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건제(贖愆祭)는 일종의 속죄제였다. 성경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속건제와 속죄제 사이에 구별을 두지 않는다. 어떤 곳, 곧 레위기 5:1~13과 같은 곳에서는 “속죄제”와 “속건제”가 동의어로 사용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각각 다른 제물로 구별되고 있다(겔 46:20). (147.1)
속건제를 직접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그것은 특히 “여호와의 성물(聖物)에 그릇 범과”하였을(레 5:15) 때 드려졌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성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음으로 범과하였을 경우이다. 그는 십일조를 내지 않았을 수도 있고(레 27:31), 첫 열매를 먹었을 수도 있고(출 34:26), 처음 난 양의 털을 깎았을 수도 있다(신 15:19). 어떤 죄를 범하였던지 간에 그는 속죄제물로서 어린양을 드려야 하였다(레 5:18; 6:6). 이 제물은 거의 일반 속죄제와 같이 처리되었다. 그러나 속죄제에서와 같이 피를 뿔에 바르는 대신 “번제단 사면”에 뿌렸다(레 7:1~7). (147.2)
이것으로 보아 일반 속죄제가 공적인 죄를 위한 것이었다면, 속건제는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종종 그것은 개인 자신만이 알고 있는 죄를 위하여 드려졌다. 만일 사람이 성물 중 일부를 자신의 용도를 위해 취했거나 이웃과의 거래 관계에서 부정직했거나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물건을 착복했다면, 그는 완전히 보상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제사장의 평가에 따라 5분의 1을 더해 주어야 했다(레 5:16; 6:5). (147.3)
언제나 잘못한 자가 배상을 하여야 했다. 만일 그가 이웃에게 잘못을 했는데 그 이웃이 죽었다면, 그는 그 친척에게 배상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 친척도 없다면 여호와께 배상을 하여야 했다(민 5:7~8). (148.1)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충분히 보상을 하지 않는 한, 속건제로 숫양을 바치는 일에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속건제의 특별한 목적 하나는 하나님이나 사람과의 부정직한 거래에 대한 속죄였다. 거기엔 잘못을 저지른 자가 양(羊)으로 제물을 드리는 것 외에 반드시 배상을 하여야 하였다. 속건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매우 분명히 가르쳐준다. 곧 우리가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거짓되게 행했다면, 죄를 고백하고 제물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반드시 잘못에 대한 수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148.2)
삭개오는 속건제의 규례를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생애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키는 즉시로 그가 잘못을 저지른 모든 사람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4배나” 갚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눅 19:8). (148.3)
속건제는 일반 속죄제보다 더욱 완전한 제물이었다. 죄를 위한 속죄 외에도 상징적으로 죄의 결과를 속해주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속건제를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표상으로 사용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영혼을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이 우주로부터 죄의 마지막 흔적까지도 영원히 제거하시기 위하여 피를 흘리셨을 때, 그분께서는 진실로 실체적인 속건제물이셨다. (148.4)
이사야 53:10을 유대인 번역가 레저(Leeser)는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여호와께서는 질병으로 자신이 깨지는 것을 기뻐하셨다. [이제] 그의 영혼이 속건제물을 가져왔을 때, 그는 [그의] 씨를 보고, 여러 날들을 살 것이며, 여호와의 기쁨이 그의 손 안에서 번성할 것이다.”(149.1)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릴 사람에게 여러 가지 귀중한 약속들이 있다.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그의 죄를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그는 화해를 하여야 하고 배상을 하여야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구주의 말씀 속에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1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