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마태복음 24, 25 — 예수님께서 미래를 예언하심
 서론
 국민학교에 다니는 한 그룹의 소녀들이 필자의 집에서 아내에게 기본 요리법을 배웠다. 일정한 강습 기간이 끝나자, 그들은 그 동안 배운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고 부모들을 초청할 계획을 세웠다. 필자는 문이 닫힌 서재에 앉아서, 식사 시간이 가까와 올수록 더욱 흥분하여 떠들어 대는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15.1)
 필자의 서재는 현관에 바로 인접해 있었다. 그런데, 일이 조금 잘못되느라고, 초청받은 부모들이 도착할 즈음에 필자가 서재 안에서 큰 소리로 문을 두드렸다. 소녀들은 부모들이 벌써 도착하기 시작한 줄로 알고 야단 법석이었다. 앞치마를 벗고, 머리를 빗질하고, 식탁의 차림을 다시 손보고. 그러고는 허둥지등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다. (15.2)
 필자는 그들을 오래도록 실망시킬 수 없어 서재 문을 열고 나갔다. 웃으며 서재에서 나오는 필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들도 즐겁게 웃고 말았다. 정말로 그들의 부모가 도착한 이후로 식사 시간 내내, 그들은 필자로 말미암아 깜짝 놀란 사실을 두고 웃고 떠들었다. 우리들의 어린 요리사들의 흥분은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며 느끼는 흥분과 유사한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불의와 질병과 가난을 끝내고 번영과 평화의 다함 없는 시대를 여실 순간을 생각할때, 그 기쁨이 어떠할 것인가. (15.3)
 이같이 기쁜 소식은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기를 즐기셨던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던 어느날, 매우 중요한 일의 하나로 그 이야기를 하셨다. 수난 주간의 화요일 밤에 그리스도께서는 감람산 설교를 통해 당신의 영광스러운 재림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그 주(週) 금요일에 십자가의 사건이 발생되었다. 우리는 다니엘를 연구할 때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감람산 설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맥스웰의 다니엘 연구 11, 149, 157). 이제는 감람산 설교를 분석함으로써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삼고자 한다.

* 감람산 설교는 주로 마태복음 24, 25장에 수록되어 있다. 같은 내용이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도 있다. 그런데, 누가복음 21장은 산상 설교의 배경이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의 배경과 달라 보인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에 관한 설교를 같지 않은 여러 배경과 경우에서 하신 것 같다.
(15.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무리들이 당신의 재림에 대해 너무 조급해 할 것을 알고 계셨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우리들의 어린 요리사들처럼), 거짓된 징조와 거짓 스승들에 혹하여 그들의 준비를 망치게 될 위험이 뒤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같은 기만을 당하지 않도록 당부하시기 위하여 감람산 설교를 시작하셨다. (15.5)
 그리고,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잠 13:12)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재림이 지연될 것임을 조심스럽고도 분명하게 주의시키셨다. 그분은 금방 돌아오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두 관리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 한 관리인의 입을 통해, “주인이 더디 오리라”(마 24:48)는 암시를 남기셨다. 그리고, 유명한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을 “오랜 후에”(마 25:19) 돌아오는 자로 묘사하셨다. 역시 똑같이 유명한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에 비유하여 말씀하시기를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처녀들이] 졸며 잘새”(마25:5)라 하셨다. (16.1)
 재림이 지연될 것이라는 암시는 다른 구절에도 나타나 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끝은 아직 아니니라”(마 24:6).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마 24:10),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16.2)
 그러나, 재림의 지연이 이렇듯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만, 그에 따른 준비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부명하게 여러 곳에서 특히 네 개의 비유를 통해 교훈되었다(뒤의 “준비를 위한 비유”의 항을 참고하라). (16.3)
 감람산 설교의 배경
