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서문 원 저자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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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책의 이면(裏面)에 깔린 이야기도 그 책의 내용 자체 만큼이나 흥미로운 경우가 드물지 않다. 안식일의 역사와 신학에 대하여 좀 더 깊은 이해를 갖고자하는 것은 소년 시절 이래의 나의 일관된 관심사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양친(兩親)의 가르침을 따라 안식일을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로 지켜 왔다. 나의 양친이 제칠일 안식일의 올바른 준수에 부여했던 중요성은 주로 나의 아버님이 이 귀중한 성경적 제도를 발견케 된 진기한 방법에 기인하고 있었다. (4.1)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던 나의 아버님은 1935년에 왈덴스 교회에 나가고 있던 동료 목수(木手)의 소개로 생전 처음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다. 아버님은 성경의 가르침을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왈덴스 교회에 입교하여 당시 로마에 있던 왈덴스 신학교가 운영하던 수요 성경학교에 열심히 출석하였다. 얼마후 한 신학생이 일요일 예배의 기원과 그 의의에 대한 공부를 가르쳤다. 그런데 이 공부는 결국 학생들 간에 일요일 예배의 성경적 기원을 내세우는 쪽과 그것을 반대하고 오히려 일요일 예배의 교권적 기원을 주장하는 쪽의 열띤 논쟁으로 발전되고 말았다. 아버님에게는 참으로 놀랍고도 난처했던 이 열띤 토론이야말로 주일(主日)의 성서적 기초와 역사적 기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귀중한 경험이었다. (4.2)
 이 문제를 공부한지 여러 달만에 나의 아버님은 결국 제칠일 안식일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에 의하여 파기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고 막중하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셨다. 사실상 그는 안식일을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표시하고 경험케해주는 하나님의 제도로 확신하였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기독교 교회를 찾지못한 그는 여러 달 동안 혼자서 안식일을 지키게 되었고 또 그렇게 되서 왈덴스 교회와의 관계도 단절되었다. 그 후 나의 양친은 한 친구의 가정에서 개최된 성경 연구 집회에 참석했다가 처음으로 체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곧 이어 그 교회에 입교하게 되었다. (4.3)
 그러나 나의 청소년 시절에는 주님의 안식일에 주님을 섬기며 안식을 누리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 때는 미국의 오늘날 처럼 1 주일에 2 일씩의 휴일이 있던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교사들과 학생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토요일은 휴일이 아니라 근무일이었다. 나의 급우(級友)들은 토요일에 결석한다고 하여 나를 “유대인”으로 불렀다. 친척들과 신부님들은 나더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신조들과 관습들, 그 중에서도 특히 안식일 준수를 포기하라고 자주 권고했다. 빈번히 이와같은 들볶임을 당할 때 마다 나의 마음 속에는 언젠가 기회가 이르면 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그리고 그 시의성(時宣性)을 연구하여 밝히리라는 소망이 더해갔다. 그러나 당시 십대의 청년인 나로서는 후에 교황청 그레고리 대학(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에서 그러한 연구를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당시로서는 비 가톨릭교도가 로마의 교황청 대학에 들어가 박사 학위과정을 이수한다는 일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4.4)
 본인이 1969년 가을에 교황청 그레고리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실로 이것은 이 대학 400년 역사에서 “분리해 나간 형제”(개신교도)로서 이 학교에 입학이 허락된 최초의 경우였다. 분명히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비록 본인이 “분리해간 형제”로서 입학은 했지만 그들은 나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고 하는 점이다. 초대 교회의 일요일 준수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적인 문제로 본인이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동안에 본인은 자유로운 분위기 가운데서 정중하고도 따뜻한 도움을 받았다. (5.1)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인 안식일에서 일요일로(From Sabbath to Sunday)의 초록이 1977년에 교황청 그레고리 대학교 출판소에 의하여 출판되었는데 이로써 본인은 본인이 발견해 낸 진실들을 종파가 다른 여러 학자들 및 교인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실상 그 책은 주요 신문들과 잡지에 실린 호의적인 서평(書評)들과 그밖의 기회들을 통하여 수 백명의 타 교파 학자들이 표시해준 너그러운 논평의 덕택으로 이미 6판(版)을 거듭하는 사이에 7만부 이상의 발행고를 기록하게 되었다. (5.2)
 본인이 받은 수 많은 편지들과 논평을 미루어 볼 때 현재 하나의 중요한 동향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것은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어떻게해서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와 같은 하늘의 제도를 포기하고 대신에 일요일 예배를 채택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인 과정을 재 검토하려는 진정한 관심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심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동반적 관계를 이해 하려는 새로운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두 신앙 사이의 대화가 높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기독교가 유대교의 뿌리와 줄기에서 솟아나온 것이란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는 일은 매우 유익한 것이 아닐 수 없다. (5.3)
