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110편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왕
“비록 내 원수들과 온 세상이 나를 억누르고 나를 핍박하며 나를 내몰아 쳐도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 셨으니 나에게는 아직, 나의 주님이시며 또 나의 주님 되시기를 원하시는 한 주님이 계신다. 그분은 높이 좌정해 계시고 권능이 그들 모두보다 더하시며, 나를 방어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하여 이 높은 곳에 거하고 계신다. 이처럼, 내가 비록 때때로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하여 공격을 당하고 그것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며 근심을 끼쳐도, 그것 때문에 내가 절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또한 나를 저주하거나 지옥으로 빠뜨리려는 죄나, 또는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나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거기 앉아 계신다. 그러므로 비록 죽음이 나를 엄습하고 삼키려 해도 나를 잡지는 못한다. 주님께서 높이 좌정하사 영원히 살아 계시므로 나는 결단코 다시 살아날 것이다”(Luther’s Work, Vol. 13, p. 242).
(394.3)
 야훼 하나님의 명령은 메시아의 승리를 약속하며 끝을 맺는다. (395.1)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시 110:1)
(395.2)
 이 성전(聖戰)에서 야훼 하나님은 행동하는 주님으로 나오고 있다. 그분께서는 메시아에게, 야훼 하나님의 권능은 모든 원수를 당신의 임의대로 통치하신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그들은 결국 메시아의 통치권을 인정하게 될 것이며 당신의 보좌 앞에 꿇어 엎드리게 될 것이다. 승리한 왕이 승리의 상징으로 자신의 발을 정복당한 왕의 목에 올려놓는 것은 고대의 관습이었다(수 10:24; 사 51:23과 비교). (395.3)
 루터는 위대하신 하나님과 당신의 메시아가 이와 같은 우주적인 반항과 배도를 기꺼이 관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해 그의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왜 당신과 더불어 싸우기를 원하며 자신들을 대적으로 보이려는 자 들을 참아 주셔야 하는가? ∙∙∙ 왜 그분께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하시는가? ∙∙∙ 그리고 어떻게 사람이 주님을 적대하고 그분을 반역할 만큼 이다지 악해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는,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하늘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권위와 통치를 눈이 멀어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같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땅에는 이에 필적하거나 버금가는 명백하고도 가시적인 권위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상동, 246~248) 생각한다. (395.4)
 시편 2편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그 메시아,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을 배도하여 연합한 온 세상, 그 사이의 대 쟁투에 관한 보다 자세한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이 두 편의 시—2편과 110편—는 계시적인 심판의 날과 하나님과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승리에서 절정을 이루는 선악 간의 우주적인 쟁투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396.1)
 시편 제 2편에서 우리는 온 세상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 언약의 백성을 대적하여 더욱더 음모를 꾸미게 되리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대하여 적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시 2:3). 그에 대한 반응으로 야훼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당신의 법령을 발표하실 뿐이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시 2:6). 다윗과 맺은 이 언약(삼하 7:12~16과 비교)의 중요성은 다음 구절(시 2:7~9)에 나타나는데 이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게 모든 이방 나라를 당신의 기업으로, 그리고 땅 끝까지를 당신의 소유로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말씀이다. 그것은 완전한 승리의 확신 가운데서 절정을 이룬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 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 2:9). (396.2)
 시편 110편은 메시아의 통치에 관한 다윗의 묘사에서 이와 같은 확신을 나타내 주고 있다. (397.1)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시 110:2)
(397.2)
 시편 110편시편 2편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하며 2편에 의하여 빛이 난다. 비록 성전(聖戰)의 국면을 다른 왕의 시들에서도 관찰할 수 있기는 하지만(시 20, 21, 46, 48, 72, 83편) 시편 2편은 어느 메시아 시보다도 더 당신의 대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 인내, 그리고 노력을 나타내 준다. (397.3)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 2:10~12)
(397.4)
 시편 2편의 우주적인 호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대적들을 당신의 아들 메시아를 통한 구원으로 간곡하게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겔 33:11; 벧후 3:9; 롬 2:4~11과 비교). (398.1)
 다윗의 주님께 주신 하나님의 두번째 명령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398.2)
 제사장—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찬양의 주음(主音)이 된다(시 2:12).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 주셨 는데, 이는 그들을 새 시대의 전령들로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사도들을 당신의 대사들로 온 세상에 사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셨다(마 28: 19, 20). 그들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신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이 세상의 그것과는 달랐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398.3)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4, 5).
(398.4)
 그러나 논쟁만으로는—확신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못 박히신 메시아를 적대시하는 선입관의 베일을 벗길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성령을 확신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화잇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98.5)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논증을 보내어 심금을 울리게 하였다. 사도들의 말은 전능하신 분의 예리한 화살과 같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의 주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의 무서운 죄를 깨닫게 하였다”(사도행적, 47).
(399.1)
 이것이 오늘날 당신의 대적들의 와중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서의 통치의 유형이요 본질이다. (399.2)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하 열광적인 바리새 인인 다소의 사울을 교화시키기 원하셨다. 다메섹이 가까운 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사울의 주의를 사로잡으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그 때 그의 민족적 메시아의 소망으로부터 맹목적인 베일이 벗겨지고, 사울은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원수들의 마음과 생각에 대한 그의 영적 통치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선택된 도구, 바울이 되었다(행 9:15). 역시 바울의 증거도 종 메시아이신 그분의 그것처럼 핍박과 거절의 와중에서 더욱 우세할 것이었다(행 9:16, 14:22).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이기셨듯이(골 2:15) 그분께서는 이 땅에 있는 당신의 성도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당신의 원수들의 와중에서도 여전히 승리하고 계신다. 그 분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은 모든 순교자들에게 주신 그분의 약속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이다. 시편 110편은 다윗의 하나님이 또한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왕, 저 위대한 멜기세덱이심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을 축복했던 멜기세덱처럼(창 14: 18~20)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이스라엘을 당신의 새언약으로 축복하신다(히 7:20~22). 이 “더 좋은 언약”의 우월성은 히브리서의 중심되는 장(章)에 전부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서 7~10장“단지 이 한 절에 대한 확대된 해석”으로 불리어지고 있다(W. Binnie). (3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