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5 편 지성소 제26장 속죄소와 셰키나
 

 속죄소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113센티미터), 광이 일 규빗 반(68센티미터)이 되게 하”였다.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連)하게” 하였다.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출 25:17-21;37:7~9)었다. (239.1)
 속죄소라는 이름은 율법을 범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시행되는 곳을 상징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1) 이것도 역시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바울이 하나님께서 그분을 “화목제물”(롬 3:25; 요일 2:2), 즉 히브리서 9장 5절에 번역된 것과 같은 의미인 “속죄소”로 세우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분을 통해서만 우리는 “죄를 면제”받을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화목제물, 즉 속죄, 우리의 속죄소가 되신다.2) (239.2)
 하나님의 보좌의 상징인 속죄소
 정금을 입힌 나무로 만든 법궤와는 달리, 속죄소는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요한은 지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며, “보좌 앞에 있는 금 제단”(계 8:3, 킹제임스역)이라고 말했다. 금 제단(분향단)은 지성소에 있던 속죄소 바로 앞 성소에 있었다. 그룹 사이에는 하나님의 가시적인 임재를 나타내는 셰키나가 있었다.3)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시 99:1),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하나님)여”(시 80:1; 왕하 19:15)라고 말하였다. 이 곳, 증거궤 덮개인 속죄소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령”(출 25:22, 신킹제임스역)을 주셨다. (239.3)
 하나님의 보좌는 자비의 자리, 즉 자비의 보좌一속죄소 —이다.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자비는 용서하리라는 의지를 담은, 적에 대한 동정적인 대우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속죄소는 누구의 자리를 나타냈는가? 유일한 답은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 103:8)신 그분의 자리, 즉 그분의 보좌를 나타내는 것이다. (239.4)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 인자를 천대(수천 대까지, 신 7:9, 킹제임스역)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출 34:6, 7; 20:5, 6)시는 분이시다. 법궤(法植)는 하나님의 십계명이 새겨진 돌비를 깊숙이 간직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함이었다. 우주의 근본이 되는 이 율법을 범하는 것은 죄이며(요일 3: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고(롬 3:23), 모두 악한 행실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골 1:21).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 즉 그분의 자리인 자비의 자리(속죄소) 위에, 원수를 용서하여 주시겠다는 의지와 동정심을 가지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좌정하여 계신다. (240.1)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 자비에서 나오는 사랑은 사랑의 독특한 표현이다. 자비는 주어지는 대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비가 행사된 것은 죄 때문이다”(교회증언 7, 264). 모든 의의 원수가 영원히 사라지고, 더 이상 죄인이 없을 때, 자비의 “적극적인 행사”를 위한 기회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죄가 영원히 사라지고 자비의 행위는 더 이상 표명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이와 같은 속성은 원수와 죄인을 향해서만 행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하시겠다는 섭리와 자비를 보여주시겠다는 섭리는, 영원하신 분의 속성으로서 불변할 것이다. 하나님의 이 속성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 속해 있다. 하나님 보좌가 속죄소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전혀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보좌도 자비로 받들어지느니라”(잠 20:28, 킹제임스역).4)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참보좌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240.2)
 금으로 쳐서 만든 그룹
 속죄소 양쪽 끝에는 순금으로 만든 장엄한 천사의 형상이 있었다. 두 날개는 “서로 맞닿아”(초기문집, 252) 위로 뻗쳐 있었다. 천사는 얼굴을 마주보며, 아래의 법궤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향하여 그들의 머리를 숙여 공경을 표시하였다. (240.3)
 이 그룹들의 재료인 순금은 쳐서 만든(beaten) 금이었다.5) 이미 말했듯이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으로 표상하는 등대도 역시 쳐서 만든 금으로 되어 있다. 성령을 상징하는 빛을 위하여 사용된 기름도 찧어서 만들었다. 천사 형태의 수를 놓는 금실도 금을 얇게 쳐서 자른 것으로 만들었다(출 39:3). 금을 쳤다는 것은 하늘이 죄 때문에 겪어야 할 슬픔과 고난을 상징한다. (240.4)
 “죄로 인하여 우리의 창조주께서 받으시는 괴로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온 하늘은 그리스도의 고뇌를 함께 당하였지만, 그 고뇌는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나타나셨을 때에 시작되거나 마쳐진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죄가 처음으로 생겼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느끼셨던 고통을 우리의 둔한 감각에 나타내 보이고 있다”(교육, 263).6)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뿐만 아니라 하늘의 모든 천사들까지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필요한 무한한 희생에 참여하였다. 인류가 죄를 범하였다는 소식은 모든 천사의 수금 소리도 그치게 했으며, 실망과 슬픔으로 천사들은 면류관을 그들의 머리에서 벗어 던졌다. 어떻게 그들의 사랑하는 사령관을 비천하며 고통 많은 인간의 생애로 넘겨줄 수 있었던가? 그때부터 구속의 계획이 완전히 세워질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모든 유혹을 견디시고 모든 시험과 핍박을 참아내시며, 이후 그분의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시련을 겪는 동안 하늘도 동일한 고통을 경험할 것이었다(사 63:9). (241.1)
 그룹은 누구를 나타내는가?
