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안식일. 이러한 발달의 진원지(震原地)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대한 존경심을 버리고 오직 일요일 예배만을 존중토록 하기 위하여 신학적, 사회적,
전례적(典礼的) 조치를 취한 로마교회였다고 보여진다.
신학적으로는 안식일이 보편적인 것에서 부터 일시적인 모세의 율례로 변하였다. 순교자 유스티노스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만
“그들의 저지른 배신에 합당한 처벌을 주시기 위해 그들을 분리시키는 표로 부과하신 것이라” 하였다.
83 사회적으로는 안식일이 전통적인 축제와 희락의 날에서부터 금식과 우울의 날로 변형되었다. 로마 교회가 안식일 금식의 시작과 추진에서 담당한 역할은 감독 칼리스투스(Calistus, 217-222), 히폴리투스(Hippolytus, 170-236), 감독 실베스터(Syvester, 314-335), 교황 인노센트 I세(40-417), 아우그스티누스(354-430), 요한 카시안(John Cassian, 360-435) 등의 역사적 언급에 의해 잘 입증되고 있다.
84 토요일 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표시로서만이 아니라 감독 실베스터에 의해서 확인되었듯이
“유태인에 대한 경멸—exsecrati one Judaeorum”과 그들의 안식일 축제에 대한 경멸—
“destructiones ciborum”의 표시로서 행하여졌다.
85 금식으로 야기되는 슬픔과 배고픔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안식일을 지키러 나아가는 일”이 방지될 수 있었으며
86 대신에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 준수에 더 열심히, 더 기쁘게 참여케 되었다.
전례(典礼)상으로는 안식일에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금식을 깨는 일로 간주되어 안식일은 성찬식의 거행이 금지된 비종교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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