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5 편 지성소 제26장 속죄소와 셰키나
 법궤는 “언약궤”(민 10:33; 히 9:4)라고 불렸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언약의 “돌판”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출 25:16; 31:18). 그리스도께서는 “언약의 사자”(말 3:1), 즉 “언약의 천사”(부조와 선지자, 252)라고 불리셨다. (242.4)
 왜냐하면 시내 산에서 율법을 선포하실때, 아버지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자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언약의 천사”라고 불리심을 보고, 어떤 이는 그리스도가 덮는 그룹 중의 한 분이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으셔서 왕의 지위를 차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언약의 사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믿는 자녀들의 기도를 가납되게 해주시는 중보자이시다”(교회증언 8, 179).8) 그분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천사가 아니시다. 그분을 “천사(天使)”라고 부를 때 그 용어는 사자(使者 · messenger) 라는 의미를 지닌다. (242.5)
 여호와를 상징하는 셰키나
 속죄소 위에 있는 신비한 그룹들 사이에 셰키나의 영광이 있었다. 수호하는 그룹에서 반사된 이 눈부신 빛의 찬란함은 너무도 밝아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셰키나라는 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말은 여호와의 가시적인 위엄을 표현하기 위하여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쓰였다. 특별히 첫 번째 성소와 솔로몬의 성전의 속죄소 위에 있는 그룹 사이에 머물러 있던 영광의 광채를 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성전에는 성전 안에 법궤도 없었고 속죄소도 없었다. 성경의 여러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셰키나는 구름에 둘러싸인 가장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빛이었으며, 대부분 구름만이 보였으나 특별한 경우에 영광이 나타났다.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이여, 주는 빛을 비추소서(시 80:1, 신킹제임스역).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삼으심과 영광 ∙∙∙ 이 속해 있고” (롬 9:4. 신킹제임스역), “내가 성소에서 주를 뵈온 것같이, 주의 권능과 주의 영광을 보고자 함이니이다”(시 63:2, 신킹제임스역)라고 자주 언급한다. (242.6)
 문자적으로, 셰키나라는 말은 거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것의 어원은 또한 머무르다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창세기 3장 24절의 문자적인 번역은 이러한 생각에 빛을 던져 준다. 그러므로 “이같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의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을 두어,9)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242.7)
 하나님의 뜻이 셰키나에서 나타남
 제사장의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우림과 둠밈에 의해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속죄소 위 셰키나에서도 나타났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민 7:89). 이 일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나님의 기별은 때때로 구름 속에서 들리는 소리틀 통해 대제사장에게 전달되었다. 때로는 바른쪽 천사 위에 빛이 비치어 시인 또는 가납을 표하고, 왼쪽 천사에게 그늘이나 구름이 머물러서 불가 또는 거부를 나타냈다”(부조와 선지자, 349). (242.8)
 속죄소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와 자리의 상징인 반면에, 셰키나는 여호와 자신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나타내고 있음이 명백하다. 벽과 휘장과 천장에 나타난 천사들의 형상이 지성소를 채웠듯이, 하늘 성소의 이상 속에서 이사야는, “주께서 ∙∙∙ 보좌에 앉으시고, 그의 옷자락(천사들)은10) 성전을 가득 채웠”(사 6:1)음을 보았다. (242.9)
 그림자가 단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의 외관만을 그려 주고, 생활과 성격은 드러내지 못하듯이, 말할 수 없이 장엄한 영광 가운데 있는 셰키나가 있는 속죄소도 단지 그림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를 희미하게 반영하고 있다. (242.10)
 보좌의 기초인 하나님의 율법
 법궤가 속죄소를 떠받치고 있듯이, 법궤 안에 있는 율법은 하나님의 보좌와 정부의 기초를 나타낸다.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여기서 다시 “긍휼과 진리(사랑과 율법)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시 85:10)는 또 다른 한 장면을 보게 된다. 하나님 정부의 근본적인 율법을 파괴시키는 것은 그분의 보좌를 허물고 그분의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한 자들을 위하여 그분의 피로 호소하시는 앞에, 속죄소와 함께 있는 법궤 안에 소중하게 간직된 율법의 돌비는 다음의 사실을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인류의 구속의 계획에는 공의와 자비가 결합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결합은 오직 무한한 지혜만이 고안해 낼 수 있고, 무한한 능력만이 성취시킬 수 있다. 그것은 하늘을 경탄과 경외감으로 충만케 하는 결합이다 ∙∙∙ . 이것은 천사들이 알기를 원하는 자비의 오묘이다. 그 오묘는 하나님께서 회개한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당신이 의롭게 되시는 것, 타락한 인류로 더불어 다시금 교제를 새롭게 하시면서 동시에 그분께서 의로우실 수 있다는 것, 그리스도께서 수많은 무리들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구원하시려고 강림하시는 것, 그들에게 흠이 없는 당신의 의의 옷을 입히시고, 일찍이 타락한 일이 없는 천사들과 연합시키사 당신 앞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 등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415; 벧전 1:12).11) (242.11)
 1) 속죄소의 이름은 시은소(킹제임스 역), 시은좌(새번역), 긍휼의 자리 (신킹제임스역)라고 불리어진다.

 2) He is our propitiation, or atonement, our mercy seat. * mercy seat(시은소, 킹제임스역), 화목제물은 헬라어 “힐라스테리온”으로 “화목, 대속, 속죄”를 의미하며, 즉 “속죄소”를 의미한다.

 3) Between the cherubim was the Shekinah, representing the visible presence of God.

 4)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개역판). 사랑을 통해 왕위가 견고해진다(쉬운성경).

 5) beaten — 쳐서 만든(금을 두드려서), 찧어서 (감람을 으깨어서), 얇게 쳐서(금을 쳐서 얇게), 이 용어들은 하늘이 겪는 슬픔과 고난, 주님이 당하실 고난과 삼위 하나님께서 겪으신 고난을 말한다.

 6) The cross is a revelation to our dull senses of the pain that, from its very inception(시작), sin has brought to the heart of God.

 7) 미가엘“누가 하나님과 같으냐?”로, 군(君, 개역판), 통치자 (킹제임스 역), 천사장 (새 번역)으로 부른다.

 8) "The Angel of the covenant, even our Lord Jesus Christ, is the Mediator who secures the acceptance of the prayers of His believing ones." 8T 179.

 9) He tabernacled, He shekinahed, placed—영문판, 두어.

 10) ‘옷자락’ 이라고 번역된 “train” 은 수행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11) “the union of justice and mercy in the plan of human redemption. This union infinite wisdom alone could devise and infinite power accomplish; it is a union that fills all heaven with wonder and adoration. The cherubim of the earthly sanctuary, looking reverently down upon the mercy seat, represent the interest with which the heavenly host contemplate the work of redemption. This is the mystery of mercy into which angels desire to 100k——that God can be just while He justifies the repenting sinner and renews His intercourse with the fallen race; that Christ could stoop to raise unnumbered multitudes from the abyss of ruin and clothe them with the spotless garments of His own righteousness to unite with angels who have never fallen and to dwell forever in the presence of God.” (GC, 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