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하신 성령님 제 4장 성령의 위격 III. 위격적인 활동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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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은 위격체만이 할 수 있는 그런 행동을 하신다. 베드로는 삽비랴에게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행 5:9)고 책망하였다. 존 오웬(John Owen)은 “성령이 의지력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감화력이라면 어떻게 시험을 받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 앞서 아나니아는 “성령을 속였다”(행 5:3)고 한다. 따라서 성령은 시험을 당하시고 속임을 당할 수 있는 위격적인 존재이다. 또한 히브리서 10:29에서는 우리가 그를 “욕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109.1)
 그는 가르치는 분이며(딤전 4: 1; 계 2:7; 눅 12:12; 요 14:26), 명령하는 분이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사도행전 16:6에는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과 함께 일하신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행 15:28). (109.2)
 또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는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며(롬 8:26, 27), 우리를 위해 근심하기도 하신다(엡 4:30). 그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요 16:8). 또 마태복음 12:31, 32“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109.3)
 이 구절은 성령이 훼방을 당하실 수 있다고 말한다. 위격체 이외에 다른 것은 훼방을 당할 수가 없다. 성령이 위격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훼방하는 것보다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 더욱 심각하고 결정적인 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110.1)
 그리고 성령은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롬 8:16).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히 10: 15), “증거”라는 용어는 법률적인 용어로써 정당한 증거나 합법적인 증명을 제시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지적인 위격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성령은 의롭다 하시는 자요 거룩하게 하시는 자이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 11). (110.2)
 지금까지 성령이 위격적인 존재라는 결정적인 여러 증거를 살펴 보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론적으로는 그 사실을 믿으면서도 실제적인 삶에서는 그분을 위격을 가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는 매주 예배 시간에 성삼위께 영광과 찬송을 돌린다. 그리고 설교가 마칠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라는 축도를 듣는다. (110.3)
 그것을 들으면서 성령의 교통(koinonia), 즉 성령의 사귐을 알고 있는가? 성령과 교제하고 친밀한 친교를 나누는가? 여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이 있다. 성령의 위격을 올바로 알고 믿을 때 우리는 삶의 모든 분야를 그분의 인도에 맡기고 그분과 모든 것을 의논하고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성령의 위격에 대한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속죄의 교리 못지않게 중요한 가르침이다.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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