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적인 대속죄일이요, 실제적인 심판의 날인 이때에, 우리는 한가하게 있을 수 있겠는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영혼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분의 사업과 조화되지 않는 어떤 기업에 종사한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지엽적인 문제로 바쁜 자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와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R&H, 1. 21. 1890.).
“하나님의 백성임을 공언하는 자들이 그들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지엽적인 문제로 바쁠때,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잃는 모험을 그만큼 하는 것이다”(
Manuscript, E. G. W.). 이것이야말로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육체 노동”이 아닐까? 지금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당신의 자녀로 확정한 자들의 사건을 조사하고 계신다. 이러한 때에 만약
우리가 심판의 기별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기별을 전하는 일에 무관심하거나 냉담하다면, 과연 표상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보다 덜 심각한 선고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실제의 심판 날을 모형이나
“그림자”보다 덜 관심 있게 여기실 것인가? 대속죄일은
“어떤 육체 노동도 하지 말”(
레 23:25, 킹제임스역)고,
“쉼의 안식일”로 지켜야 할 날이었다. 그렇다면 이 속죄의 원형적인 날에 우리의 모든 시간과 수입, 몸과 마음과 영혼의 모든 힘, 종류를 막론한 우리의 모든 노동을,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촉진시키고 마치는 유일한 목적에 전념하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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