 본인의 졸저(拙著) 안식일에서 일요일로에서 밝혀진 사실을 가지고 일요일 준수의 기원의 문제를 재 검토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타 교파의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쁘고 반가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예컨데 윌리 로르도르프(Willy Rordorf)는 1979년 이탈리아에서 발행된 자신의 책 고대 교회의 안식일과 주일(Sabato e domenica nella Chiesa antica)의 서문에서 말하기를 “바키오키 박사가 이 사료집(史料集)의 서론에 제시된 일요일 예배의 역사적인 기원에 동의를 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도 여기에 수록된 똑같은 자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각기 신앙 신조가 다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상호간의 좀더 나은 이해에 도달하려고 한다면 꼭 같은 자료를 가지고 함께 주의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p. viii)이라고 하였다. 마르쿠스 와도(Marcus Ward)는 The Expository Times(1978)에서 나의 졸저(拙著)에 대해 서평(書評)하여 말하기를 “분별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무 비판적으로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받아드리고 있는 일반의 안이한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으면 안된다”(p. 349)고 하였다. 골든 게이트(Golden Gate) 침례교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클레이톤 K. 해로프(Harrop)도 나의 졸저를 치하하는 글에서 “이 책은 일요일을 기독교의 예배일로 지금껏 믿고 살아온 우리들로 하여금 일요일 예배에 대한 우리의 종전의 주장을 좀더 주의깊게 검토하고 또 우리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덜 가혹한 태도를 갖게 할 것”1이라고 하였다. 또 놀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도 논평하기를 “본인이 확신하는 바 이 책은 오레 전에 확립된 우리들의 태도를 재 검토하도록 자극할 것”2이라고 하였다. (5.4)
 일요일 예배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역사적 신학적 주장을 재 검토하려는 일부 기독교 학자들의 노력은 또 하나의 중요한 동향, 즉 놀만 빈센트 펄의 말처럼 “도처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고유의 영적 가치를 필요로 하고 있다”3는 인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제임스 P. 웨스베리(James P. Wesberry)박사는 미합중국 주일(主日)연맹(Lord’s Day Alliance of the USA)사무총장 취임 연설에서 “건국 2 백주년을 맞는 우리 나라가 당면한 최대의 필요의 하나는 네째 계명으로 돌아가 다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허 지키는’ 일이다. 만약 이 날에 대한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향후 200년의 우리는 어떻게 되고 말것인가? 본인은 이 자리를 빌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이 고상하고 감동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나의 모든 힘을 다 바칠 것이며 본인의 직책을 십분 이용할 것임을 약속코저 한다. 이 것은 나의 속에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한다.”4고 하였다. (6.1)
 뛰어난 남 침례교 지도자인 웨스베리 박사는 이러한 고매한 언약을 지켜 고맙게도 본인의 금번 이책(안식일의 역사와 신학)을 위하여 추천사를 써 주시었다. 일반 독자들에게 이 책을 고맙게 추천해 주신 그 고마움은 이루다 표할 길이 없다. (6.2)
 이 책의 출판을 음양으로 도와주신 분들의 노고에 일일히 감사를 표하는 일은 참으로 용이한 일이 아니다. 우선 안식일에서 일요일로를 읽은 수 많은 학자들과 일반 독자들이 진정한 안식일 준수의 가치와 경험을 다룬 책의 필요성을 본인에게 강조해 주셨다. E. K. 벤디 비어(Vande Vere)박사, 에밀 레플러(Emil Leffler) 박사, V.H. 캄프벨 (Campbell) 여사는 본인의 원고를 읽으시고 표현상의 조언들을 주셨다. 비버리 B. 비취(Beverly B. Beach)박사는 본문의 수정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새로운 제안들 까지 해 주셨다. 앤드루스 대학의 성서 언어 교수인 레오나 글리텐 러닝(Leona Glidden Running) 박사는 원고의 첨삭 및 교정쇄의 과정에 많은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6.3)
 이탈리아의 미술가 프랑코 파이네(Franco Payne)는 이 책의 장정과 삽화들을 준비해 주었다. 또 2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이 책의 첫 판을 인쇄해 준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의 노고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6.4)
 트리니티 복음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의 신약학 조교수인 도날드 A. 카슨(Carson)교수는 영국 켐브리찌의 틴데일 성서 연구소(Tyndale Fellowship for Biblical Researchi in Cambridge)의 후원으로 마련된 약 700페이지에 이르는 “통합” 논문집을 본인에게 보내주었다. 카슨이 편집한 이 논문은 곧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그 성서 역사적, 신학적 연구라는 책명으로 출판되리라고 한다. 비록 나는 이 책의 모든 결론에 의견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요일을 지키는 학자들에 의하여 일요일 준수의 역사적 기원을 확립하기 위하여 가장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노력이 기우려진 것이란 사실은 인정한다. 아직 간행되지 않은 이 책의 원고를 읽어볼 수 있는 특권이 내게 부여됨으로써 본서 안식일의 역사와 신학(神學)의 몇 곳에서 그 반론을 제시할 수가 있었다. (6.5)
 본인은 본서(本書)가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이 인류를 위해 마련해주신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도록 확신시켜 주리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다. 본인이 바라마지 않는 것은 안식일의 기별과 경험의 시의성(時宣性)에 관한 이 신학적 논고(論考)가 근대 문명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동료 인간들로 하여금 안식일이라는 저 잊혀진 보화를 재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글들은 본인의 생활에 나타난 안식일의 축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려는 간절한 소망의 결실이다. 본인의 간절한 바램은 이 책이 자신들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키 위하여 몸부림 치는 이들에게 그리고 쉬임 없는 인간의 삶 속에서 진정한 안식을 추구하여 마지 않는 이들에게 그리고 개인적, 사회적 모순과 긴장 속에 사는 이들에게, 안식일을 통한 하나님의 진정한 안식을 발견케하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7.1)
 ※ 안식일에서 일요일로는 본서의 말미에 저자 자신에 의하여 한 장(章)으로 요약되어 있다.(역자 注)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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