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서는 일요일 준수가 성서시대 이후의 교권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인정하고 일요일 준수와 같은 교회법을 도입할 수 있는 교회의 권능을 용인 했으나 교회가 그 권능으로 어떤 성일(聖日)의 준수를
“구원에 필요한” 사항으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하였다.
7 칼빈도 일요일을 하나님의 제도라기 보다는 인간의 제도로 보았다.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칼빈은 이렇게 진술한다.
“미신을 뒤집어 엎는 것은 마땅한 일이므로 유대인의 성일은 폐지되었다. 교회 안에 품위와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한 조처의 하나로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이른바 주일(主日)이라고 하는 날로 대체시켰다.”8 종교개혁 이후 수세기를 걸쳐 일요일의 기원과 성질에 관한 두개의 주요 주장이 서로 대립하여 열떤 논쟁을 전개해 왔다. 한쪽의 주장에 의하면 일요일은 기독교의 발생 초기에 주일의 첫날에 일어난 주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주일로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주일을 제칠일 안식일의 합법적인 대체물이라고 옹호하였는데 이렇게 되면 주일도 제칠일 안식일처럼 네째 계명에 의존하는 입장이 된다. 이같은 주장을 지지하는 신학자들과 신앙고백서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신학자들과 신앙문서들을 소개한다면:에라스무스(Erasmus, ⓓ. 1536)
9, 데 오드르 베자(Theodore Besa, ⓓ. 1605)
10, 제2차 스위스 신앙고백(Secon Hevet ⓓ. Confession, 1566)
11, 니콜라우스 보운데(Nicolas Bownde, ⓓ. 1607)
12, 안토니 우스 왈라에우스(Antonius Walaeus, ⓓ. 1639)
13, 하몬 레뜨랑쥬(Hamon Lestra nge, ⓓ. 1641)
14, 토르트의 종교회의(Synod of Dort, 1619)
1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1647),
16 지스베르투스 보에티우스(Gisbertus Voetius, ⓓ. 1676)
17, 존 오웬(John Owen, ⓓ. 1683)
18, 헨리 윌킨슨(Henry Wilkin son, ⓓ. 1690)
19, 죠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 1758)
20, 윌리암 팔리(Wiliam Paley, ⓓ. 1805)
21, 제임스 아우구스투스 헤세이(James Augustus Hes sey, 1860)
22, 등이다. 두번째 주장은 일요일이 네째 계명과는 관계 없고 단지 교회가 제정한 법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 견해의 옹호자들중에 어떤 이들은 일요일 기원을 사도시대로 잡고 있으나 다른 이들은 그 이후로 잡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주로 실용적인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공중예배를 위한 자유시간과 노동자들을 위한 휴식을 제공해 주기 위함이었다. 대체로 이 같은 견해에 의하여 노동과 운동과 오락을 허용하는 좀 더 자유스러운 형태의 일요일 준수 태도가 조장되었다. 이 견해의 중요한 대표자들로는 가톨릭 교회
23, 루터(Luther, ⓓ. 1546)
24, 칼빈(부분적으로만)(Calvin, ⓓ. 1564)
25, 윌리암 틴데일(Wiliam Tyndale, ⓓ. 1536)
26,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 1556)
27, 존 프리도우(John Prideaux, ⓓ. 1650)
28, 유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 1645)
29, 프란시스쿠스 고마루스(Franciscus Gomarus, ⓓ. 1641)
30, 피터 헤일린(Peter Heylyn, ⓓ. 1662)
31, 존 콕세우스(John Cocceus, ⓓ. 1669)
32, 존 밀톤(John Milton, ⓓ. 1674)
33, 존 사무엘 스타익(John Samuel Stayk. ⓓ. 1710)
34, 에드워드 에반슨(Edward Evanson, ⓓ, 1805)
35, 리챠드 훼이트리(Richard Whately, ⓓ.1830)
36, C. C. L. 프랭크(Franke, 1826)
37, 윌리암 돔빌(Wiliam Domwille, 1850)
38, 그리고 E. W. 헹슈텐베르그(Hengstenberg, ⓓ. 1869)
39,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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