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그림자 제5편 각종 제사 제 22 장 붉은 암송아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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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덴의 문 앞에서 드려진 첫 희생제물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희생제물의 생명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상이었다. 그러나 붉은 암송아지를 드리는 일은 여타의 제물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에 필요에 따라 드려진 것으로서, 이유야 어떻든 죽은 시체를 만진 자를 그 예식적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하기 위함이었다(신 21:1~9). (150.1)
 암송아지는 흠도 없어야 하고 붉은색이어야 했는데, 이와 같이 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표상하였다. 그것은 또한 점도 없어야 했는데, 그리하여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고후 5:21)를 예표하였다. 그것은 멍에를 한 번도 멘 일이 없는 것이어야 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지내온 암송아지여야 했고, 결코 어떤 일을 하도록 강요된 적이 없어야 하였다. (150.2)
 이것은 자신의 뜻을 따라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상징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율법 위에 계셨고, 그분에게는 어떤 멍에도 지워지지 않았다(요 10:18). 겟세마네의 고뇌를 참고 있는 동안, 그분은 피로 범벅이 된 땀을 이마에서 닦으시고 세상을 멸망당하도록 버려두신 채 하늘에서 누리던 그분의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셨다. 그리스도로 하여금 갈바리의 십자가로 향하도록 강권한 것은 하늘의 지고(至高)한 사랑의 힘이었다(요 3:16). 그분은 스스로 선택하고 자원하여 제물이 되셨다. 그분은 자신을 세상 죄를 위해 바치셨다. 타락한 인류를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사랑하신 것만큼이나 컸으므로, 그분께서는 바쳐진 생명을 가납하셨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해 속죄할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율법의 요구와는 무관하셨고 그분만이 잃어버린 인류를 구속할 수가 있으셨다. (150.3)
 붉은 암송아지를 드리는 일은 매우 인상적인 예식이었다. 암송아지는 다른 희생제물들처럼 성전으로 끌려가는 대신 한 번도 경작해보거나 씨를 뿌려본 일이 없는 진영 밖의 거친 골짜기로 끌려갔다. 흰 세마포로 지은 제사장 예복을 입은 제사장이 암송아지를 끌고 갔고, 그 뒤에는 성읍의 장로들과 레위인들이 따랐다.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 실도 함께 희생을 드리는 장소로 운반되었다. 행렬이 거친 계곡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멈춰 섰고, 그때 장로들이 나아와 암송아지를 죽였다. 제사장은 그의 얼굴을 성전으로 향한 채 피를 취하여 그의 손가락으로 성전 쪽으로 일곱 번 뿌렸다. (151.1)
 사람이 들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도 누가 죽였는지를 알 도리가 없을 경우에는 살해된 사람이 발견된 장소에 인접한 성읍의 장로들이 나아와서 붉은 암송아지의 몸 위에서 그들의 손을 씻었다. 그때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무죄한 피를 그들 위에 돌리지 말기를 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신 21:1~9). 그렇게 한 후에, 피를 포함한 암송아지의 몸 전체를 태웠다. 불꽃이 활활 타오를 때, 제사장은 가까이 가서 백향목, 우슬초 그리고 홍색 실의 일부를 불꽃 속에 던졌다(민 19:1~8). (151.2)
 붉은 암송아지는 진영 밖에서 태웠다. 그것은 히브리 민족을 위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만일 모든 제물이 성소 뜰 안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 곧 히브리 민족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붉은 암송아지는 진영 밖에서 드려짐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모든 족속과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상징해 주는 것이 되었다(히 13:12~13). (152.1)
 여호와의 사랑과 겸손은 참으로 놀랍다. 가난하고 버림받고 실의에 찬 영혼이 자신은 드려진 희생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붉은 암송아지는 진 밖으로 끌려 나갔을 뿐만 아니라, 한 번도 경작해본 일이 없는 전혀 쓸모없고 거칠고 돌 많은 계곡으로 끌려갔다. 아무도 그 땅을 경작해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상징한 독특한 제물을 드리기 위한 장소가 이곳으로 선택되었다. 그것은 율법 위에 계신 한 분,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152.2)
 사탄이 사람 안에 있는 창조자의 형상을 심히 망가뜨렸기 때문에 사탄의 속성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할지라도 염려할 것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권능의 팔로써 그와 같은 사람을 자신의 보좌에 함께 앉도록 끌어올릴 수 있으시다. 전 생애가 마치 거친 계곡과 같이 방탕하고 하잘것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눈을 하늘 성소로 향하여 그의 죄를 자복하고 자비를 탄원한다면, 붉은 암송아지의 피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마치 붉은 암송아지의 피가 거친 돌들의 계곡 위에 뿌려진 것과 똑 같이 그의 방탕한 생애 위에 뿌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한 자에게 방탕한 생애를 산 십자가 위의 강도에게 말씀하듯이,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38~43)고 말씀하실 것이다. (152.3)
