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천사의 기별과 영원한 복음 제 1 장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김기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11.1)
 홍수 전에 노아를 통해 구원과 경고의 기별을 주시고, 니느웨의 멸망 전에 요나를 통해,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 전에 예수께서 친히 기별을 주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마지막 심판하시기 전에 미리 경고와 구원의 기별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집행하실리가 없으시다. 그것이 바로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에 기록된 세천사의 기별인 것이다. (11.2)
 세천사의 기별은 마지막 때, 마지막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이다. 하나님과 사단의 대쟁투가 끝날 무렵, 이 세상의 역사가 끝나기 직전,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시는 마지막 복음과 경고가 바로 세천사의 기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중요한 기별을 세상 끝까지 전달하기 위하여 마지막 순간에 한 무리를 택하셨다. 그 특별한 사명을 가진 남은 무리가 바로 계시록 12장 17절에 그 역사적 신원과 정체가 밝혀진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임을 확인하게 된다. (11.3)
 그러므로 재림교회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는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세천사의 기별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데 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전해야 할 세천사 기별의 내용과 목적과 중요성에 대하여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그 기별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세천사의 기별에 대해서 누구나 잘 아는 것 같지만 자세히 물어 보면 뜻밖에도 많은 오해와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언의 신은 그러한 사실들을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12.1)
 우리는 첫째 천사의 기별과 둘째 천사의 기별에 대하여 설명하고 또 셋째 천사의 기별에 대하여도 상당히 아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적은 지식에 만족하여서는 결코 진리를 분명히 깨닫지 못한다. 생명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는 성경을 연구하며 자기의 마음을 살필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를 게을리하면, 불쌍한 영혼들에게 전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열심 있는 기도와 연구로써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찾는 겸손하고 부지런한 연구자는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그는 인간이 저술한 저서의 사상에서 도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지성들의 인도함을 받아 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된다.1 (12.2)
 1. 세천사는 누구인가
 공중을 나는 세천사의 모습이 거의 재림교회의 상징처럼 되어 있으면서도 막상 그 세천사가 누구인지 그 기별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세천사의 기별 중 어떤 특수한 부분만을 강조하여 새로운 빛처럼 나타내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세천사의 신원부터 차근차근히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12.3)
 수 천년 동안이나 계속된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공중을 날며 강력한 기별을 전하는 세천사는 과연 누구인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는 온갖 짐승의 세력들을 보며 낙망하였다(계 1~13장). 그러나 요한계시록 14장에서 공중을 날며 영원한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향해 경고하는 세천사의 강력한 모습을 보며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 세천사의 기별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호소는 끝이났으며 그 기별을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로 사람들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그 세천사의 사명이야말로 얼마나 중차대하고 간절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12.4)
 그렇다면 마지막 때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호소를 하는 그 세천사는 과연 누구인가? 하늘의 천사들인가? 어떤 초자연적인 세력인가? 아니면 우주에서 온 외계인들인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언젠가 “하늘에 나타나 큰소리로 외칠 천사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해도 우리는 그 천사들을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지구 역사상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키시어 복음을 전한 일은 없으시기 때문이다. 구스 내시가 광야를 지나 갈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면 더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에서 복음전도에 바쁜 빌립을 일부러 광야까지 보내시어 구스 내시에게 전도하게 하였다. 기독교 역사상 어떤 신앙부흥도 어떤 전도운동도 천사에 의해 주도된 일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마지막 호소를 하는 일을 천사를 시켜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세천사는 누구인가? 세천사는 “세상에 영원한 복음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남은 자손”을 상징한다.2 (13.1)
 나는 한 가지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는 첫째, 둘째, 셋째 천사의 기별을 경험하였다. 그 천사들은 공중에 날아가면서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선포하는 것으로, 그리고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아무도 이 천사들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데, 이들은 온 우주와 조화되어 일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깨우침을 받고 진리를 통하여 거룩하게 된 남녀들이 세 기별올 차례대로 선포하고 있다.3 (13.2)
 이 모든 기관들은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로 표상된 위대한 사업, 곧 그리스도께서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을 새상 거민들에게 경고해 주는 사업에 협력하는 하나님의 기구들이다.4 (13.3)
 요한계시록 14장의 세천사는 공중을 날아가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그것은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의 사업을 표상한다. 이것들은 모두 함께 연결되어 있다. 영속적이고 언제나 살아 있는 이 위대한 기별의 진리, 곧 교회에 대한 너무도 중요한 기별이므로 종교계로부터 매우 심한 반대를 받아 온 진리의 증거들은 소멸되지 않는다. 사단은 이 기별들의 주변에 그림자를 던지고자 끊임없이 노력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기별의 의미와 시간과 장소를 분명히 분별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별들은 시간이 존속하는 한 살아 있어 우리의 신앙적 경험에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5 (14.1)
 2. 세천사의 기별이란 무엇인가
 가. 세천사의 기별은 세천사의 복음이다
 세천사가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상징”이라면 그 세 천사의 “기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이다. 첫째도 복음이요, 둘째도 복음이요, 셋째도 복음이다. 한 단어로 핵심을 말하라고 해도 그것은 복음이다. “세천사의 기별”은 사실은 “세천사의 복음”이라고 해야 옳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은 공중에 날아가는 천사가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계 14:6)을 가지고 있다고 단순하고도 확실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14.2)
 그러므로 남은 자손들이 마지막 때 선포하는 기별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옛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선포하였던 것과 동일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좋은 소식”이다.6 그것은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기쁜 소식이다. 드디어 마지막 종말이 오는 이 재림의 엄숙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말씀이 이것말고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주셨던 영원한 복음의 말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사람을 구원하는 그 “영원한 복음”외에 도대체 무슨 말씀을 주실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그 영원한 복음이란 무엇인가? (14.3)
 나. 영원한 복음이란 무엇인가
 마지막 때를 위한 호소와 경고가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먼저 영원한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영원한 복음”을 잘 알지 못하고서야 어찌 이 기별대로 살며 그 기별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영원한 복음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복음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간단하다. 복음이 무엇임을 알면 영원한 복음도 알게되고, 세천사의 기별의 내용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5.1)
 ① 복음은 신약성경의 중심이다. 예수께서 이 지상에 오신 목적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눅 4:43). 그래서 그가 가르치신 기별의 핵심도 복음이었다(마 4:23; 9:35; 11:5; 막 1:14). 그리고 그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마침내 세상 끝이 올 것이었다(마 24:14; 막 13:10). 복음(εὐαγγέλιον)이란 말은 헬라어 유(εὐ)와 앙겔리아(αγγελία)의 합성어로서 좋은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다. 무엇이 기쁜 소식이며 무엇이 좋은 소식인가? (15.2)
 ② 복음이란 말은 신약성경에 110번 나오는데 공관복음서에 20번, 사도행전에 11번, 바울서신에 74번, 베드로전서에 4번, 요한계시록에 1번 나타난 것이 그것이다. 수적으로 보아도 바울이 압도적으로 복음이란 단어를 많이 쓰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바울의 기별의 핵심도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롬 1:1) 입은 사도로 생각했다. 그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행 20:24)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바울 신학의 핵심에는 복음이 자리잡고 있으며 바울은 모든 신앙의 중요한 문제들의 해답을 복음에서 얻었다.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