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B. 2세기부터 5세기까지의 안식일과 일요일
 신약성경의 증거에 의하면 신약성경 시대에 일요일이 토요일을 대신하여 기독교의 휴일과 예배일로 교체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상 일요일 예배가 시작된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사실에 있어서 기독교가 일요일을 주간의 예배일로 지키기 시작한 최초의 직접적인 증거는 2세기의 알렉산드리아와 로마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A.D. 13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의 바르나바스(Barnabas)는 매우 알레고리적인 한 강론에서 “우리가 제 8일인 일요일을 기쁘게 지킨다”고 선언하였다.1 그때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 로마의 유스티노스 마르튀르(Justin Martyr)는 일요일 새벽에 모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의 모습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남겼다.2 (309.1)
 로마와 알레산드리아 교회의 관행이 전체 기독교의 신앙을 대표했는가
 2세기의 로마 교회와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일요일 예배가 기원했지만 이 두 교회의 일요일 준수 관행이 전체 기독교 세계의 예배 관행을 대표하지는 않았다.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초기부터 제칠일 안식일의 예배를 중단하려고 시도한 명백한 증거가 있으나 이 두 도시를 제외한 전체 기독교 세계의 여타 지역들에서는 토요일의 준수와 병행해서 일요일 준수가 발생했다. 5세기의 교회사가인 소크라테스 스콜라티쿠스(Socrates Scholasticus)와 소조멘(Sozoman)은 이같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309.2)
 “세계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매 주간마다 안식일(토요일)에 거룩한 신비〈성만찬예식〉를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교회만 어떤 옛 전통 때문에 이러한 일을 중단하였다. 알렉산드리아에 인접한 이집트 교인들, 테바이스(Thebais)의 교인들은 안식일에 그들의 종교적인 모임을 갖고 있으나 전체 그리스도인들이 통상적으로 행하는 방식으로는 성만찬예식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온갖 음식을 배불리 먹은 다음에 저녁에 예물을 바치고 성만찬 예식에 참가한다.”3 (309.3)
 “콘스탄티노플의 백성들과 거의 모든 지역의 백성들은 주간의 첫째 날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에도 함께 모였다. 그런데 이러한 관습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이집트에는 여러 도시들과 마을에서 백성들이 다른 지역의 일반적인 관행과는 달리 안식일 저녁에 함께 모인다. 이들은 이미 저녁을 먹었을지라도 신비의 예식(성만찬 예식)에 참가한다.”4 (309.4)
 이와같이 5세기에 이르러서도 거의 모든 기독교 세계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특별한 종교적 예배일로 지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요일은 분명히 토요일을 대신하는 날로 간주된 것이 아니었다. (310.1)
 토요일과 일요일 두 날의 준수
 초대 기독교가 토요일과 일요일 두 날을 모두 지킨 역사적 증거들을 좀 더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10.2)
 우선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조차도 단번에 그리고 완전하게 안식일이 일요일에 의해 대체되었는지 아니면 그 대체되는 과정이 점진적이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데 3세기 초에 로마의 히폴리투스(Hippolytus)가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시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일(토요일)과 주일에 자주 금식을 명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사람들을 꾸짖었을 때에도 바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5 초기 기독교는 그리스도인들이 주간마다 기쁘게 예배드려야하는 날에 금식하는 것은 부적합한 행위로 간주하였으며 이 때문에 히폴리투스는 안식일과 일요일에 금식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었다.6 (310.3)
 뿐만 아니라 히폴리투스와 동시대인이었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오리게네스(Origen)도 다음과 같이 적절한 “안식일 준수”에 대하여 언급하였다:“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안식일 준수 방식을 버리고 어떤 방식의 안식일 준수가 기독교에 바람직한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안식일에는 일체의 세속적인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너희가 오직 영적인 일들을 위하여 모든 세속적인 일들을 단념하고 현세적인 일을 전혀 하지 않고 교회로 와서 신령한 글들과 토론들을 듣고 하늘나라의 일들을 생각하고 미래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다가오는 심판을 주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을 위하여 눈에 보이는 현재의 일을 무시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7 오리게네스가 여기서 말하는 안식일은 문맥상 토요일임이 분명하다). (310.4)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토요일 준수에 관한 이 정도의 자료는 역사적 증거로서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 두 도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2세기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안식일을 포기한 것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 스콜라스티쿠스와 소조멘의 시대인 5세기에 이르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두 도시에서 안식일 예배가 철폐된 것은 상당히 오래된 기정 사실로 여겨지고 있었다. (310.5)
