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결혼 언약 제 5 장 결혼 생활의 역할들 1. 머리-순종 관계의 관련 성경절 해석
 주권을 명시함 바울은 남편들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적 지도자적 자질을 닮으라고 호소하면서 머리됨의 뜻을 분명하게 밝힌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5~27). (181.3)
 바울은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다스리는 머리되심을 어떻게 행사하시는지, 곧 자신을 친히 희생하셔서 교회를 구원하시고 회복하시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동시에, 남편의 권위가 아내의 복지를 위하여 자기를 주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지도를 따르는 남편은 그녀의 주도권, 은사들, 인격을 꼴짓는 데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정신적, 영적 잠재력을 계발하는 데 용기를 북돋움으로 그의 머리됨을 행사한다. (182.1)
 바울은 더욱이 몸과 머리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머리됨을 분명히 한다(엡 5:28-30), 남편은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여야 한다. 이것은 남편은 아내의 모든 필요를 공급함으로 그녀의 복리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함을 뜻한다. 이와 같은 사랑과 희생적 지도는 계급주의적 결혼 관계에서 오는 모든 악들을 제거하고 둘이 “한 육체가 되”(엡 5:31)게 한다. (182.2)
 성서적으로 “머리됨”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머리된다는 것은 곧, 남편은 아내와는 다른 면에서 가족을 책임져야 할 것을 나타낸다. 남편은 부양자이고, 아내는 가정의 양육자이다. 그 둘은 높낮이가 없는 보완 관계에 있다. 각자는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서로의 책임을 보완한다. (182.3)
 머리됨과 복종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의 모델은 머리됨과 복종의 결혼 관계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숭고한 본보기이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됨은 교회에 자아희생적 사랑을 베풀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증거로, 예수님에 대한 교회의 복종은 교회로 하여금 충만함에 이르게 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한다. (182.4)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관계 사이의 비교는 결혼 생활에서 권위구조의 영원성을 말한다. 그러나 후자는 항상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화잇(Ellen White)은 기록한다. “남편이 그리스도께 굴복하지 아니하면서 가정의 머리로서 지배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41 (183.1)
 머리됨이나 복종 어느 것도 자기 성장이나 개인적 성취를 위한 가능성을 약화시키거나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조직에 있어서 효과적인 지도자는 권위 아래 있는 부하들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고무시켜야 하듯, 지도자는 부하들의 관심을 알아야 하고, 부하들은 지도자의 소원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권위의 행사(머리됨)와 권위에 대한 반응(복종) 간에 조화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183.2)
 7) 남편—머리됨을 거절하는 이유들
 엄청난 오해
 왜 어떤 여성주의자들은 남편 머리됨의 성경 원칙에 대하여 그 렇게 반대하며 심지어 결혼 폐지까지 부르짖는가? 여성주의자들은 “결혼”“남자의 이익을 위하여 있는 것으로, 법적으로 여자를 지배하려고 승인된 방법이다 ∙∙∙ 결혼 제도를 끝장내는 것은 여성 자유화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라고 선언한다. (183.3)
 남편 머리됨을 반대하는 근거는 성경적 의미를 오해하는 데서 기인되었다. 성경에서 남편 머리됨은 가치관이 아닌, 기능에 관계 된 것이다. 만약 가정과 교회에서 남자의 머리됨이 남자가 원래 여자보다 존귀하다면, 성경에는 무언가 처참한 차별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남자의 머리됨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함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183.4)
 인간의 가치가 직무나 기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학과의 장(머리)이 되었다고 학과의 다른 교수들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가치는 직무나 기능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구속의 은덕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의 신분인 것이다. 창조의 은공으로 남녀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로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창 1:27), 유사하게, 구속의 은혜로 둘 다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184.1)
 가치와 균등의 차이점
 머리됨에 대한 거룩한 명령은 남자가 여자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문제점은 하나님께서 남녀에게 부여하신 기능들은 다르지만, 그러나 보완적이라는 것이다. 하든부룩(Weldon M. Hardenbrook)은 예리하게 관찰한다. “가치와 기능을 구별하지 못한 실패는 미국 전역의 가족들을 악화시키는 힘의 경쟁을 가져왔다. 하나님께서 가족의 머리가 되도록 요구하셨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책임이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격의 왜소를 느끼는 아내들도 역시 속고 있다.”42 (184.2)
 삼위일체는 복종을 통하여 가치와 기능에 있어서 어떻게 동등함을 함께 가지는지에 대한 완전한 모본을 제공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삼위의 머리가 되신다(고전 11:3), 그러나 그의 머리되심은 아들의 가치를 저하시키지 않는데, 그 이유는 두 분 모두 동등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혹자는 아버지께 복종하는 아들의 기능은 임시적인 것으로, 그의 성육신의 때와(혹은) 구속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제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가 그렇지 않은 것은 고린도 전서 15:28에서 그의 구속사업이 완성될 때, 그의 아버지의 발 아래 모든 것을 복종시키기까지 통치하시는 그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친히 복종하실 것을 분명히 말하기 때문이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때에 만물을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8). (184.3)
 두 분께서 충만한 신성을 나누고 계시는 이래, 아버지의 주되심에 기능적으로 굴복하시는 것 때문에 아들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유사하게, 남녀가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벧전 3:7)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일하게 창조되고 또 회복될 자(창 1:27)로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기능 때문에 아내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185.1)
 무책임한 남자의 머리됨
 남편의 주됨이 오늘날 뜨거운 논쟁을 가져오는 주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에 자신들을 굴복하지 않으면서 아내들의 복종을 자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기만족의 일환으로, 남자들은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고전 11:3)라고 한 앞부분의 말씀을 잊어버린 채, 그들의 권위를 주장하기 위하여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 11:3)라는 성경절만을 인용한다. 남자는 아내와 자녀들의 머리로서 봉사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에 스스로 복종하여야 한다. 머리됨은 마치 책임의 전선 안에서 작동하는 것과 같다. 만약 줄의 어느 연결 부위가 끊어지면, 권위도 손상되니까.43 (185.2)
 그리스도께 신실하지 못하여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남편의 무책임한 머리됨에 불평하는 아내를 비난할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성서적 남편 머리됨은 교회를 구속하고 회복하기 위하여 친히 자신을 주신,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머리됨을 따라 반영 되어야 한다(엡 5:25-30)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