요한처럼 주의 품에 기대는 하나님의 자녀는, 화목제가 그 한 표상에 불과할 뿐인 하나님의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된다. (159.2)
 모든 화목제물의 우편 뒷다리(어깨)를 받는 제사장의 실체이신 분에게는 힘과 축복이 있다. 구주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즐겨하였던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이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政事)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사 9:6~7). (159.3)
 유의하라! 끝없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개인적 구주가 되심을 인식하고 자신의 모든 사정을 그분의 어깨 위에 두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옴에도 불구하고 종종 지속적인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표상에서 개인이 제사장에게 기름 이외의 다른 어떤 부분도 주지 않았던 경우처럼 우리도 다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그분은 우리의 죄를 취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친구들에게 신뢰를 주고, 주의 품에 의지하여 범사에 그분을 우리의 막역한 친구로 삼지 아니하며, 목자가 그의 양들을 돌보듯이 그분이 우리 앞에 길을 닦아주실 것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업무의 정사를 그분의 강하고 능하신 어깨 위에 두지 않는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현세의 일을 담당하시도록 신뢰하기를 두려워한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받은 이후라 할지라도 우리는 즉시 매일의 의무에서 오는 당혹과 시련들에 다시 휘말리게 된다. 무궁한 평화를 누리는 대신, 우리는 끊임없는 시련들을 직면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사의 열쇠 또는 지배권을 그리스도께 드릴 때, 그분은 어떠한 세상의 세력으로라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우리 앞에 열어놓으실 것이며, 우리가 여행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길은 닫아서, 지상의 어떠한 세력도 그 길을 열어놓아 우리의 발로 올무에 걸리게 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사 22:22).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도록 기름을 부은 후, 그는 사울을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삼상 9:23~24). 사무엘이 먹으라고 명했다. 만일 사울이 사무엘의 행한 이 일의 상징적 의미를 깨달았더라면 그의 정사를 위대하신 평강의 왕의 어깨 위에 두었을 것이며. 그의 평생 사업이 난파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체적인 화목제물의 영구적 평화를 경험하기를 원하는 각 사람이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양상이 표상적 화목제에 있었다. 각 화목제물의 두 볼은 제사장에게 주어졌다(신 18:3). 크신 실체적 평강의 왕께서는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 50:6)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세상이 줄 수도, 빼앗아 갈 수도 없는 평화를 누리고자 원하는 사람에게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 5:39). 여호와께서 완전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신 욥도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욥 1:8; 16:10)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는 종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굴욕과 수치를 받아야 할 때도 있다. (160.1)
 기름으로 바른 무교전병을 화목제와 함께 먹었다. 무교전병은 “순전함과 진실함”(고전 5:8)을 의미했다. 기름은 심령에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성령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유교병 역시 감사제로 드리는 화목제와 함께 먹었고, 그것은 기쁨의 상징이 되었다. (161.1)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후, 그 약속을 되뇌며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을 때”, 세 천사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그는 감사의 표시로 즉시 그들을 위하여 무교병과 고기로 준비된 화목제를 마련했다. 그들이 그것을 먹고는 즉시 아브라함에게 아들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시켰다(창 18:1~10).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적으로 고기를 먹는 습관을 형성하게 된 것은 화목제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곡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목제를 먹는 일에 있어서 한 가지 엄격한 금지사항이 있었다. 모든 고기는 첫째 날이나 둘째 날에 먹어야 했다. 그 명령은 아주 분명하였다. “만일 그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제3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못 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라”(레 7:18). (161.2)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연중 어느 때고 그들이 원하는 때에 드릴 수 있는 이 제물은 평강의 왕의 부활에 대한 중요한 상징이었다. 표상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유대인의 제사제도는 진실로 “복음의 압축된 예언”이다. (162.1)
 유월절, 그리고 그날로부터 제3일에 첫 열매를 흔들어 드린 것은 부활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사장만 성전 안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한 움큼의 곡식단을 흔들었다. 반면에 화목제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나타낼 기회들이 주어졌다. (162.2)
 만일 어떤 사람이 제3일에 고기를 먹었다면, 그것은 그가 드리는 화목제의 실체이신 분이 여전히 그날에 죽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음을 의미하였다. 다시 말하면, 제3일에 고기 먹기를 거절하고 나머지 고기를 모두 불에 태우는 사람은 부활하신 구주에 대한 그의 믿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었다. (162.3)
 팔레스타인과 같은 더운 나라에서는 고기가 제3일이 되면 썩기 시작한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요 11:39) 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예언한 시편 기자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시 16:10)이라고 하였다. 다윗은 구주께서 제3일에 살아나실 것을 알았다. 주께 가까이 산 사람들은 표상적 봉사에서 반사되는 빛을 보았다. (163.1)
 베드로가 오순절에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가장 힘 있는 어조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을 통하여 알려지고 화목제를 통하여 표상된 이 진리 위에 그의 설교가 기초되었기 때문이다(행 2:25~32). 바울이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전 15:3~4)고 가르쳤을 때, 그는 분명히 유월절과 화목제가 지니는 상징들을 언급하였다. 심지어는 제자들의 눈까지도 죄와 의심으로 멀어져서 희생제물을 통하여 번쩍이는 빛을 분별할 수 없었다. 마치 태양 광선을 반사하는 달이 충분한 빛을 비추어서 어두운 밤길을 무사히 가도록 해주는 것같이 레위기의 율법들과 희생제물에서 반사된, 크신 실체적인 하나님의 어린양의 빛은 백성들로 하나님의 나라로 무사히 가도록 하기에 충분하였다. (163.2)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갈망하면서 날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기를 요구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흑암 중에서 헤매고 있다. 왜냐하면 표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제3일에 고기를 먹음으로써 주께서 여전히 죽어 계신다고 믿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처럼, 그들은 생명과 영광의 주께서 하늘에서 아버지의 우편에 살아계셔서 이 지상에서 그분을 신뢰하며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빛과 도움을 주시려고 하시기는커녕 아직도 요셉의 무덤에 죽어계신 듯이 애통하는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 그분이 하늘 성소로부터 우리에게 보내시는 기별은, 나는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계 1:18)는 것이다. (163.3)
표 상 실 체
레 3:1 화목제는 흠이 없어야 했다. 요일 3:5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셨다.
레 7:29-30 제물에게서 기름을 떼 내었다. 고후 13:5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레 7:31 기름을 태웠다. 마 25:41 죄와 죄인들은 태움을 받을 것이다.
레 7:32-33 어깨는 제사장의 몫이었다. 사 9:6; 눅 15:5 정사가 그리스도의 어깨 위에 놓일 것이다.
레 7:31 “가슴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사 40:11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신 18:3 두 볼은 제사장의 몫이었다. 마 26:67; 사 50:6 구주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레 7:15-16 첫째 날과 둘째 날에 고기를 먹어야 했다. 고전 15:3-4 그리스도께서는 첫째 날과 둘째 날에 무덤에서 쉬셨다.
레 7:17-18 제3일에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마 28:6; 눅 24:21 제3일에 천사가 텅 빈 무덤 위에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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