 그러나 그 밖의 지역에서는 상황이 어떠하였는가? 우리가 초기 기독교 세계의 여타 지역으로 눈길을 돌려본다면 안식일과 일요일 두 날을 모두 존중한 증거는 대단히 많이 나온다. 예컨데 4세기경에 시리아 혹은 동방의 다른 지역에서 편찬된 것으로 추측되는「사도헌법」(Apostolic Constitution)에는 안식일과 일요일에 관련된 많은 규정들이 포함되어있다. 다음은 그것들의 일부이다. (310.6)
 “그대의 눈앞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라. 그리고 항상 하나님의 십계명을 기억하라 ∙∙∙ 자신의 창조의 일을 그치시었으나 자신의 섭리의 일을 그치지 않으신 하나님을 위해 안식일을 지키라. 이것은 율법을 명상하기 위한 안식이며 손을 게을리 하기 위한 안식이 아니다.”8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고 주의 날의 축제를 지키라. 전자는 창조의 기념일이고 후자는 부활의 기념일이다.”9 “오 전능하신 주님, 당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정하셨습니다. 당신께서 그날에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율법들을 명상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들의 일들로 부터 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주의 날에 엄숙히 모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정복하시고 생명과 불멸의 빛으로 인도하신 분을 인하여 그 날에 기뻐합니다.”10 “너희의 재판업무들을 주간의 둘째날(월요일)에 치르도록 하다. 그리고 너희의 재판선고에 관하여 어떤 분쟁이 일어난다면 안식일까지 휴식기간을 두도록 하라. 그러면 분쟁을 바르게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서로 다투는 사람들을 평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11 “노예에게도 5일동안만 일을 시키도록하고 안식일과 주일에는 그들에게 여가를 주어 교회로 가서 경건히 가르침을 듣도록하라. 우리는 안식일을 창조의 날로, 주일을 부활의 날로 가르쳐 왔다.”12 (311.1)
 2세기 교부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글을 중보하고 개찬한 4세기의 한 편집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유대인의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도록 하고, 그 날을 게으름을 피우는 날로 지키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 고 하였기 때문이다. 거룩한 말씀에 이르기를 ‘이 마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것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 모든 사람들은 안식일을 영적인 방식으로 지키도록하자. 그 날에 육체의 이완을 즐기지 말고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찬양하며 율법의 명상을 즐기도록하자. 그 전날에 준비한 것들을 먹거나 미지근한 물을 마시거나 제한된 거리만 걸어다니거나 춤추기를 즐기거나 지각없이 손뼉치거나 하지말자. 그리스도의 모든 친구들은 안식일을 지킨 다음에 주의 날을 축제와 부활의 날로. 그리고 모든 날들의 여왕이요 우두머리로 지키도록 하자.”13 (311.2)
 4세기말의 닛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는 안식일과 일요일을 “자매관계”의 날들로 언급하였으며 같은 시기의 아마시아의 아스테리우스(Asterius of Amasea)는 주장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 날 곧 안식일과 주일을 함께 지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하였다.14 아스테리우스에 따르면 매 주간마다 사람들은 이 두 날에 함께 모여 사제들의 교훈을 들었다는 것이다. (311.3)
 5세기의 요한 카시안(J사m Cassian)도 교회가 토요일과 일요일 두 날을 지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이집트의 수도승들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말하기를 “그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날들에는 초저녁 기도회(Vespers)나 밤중 기도회(Nocturns)이외의 공공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그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성만찬 예식을 위해 제 3시(오전 9:00시)에 함께 모였다”고 하였다.15 (311.4)
 카시안은 또 어떤 수도승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렇게 증언하였다. “그는 홀로 살았는데 자기 혼자서는 결코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5일 동안에 단 한명의 형제 수도사도 그의 암자를 방문해 주지 않았을 때에도 그는 계속 음식을 먹지 않다가 안식일이나 일요일에 이르러서야 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가서 그곳에서 낮선 나그네를 찾아 그를 자기의 암자로 데리고 온 다음 함께 식사를 하였다.”16 (312.1)
 카시안은 또 다음과 같이 전했다. “세테(Scete)광야에 파프누티우스(Paphnutius)라고 하는 한 늙은 장로가 살았는데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교회가 5마일 밖이었다. 이 사람은 나이가 많아 쇠약했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거리를 불문하고 어김없이 교회에 출석했다.”17 (312.2)
 카시안은 교회사가 소크라테스 스콜라스티구스와 소조멘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두 교회사가들이 보고한 5세기 교회의 일반적인 현상의 한 실례를 증언한 것이었다. 두 교회사가는 5세기에 로마나 알렉산드리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토요일과 일요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5세기 이후에는 유럽 전역에서 안식일이 전반적으로 일요일에 대체되어 일요일만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 두 날을 “안식일들”로 지키는 관습이 채택되었다.18 (312.3)
 주간의 일요일을 지키는 관습은 어디서 왔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