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5 편 지성소 제24장 지성소로 들어가는 그리스도인
 

 성화, 지성소의 통행증
 뜰에서 얻은 칭의(稱義)가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통행중인 것과 같이, 성소에서 완성된 성화(聖化)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통행중이다. 그러나 성화는 지상 생애가 끝나거나 유예 기간이 마칠 때까지 완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생애를 마쳤던 그리스도인이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늘의 책들에 기록되었던 자신의 생애의 기록에 의하여, 심판을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간다. 1844년에 심판이 시작된 이후,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산자와 죽은 자 모두가 심판, 즉 하나님의 집의 심판의 에 살고 있다. (222.1)
 둘째 휘장과 의미
 지성소의 입구에는 “둘째 휘장”(히 9:3)이 걸려 있었다. 이것은 성소 입구에 걸려 있던 첫째 휘장과 비슷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정교한 솜씨로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실과 가늘게 꼰 아마(베) 실로 휘장 하나를 만들되, 그룹들을 수놓아 그것을 만들지니라. 너는 시팀나무로 만들어 금을 입힌 네 기둥에 그 휘장을 걸고, 기둥의 갈고리들은 금으로 만들어 은으로 만든 네 개의 밑받침 위에 둘지니라. 또 너는 그 휘장을 갈고리들 밑에 걸어 놓”(출 26:31-33, 6, 11, 신킹제임스역)으라고 말씀하셨다. (222.2)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기둥 위에 걸린 휘장(揮帳)은 몇 가지 세부적인 장식을 제시하고 있다. 곧 왕실의 색깔인 청색, 자색, 홍색과 가늘게 꼰 아마(베)실, “네” 기둥과 그 받침, 조각목, 금과 은 등이다. 이 모든 것들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여러 면에서 우리의 구주를 표상한다. (222.3)
 휘장, 그분의 육체
 바울은 휘장이 그리스도의 육체를 표상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 .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 참마음 ∙∙∙ 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19~22). 휘장(揮帳)은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신, 육체를 입으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네” 기둥 위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 또한 역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사복음서가 인류 가운데 육체로 거하신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여러 국면들을 증언하며 묘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222.4)
 휘장이 제사장을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속죄소 위에 셰키나로 머물렀던 지성소로부터 갈라놓았던 것처럼,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다. 하지만 인성(人性)을 쓰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罪)를 친히 담당하셨다. 그분께서는 분리된 우리의 위치를 차지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도록 하셨다.1) 신성을 인성 속에 감추심으로, 그분은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로 하여금 마침내 하나님의 얼굴을 뵙도록 하셨다. 구속 사업이 마칠 때, “사이를 가로막아 놓았던 희미한 휘장 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으로 더불어 자유롭게 교통하는 특권을 얻는다”(각 시대의 대쟁투, 676, 677). 그때에 그토록 오랫동안 고대하던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계 21:3)시리라는 예언이 마침내 성취될 것이다. (223.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휘장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위로부터 아래까지”(마 27:51) 찢어졌다. 찢겨진 휘장은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을 나타낸다. 선지자 다니엘에게 주어진 표징은 “제사와 예물”이 금지될 때를 가리켰다(단 9:27; 마 27:50, 51). 이후로 지성소는 인간에게 드러난 장소로, 더 이상 신성한 곳이 아니었다. 셰키나도 더 이상 그 위에 머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라, 지상 성소에서의 거룩한 희생은 그쳤다. 그 이후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성소가 되셨다. 그때에 그분의 상하고 피를 흘리신 육체의 상징인 휘장에 남겨진 모든 자취는, 그분의 손과 발과 옆구리의 영광스러운 상처—“밝은 광선”(합 3:4, 난외주)과 같이 영원히 빛날 상처—로, “번개와 같은 광선”(모팻)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223.2)
 기록책인 휘장
 표상에서는 자복한 모든 죄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소로 옮겨졌으나, 항상 같은 방법으로 된 것은 아니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죄를 짓거나, 이스라엘 전체의 회중이 죄를 범한 이 두 가지 경우에 있어서는, 제사장이 속죄제물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장 앞”(레 4:6, 17)에 일곱 번(완전한 화목) 뿌렸다. 스트롱의 히브리어 사전에는 “장 앞”이라는 표현을 휘장의 앞, 휘장의 전면이라고 풀이하였다. 이는 속죄제물의 피가 휘장에 실제적으로 뿌려졌음을 나타내며, 휘장에 대제사장의 “손가락 자국”이 찍혔음을 의미한다.2) (223.3)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벧전 2:24)음을 예증하고 있다. (224.1)
