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24장 회복된 땅
 둘째로, 성경 본문은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개인들이 아닌 “만국[나라들]”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한다. 새 예루살렘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사람들이 거주한다(계 7:9). 스가랴는 “그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슥 2:11)라고 예언하였다. “많은 나라”가 하나님의 백성을 구성한다. 나라들을 갈라놓은 장벽들이 제거되었다. 생명나무의 치료하는 잎사귀들은 여러 세대를 통하여 국가적, 인종적, 언어적,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분리하고 서로 갈라놓은 장벽들로 인하여 입은 모든 상처들을 치료한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자가 없으리라”(미 4:3b-4). 생명강의 강둑에서는 각 사람이 생명나무 아래로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한다(슥 3:10). 회복된 땅의 구속받은 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대가족에 속하는 하나의 백성이다. (323.3)
 새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저주가 없다(계 22:3). 죄가 이 세상에 초래한 저주 때문에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죄가 근절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은 회복된 에덴으로 돌아온다. 스가랴는 이렇게 예언했다.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슥 14:11). (323.4)
 구속받은 자들이 새 예루살렘에서 누릴 특권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대면하여 뵙는 것이다(계 22:4). 전 역사를 통하여 인간의 끊임없는 갈망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모세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출 33:18-20). 이것이 이제 새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다. 구속받은 자들은 이제 하나님을 계신 그대로 뵙는다(요일 3:2).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분을 섬기고, 그분께 경배한다(참고 계 7:15). 짐승의 표를 그들의 이마에 받기를 거절한 것에 대한 상급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에 적힐 것이다(참고 계 14:1; 15:2). 대쟁투의 종결이 그들이 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22:5). (324.1)
 두 도성의 이야기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가 기록된 이유는 이것을 읽는 자들에게 새 예루살렘에 대한 갈망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요한은 어린양의 도성과 음녀의 도성인 바벨론을 대조적으로 기술했다. (324.2)
두 도성의 비교
마지막 때의 바벨론 새 예루살렘
사탄의 도성 하나님의 도성
위대한 도성 거룩한 도성
지상의 도성 하늘의 도성
반역한 도성 충성한 도성
음녀의 도성 어린양의 신부 도성
금과 보석으로 단장함 금과 보석으로 단장함
마귀들이 거하는 장소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
부정한 것들의 장소 부정한 것들이 없는 장소
유프라테스강이 그 가운데로 흐름 생명강이 그 가운데로 흐름
가증한 잔을 줌 생명수를 줌
나라들과 왕들이 권세를 줌 나라들과 왕들이 영광을 돌림
거민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음 거민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음
영원한 멸망을 당함 영원히 존재함
다시는 빛이 비치지 않음 어린양이 빛 되시고 하나님이 비추심
(324.3)
 새 예루살렘은 요한계시록에서 인간의 갈망과 꿈의 실현으로 묘사되었다. 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그 도성을 바라보면서 살고 죽었다(히 11:10, 16; 13:14). 새 예루살렘은, 인간의 책략과 노력에 기초한 번영을 이루려는 바벨론의 시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다. 바벨론은 권세와 명예와 돈에 대한 인간의 부질없는 꿈과 야심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판결은 하나님께 달렸다. 바벨론은 그 종말을 고하고, 새 예루살렘은 그것의 폐허 위에 솟아오른다. (324.4)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은 두 도성에 관한 대조적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독자들은 바벨론을 선택하여 그 결과로 오는 바벨론의 운명을 당하든지, 아니면 새 예루살렘을 선택하여 측량할수 없는 행복 가운데 끝없는 생명을 누리든지, 양단간에 스스루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새 예루살렘에 가서 살기를 선택하라고 강권하신다(계 22:17). (3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