 이 표상적인 붉은 암송아지 제사를 통하여, 죄 중에나 이교의 흑암 중에 너무나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희망과 구원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이 희생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그림자였다. 이제 표상이 실체를 만났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진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그분이 들어 올리실 수 없을 만큼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풍습과 습관은 한 사람을 정죄하면 그가 잃어버린바 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율법 위에 계신다. 그분은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끝까지 구원할 수 있으시다(히 7:25).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을 불 속에 던지는 것은 땅과 모든 초목을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정결케 하는 것을 상징한다(사 65:17~19). (153.1)
 붉은 암송아지의 몸을 태워서 재가 되게 한 후, 시체를 만짐으로 부정하게 되지 않은 사람이 그 재를 모아 정결한 장소로 가져갔다. 그 재는 시체를 만짐으로 부정하게 된 자의 정결을 위하여 사용되었다(민 19:9~10). 만일 사람이 장막 안에서나 집 안에서 죽으면, 시체를 만진 모든 사람과 그 집은 정결케 될 때까지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죄의 끔찍한 본질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죄의 결과인 동시에 죄의 상징임을 가르쳐주었다(약 1:14~15). 재의 일부는 깨끗한 물에 담갔고, 예식적으로 정한 자가 우슬초와 백향목 한 묶음을 그 잿물을 적셔서 장막과 그 장막 안에 있는 물건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뿌렸다. 이 일은 모든 사람이 정결케 될 때까지 여러 번 반복되었다(민 19:18~19). (153.2)
 그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신 후, 그 피를 아버지 앞에 보이시며 사람을 죄의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하기 위해 하늘 성소의 첫째 칸에 들어가셨다(히 9:11~12). 정결한 물을 뿌리기 위하여 사용된 백향목과 우슬초는 정결케 하는 물의 뿌림을 받은 사람이 세상의 모든 도덕적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됨을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그 물을 여러 번 뿌린 것은 철저한 정결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154.1)
 다윗이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을 때, 이 예식을 분명히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7). 바울이 히브리인 형제들에게 편지를 쓸 즈음, 그의 마음은 표상에서 실체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3~14). (154.2)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도 이 아름다운 상징이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함으로 지나쳐버린다. 그들은 구약은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성소 봉사와 레위기의 율법 속에 포함된 휘황찬란한 표상들과 상징들을 주셨다. 모세는 백성들이 성소 봉사를 그가 준 것으로 생각할까 심히 두려워한 나머지, 무려 200번 이상이나 하나님 자신이 그것들의 제정자이심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명하시기를”이란 표현들로써 확신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표상들과 그림자들로 이뤄진 놀라운 제도를 주셔서, 에덴으로부터 십자가까지 빛을 던져줄 뿐만 아니라, 죄된 인간에게 십자가로부터 시간의 종말까지 이르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보여주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알기를 바랐다. 이 표상적 예식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통하여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마치 대형 반사경과 같이 빛을 던져주고 있다. 구주께서는 모세의 기록들을 연구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요 5:46~47). (155.1)
표 상 실 체
민 19:2 흠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 히 9:13-14 그리스도께서는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셨다.
민 19:2 흠이 없어야 했다. 요 15:10; 고후 5:21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결코 불순종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셨다.”
민 19:2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고, 한 번도 어떤 일을 하도록 강요당하지 않아야 하였다.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민 19:3; 신 21:4 붉은 암송아지는 한 번도 갈아 본 일이 없는 거친 계곡의 진 밖에서 죽임을 당했다. 히 13:12; 요 10:16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민 19:5-6 붉은 암송아지, 백향목, 우슬초, 홍색 실을 불에 태웠다. 벧후 3:7 “땅은 ∙∙∙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민 19:17-19 예식적으로 부정한 사람들은 재를 뿌림으로 정결케 되었다. 고전 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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