 감람산 설교는 화요일, 해가 어두워진 후에 행해졌다. 그 날은 대단히 고달픈 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여러 시간을 군중들의 질문에 시달리셨다. 원수들은 지칠 줄 모르고 복선이 깔린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일부 청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 같았으나 그들까지라도 대부분 예수님을 평화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군사적인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 인들을 무찔러 주시기를 희망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랑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시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마태복음 22, 23장을 읽어 본다면, 그 날에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를 대강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날 늦은 오후에, 그리스도의 3년 반에 걸친 헌신적인 봉사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대부분 변화되지 않고 예전 그대로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이제 한 이틀 후면 이들이, 이전에 그 조상들이 선지자의 죽음을 외쳤듯이 예수님의 피를 요구하는 아우성을 칠 것이었다. 그리고 훗날, 그들의 후손들도 그들 못지않게 못된 짓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 역시 그들을 위하여 애쓰는 전도자를 박해하게 될 것이었다. (16.4)
 해가 저물어 가자, 예수님의 심령은 찢어지는 듯 고통스러웠다. 예수님은 유대 민족이 회개하지 않으면 끔찍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반항이 끝내 로마 인들의 분노를 격발시켜, 기원후 70년에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지도 위에서 자취 없이 쓸어 버릴 것이었다. 그런데 원통한 것은, 일이 꼭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6.5)
 예수님은 흐느껴 우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16.6)
 그러고는, 고뇌 어린 선고가 그분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번린 바 되리라”(마 23:38). (16.7)
 이 선고에, 그리스도의 제자들까지 충격을 받았다. 민족의 긍지인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다니! (16.8)
 마음이 불안해진 군중들은 저녁 밥을 지으러 뿔뿔이 흩어졌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성전 건축의 정교한 예술성을 눈여겨 보시라고 짜증스럽게 졸랐다(마 24:1). 그것은 헤롯왕과 그 후계자들이 거의 50 년에 걸쳐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축한 것이었다(요 2:20). 그눈같이 하얀 대리석이 지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성전 정문의 황금판도 햇빛에 반사되어 불꽃같이 반짝였다. 거의 정사각형으로 다듬어진 성전 돌벽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왔다.*

* 예루살렘 멸망 당시 현장에 있었던 그 유명한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록하기를 “건물 내부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눈과 마음에 모두 충격적인 것이었다. 모든 벽면은 거대한 금판으로 덮여 있어서, 해가 뜨기가 바쁘게 눈부신 광채를 반사했다. 벽면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은 눈빛에 눈이 부실 때와 마찬가지로 눈길을 피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으로 성전을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에게는 멀리서 볼 때 그것이 마치 눈덮인 산과 같았는데, 이는 도금되지 않은 모든 부분이 순백색의 빛깔이었기 때문이다. 성전 건물의 꼭대기에는 새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뾰족한 금창살들이 꽂혀 있었다. 성전을 쌓은 돌 중에는 길이 45 규빗, 높이 5 규빗, 넓이 6 규빗 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The Jewish War, 5,222(Loeb 3:269). 당시의 1 규빗은 약 50cm 정도이다.
(16.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치 제자들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하신 듯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하셨다. (17.1)
 제자들은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같은 대 참화를 허용하실까?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것이 아닐까? (17.2)
 그 날 밤에, 예수님은 친히 감람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봉사 기간중 줄곧 함께 따라다닌 어부 출신의 네 사람 곧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가 같이 있었다(마가복음 13장 3절 참조). 그들의 머리 위로 거의 만월에 가까운 저녁 달이 떠올랐다. 발밑으로는 좁은 기드론 골끼기를 건너 백여미터되는 거리에 예루살렘 성이 신비스러운 달빛 속에 희미하게 그 모습을 비쳐 주고 있었다. 올리브 기름 등잔에서 솟아나오는 불빛이 수없이 많은 창문들을 통해 비치고 있었다. 이제 이틀 안으로 다가온 유월절 때문에, 성안의 분위기는 마치 오늘날의 미국인들이 크리스마스나 감사절을 눈앞에 둔 심정과 흡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원근 각지에서 친구들과 함께 몰려와 혹은 성안에 유숙하고 혹은 성밖에 천막을 치고 야영했다. 유월절 전야를 준비하느라 부산한 사람들의 소리와 나귀와 개들의 소리가 다섯 사람이 앉아 있는 감람산까지 들려 왔다· (17.3)
 성전은 손에라도 닿을 듯 가까와 보였다. 달빛 속의 성전은 더욱 희고, 더욱 크게 보였다. 제자들은 그 크고 잘 다듬어진 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예수님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하신 말씀 때문에 크게 심란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재난의 날이 그분께서 다시 오시는 영광스러운 날이 되는 것은 아닐까 ? 제자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