 대제사장의 “손가락 자국”이 찍힌 휘장은 일종의 기록 보존책이 됨으로, 죄가 고백을 통해 용서받은 바 되었고 심판을 받기 위해 전면에 드러났음을 보여 주었다(딤전 5:24).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자복한 죄의 기록은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대속죄일까지 휘장에 남아 있었으며, 자복한 모든 죄는 표상으로 도말되었다. (224.2)
 위와 같은 생각에 위축된 어떤 이는, “그토록 아름다운 휘장이 피로 더럽혀질 수가 없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생애는 금으로 화려하게 수놓은 왕실 색깔의 휘장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순결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사 53:5, 6).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온 회중”(레 4:13, 17)을 위하여 희생제물의 피를 휘장의 앞에 뿌렸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그분의 몸에 담당하시고, “아버지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으므로,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의 진정한 소망도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각 시대의 대쟁투, 489)도록하셨다. (224.3)
 “해마다 새롭게” 한 휘장
 휘장은 “해마다 새롭게”(SP 3, 166, 167) 되었다. 이 표현은 휘장을 매년 말에 내려서 새것으로 바꾸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휘장은 진영이 다른 곳으로 옮겨질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내려지지 않았으며, 옮겨질 때마다 가장 신성하게 취급하였다. 만일 새 휘장으로 봉사의 매년 말에 바뀌었다면, 성전이 예루살렘에 세워지기까지, 광야 여정중의 40여 개를 포함하여 약 500개의 새 휘장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때에 휘장이 찢어지기까지는 1,500개 이상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가옥이나 의복 기타 무엇이든,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고 “새롭게” 할 수 있다. 사실상 새롭게 한다는 것은 다른 것으로 바꾸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이 말은 복원, 수선을 의미한다.3) 게다가 휘장을 해마다 새것으로 바꾸었다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상징하는 휘장의 표상적인 의미에 큰 손상을 가져온다. (224.4)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주 돌아가시는지, 혹은 다른 것이 그분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히 9:25). (225.1)
 그렇다면 휘장은 어떻게 “새롭게” 되었는가? 이는 적절한 질문이며, 분명하고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똑같은 형식의 질문으로, ‘표상에서 죄가 피에 의하여 옮겨졌던 속죄소나 금 분향단, 기타 그 외의 장소에 남아 있던 피의 흔적은 어떻게 제거하였을까?’라고 질문할 수 있다. (225.2)
 어떤 이들은 ‘레위인들이 성소의 책임을 맡았었으니(민 1:53), 흔적을 없애는 것은 그해의 봉사가 마쳐질 때의 그들의 의무가 아니었을까?’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제사장들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을 특별히 따로 구별하셨던 것은 사실이다(민 8:5~24). 그러나 레위인들이 성소의 어느방 안에 들어가도록 허락된 유일한 기회는 진영을 옮길 때뿐이었다. 그때일지라도 제사장들이 기구들을 덮기까지는, 그들은 “회중의 성막 일에 참여하”(민 4:30, 킹제임스역)기 위하여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성경절에는 레위인들이 피 흔적을 제거하여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어떠한 역할을 맡았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예레미야의 영감을 받은 말씀은 죄는 “잿물”“많은 비누”(렘 2:22, 킹제임스역)로 씻을지라도 제거할 수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죄를 제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이적이다. 그러므로 유대 제도의 권위자인 길버트의 답변이 성경적이며 올바른 것으로 보인다. 즉 대속죄일에 이 귀중한 휘장은 피가 뿌려진 성소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원상태의 정결한 상태로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이 아닐까?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피를 사용하여 “백성의 죄로부터 성소를 정결케 하였다(레 16:19). 이처럼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을 표상하는 것만이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수 있다”4)(E. G. W. 하나님의 자녀들, 225). (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