 이 두 그룹은 셰키나 영광의 왼쪽과 오른쪽에, 비길데 없이 찬란한 빛을 받으며 서 있다. 그들은 “만왕의 왕께서 거하시는”, “영원한 보좌”와 그분의 법을 지키는 “빛나는 수호자”(부조와 선지자, 357; 각 시대의 대쟁투, 414)인 두 특별한 천사를 나타낸다. 그들은 “천사들 중 가장 높임을 받는 자”들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 내내 그분과 함께 있었으며, 그들은 그분의 부활 시에 무덤에 내려왔었다(요 20:12; 시대의 소망, 780, 830). 또한 그들은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바로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시대의 소망, 80, 831, 832)는 확신에 가득 찬 말로 제자들을 사랑과 동정으로 위로하던 두 천사이다. (241.2)
 이 두 천사의 이름은 무엇인가? 성경은 단지 그들 중 한 천사의 이름만을 밝히고 있다. 죄가 우주에 들어오기 전, 빛의 전달자인 루시퍼는 “기름 부음을 받은 그룹이요, 덮는 그룹”이었으며, “하나님의 거룩한 산”(겔 28:14, 신킹제임스역)에 있던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다음으로 영광을 받는 위치에 있었다. 루시퍼가 하늘에서 내어 쫓겼을 때, 가브리엘이 그 지위를 대신하도록 임명되었다(시대의 소망, 693, 780). 그는 그리스도의 선두 주자였던 침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한 “주의 천사”로,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눅 1:11, 16, 19; 시대의 소망, 98)고 선언하였다.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셨던 천사도 가브리엘이다(눅 1:27, 28; 시대의 소망, 780). (241.3)
 “이 두려운 위기, 만물이 위험에 처하고, 신비스러운 잔이 고통 하시는 자의 손에서 떨고 있던 바로 그때에”(시대의 소망, 693), 그리스도에게 힘을 주고 용기의 말을 전해 주려고,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의 곁에 내려오는 특권을 받은 자도 바로 가브리엘이었다. (242.1)
 그리스도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가브리엘은 존경과 신임을 표하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밧모섬에 있는 요한에게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알리시기 위하여(즉 징조나 표상을 통해 보여 주시기 위하여)보내신 “그 천사”(계 1:1; 시대의 소망, 99, 234)도 가브리엘이었다. 다니엘에게 이천삼백 주야와 성소 정결에 관한 이해를 준 자도(단 8:14, 16; 9:21), “이 일들에서 나와 함께 견디는 자는 너희의 통치자 미가엘(Michael; Christ)7) 외에 아무도 없느니라”(단 10:21, 신킹제임스역)라고 말한 자도 가브리엘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다음 가는 영예로운 지위의 천사가 하나님의 계획을 죄 된 인류에게 드러내기 위하여 택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시대의 소망, 99) (242.2)
 루시퍼가 사악한 욕망으로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보좌 바로 옆에서 섬기는 자신의 놀라운 특권과 기회를 가브리엘에게 넘긴 것은 얼마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인가! 또한 너무도 무가치한 순간적인 죄의 쾌락 때문에, 영광스럽고 죄 없는 영원한 평화와 장래에 기쁨의 본향에서 누릴 영생의 전망을 내던져 버리는 자들도 똑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242.3)
 언약의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