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의 기별과 영원한 복음 제 1 장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김기곤)
 ③ 바울은 복음을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롬 1:2)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야말로 복음의 내용이고 열쇠이며 모든 것이다. 아들을 벗어나면 복음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아들이 없는 설교, 아들이 없는 전도는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아들을 제외한 어떤 것도 복음이 아니다. 복음에 대해 논하는 모든 사람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요 3:36) 하는 이유이다. 아들에 관한 약속이라면 무슨 약속을 말하는 것인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롬 1:3)에서 나시겠다는 약속이다. 신성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비참한 육신이 되신다는 성육신의 약속이다. (16.1)
 ④ 그것 뿐만이 아니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리라는 약속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압”(사 53:5)었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부활하시리라는 약속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리라는 약속이다(롬 1:4). (16.2)
 ⑤ 또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가 나타나 있다(롬 1:17). 하나님의 의가 바로 복음의 내용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은 하나님의 의(義)지 결코 인간의 의(義)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구원과 완전을 논할때 사람을 바라보기 쉽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의는 단 하나도 복음에 섞이지 않았다. 성경에서 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이다. 타락 이후에는 인간의 의(義)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롬 3:24)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로마서는 설명한다. (16.3)
 ⑥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복음에는 사람의 능력이란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복음의 강력함과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거듭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성화되는 사람도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완전케 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부흥하는 교회도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17.1)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갈 6:14)기 때문이다. 자기의 능력으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자체 안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 결과에 대하여 실망할 것도 없다. 사람은 단지 복음을 전했을 뿐이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헛되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고전 15:58). (17.2)
 ⑦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약속이 복음의 정의이고 복음의 내용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라면, 복음의 결과는 구원이다(롬 1:16). 복음에만 구원이 있다(롬 1:16). 구원은 어떤 행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느냐 거절하느냐에 달려있다.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다(롬 1:18).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어떤 장소나 사람이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17.3)
 어떤 특별한 설교가 구원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구원은 복음에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열 번째 재앙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을 믿고 피를 바른 사람은 그 즉시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다. 천사가 지나간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겠다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결과는 구원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졌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의 나의 구주이다. (18.1)
 ⑧ 또한 복음의 효능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롬 1:17).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구절은 등위(等位)접속사인 카이(κα) 즉 영어의 “그리고”(and)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에크(εκ)와 에이스(είς).(영어의 from~ to~)로 연결되어 있어서 처음 믿음에서 더 높은 믿음으로의 발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화의 단계를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복음 속에 거하는 사람은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화의 과정 속에 살게 된다. 개인의 결심이나 능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18.2)
 ⑨ 복음이 돌 감람나무인 우리를 참 감람나무이신 그리스도에게 접 붙여 주는 것을 구원이라 부른다(롬 11:17, 18). 이제 돌 감람나무 가지는 돌 감람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돌 감람나무 가지로서는 죽었다. 그리고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참 감람나무 가지가 되어 거듭나게 되었다. 여기서 참 감람나무의 역할이 끝나고 이제는 가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참 감람나무는 계속해서 뿌리의 진액과 영양분을 흘려보내고 그 가지가 참 감람나무의 가지로서 건강하게 자라나게 한다. 그것까지도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4월의 가지에서 5월의 가지로 그리고 열매를 맺는 10월의 가지로 접붙임을 받은 가지가 자라도록 한다. 이것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말씀의 뜻이다. (19.1)
 ⑩ 그렇다면 접붙임을 받은 가지가 할 일은 무엇인가? 비록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나 그 가지 속에는 아직도 돌 감람나무의 속성들이 남아있다. 그 속성들은 끝임 없이 참 감람나무의 열매가 맺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래서 가지 속에서 무서운 싸움이 일어난다. 두 속성의 싸움이다. 선과 악의 싸움이다. 이것이 로마서 7장의 싸움이다. 회개가 깊어갈수록 죄된 본성이 뚜렷하게 보이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부르짖음이 발해진다. 그러나 이 싸움조차도 가지가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한 승리는 정해진 것이다. (19.2)
 그렇지만 가지가 접붙임을 받았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참 감람나무의 수액을 계속해서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뿌리와의 관계가 부실하면 가지는 말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즉시로 회복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 그 상태가 진척되면 그 가지는 말라서 죽은 가지가 되고 만다. 어떤 가지는 죽자마자 떨어져 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가지는 채로 여전히 나무에 붙어있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계속하여 복음 속에 즉 참 감람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다. (19.3)
 복음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에 관한 것이라면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는 세 천사의 기별도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기별이어야 한다. 마지막 순간을 살아가는 마지막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호소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부르든, 건강기별이라고 부르든, 안식일 기별이라고 하든, 혹은 지성소 기별이라고 하든 그것은 복음, 즉 그리스도의 의와 구원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 (20.1)
 3. 세 천사의 기별은 왜 마지막 때를 위한 기별인가
 세 천사의 기별을 왜 마지막 때의 기별이라고 부르는가? 첫째는 세 천사의 기별이 모든 예언적 기간이 끝나고 일곱 재앙이 내리기 직전에 세상에 전파될 마지막 기별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세 천사의 기별의 내용이 종말적이기 때문이다. (20.2)
 가. 세 천사의 기별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이다
 첫째로 세 천사의 기별은 이 세상 가장 마지막에 주어진 기별이기 때문에 마지막 때를 위한 특별한 기별이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고도 긴급한 기별이다. 왜냐하면 세 천사의 기별은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주시는 하나님의 최후의 호소이기 때문이다. 이 호소가 끝난 후 15장부터는 더 이상의 호소가 없으며 바로 지상에 일곱 재앙이 내리면서 세상의 종말이 온다. 그러므로 세 천사의 기별은 마지막 때를 위한 하나님의 최후의 기별이다. 그렇다면 이 절박한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구원이냐 멸망이냐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종적으로 무슨 호소를 하시는 것인가? 틀림없이 그것은 지금까지 수천년동안 사람들에게 전해 주셨던 기별의 요약이며 핵심일터인데 그것이 무엇일까? (20.3)
 세 천사의 기별이 그렇게도 중요한 마지막 기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별의 내용을 알아내려고 연구했으며 각기 다른 주장들을 하여서 혼란이 일어났다. 혹자는 세 천사의 기별은 “심판의 기별”이라고 한다. 또는 세 천사의 기별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라고 정의한다. 혹은 “건강기별”, 혹은 “지성소의 기별”이라고도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장에 맞도록 세 천사의 기별의 내용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정확하게 성경말씀의 뜻일까? (21.1)
 세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선포함과 동시에 마지막 때에 전하는 최후의 경고를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과 심판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심판은 영원한 복음의 일부이다. 복음을 거절하는 불의한 사람은 즉각 영적 불의에 빠지게 된다(롬 1:18~32). 그들은 자기들의 불의로 진리를 막으며(롬 1:18) 경건치 아니하며(롬 1:18)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스스로 어두워진”(롬 1:21)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 사람에게 나타나는가? 로마서 1:18에 잘 나타나 있다. 로마서 1:18부터는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또 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사람은 복음 안에 살든지, 복음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심판 속에 살든지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만일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구원이 현재의 실재라면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도 현재의 실재(實在)다. 세 천사가 전하는 각각의 복음과 경고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21.2)
 ① 첫째 천사의 기별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6, 7).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