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2 부 안식일과 거룩 제 9 장  제칠일 안식일의 합일 사상
 안식일 세계는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인 이스라엘의 피 남편이요, 안식일의 주인이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복된 세계이다. 안식일은 “그 아들에게 입 맞추는”(시 1:12) 날이다. 안식일의 세계는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는 내 사랑 포도주보다 나은”(1:2) 내 사랑이 있어서 복된 세계이다. 장소 때문에 복된 세계가 아니다. 안식일은 일차적으로 쌍안경을 들고 새들을 구경하러 가는 날도 아니고 오리발과 물안경을 어깨에 들러 매고 물고기를 구경하러 가는 날도 아니다. 새들과 물고기의 천연계가 하나님의 세계인 것이 아니다. 금요일의 천연계와 안식일의 천연계가 달라지는 분계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안식일의 천연계는 아가서의 세계처럼 하나님의 품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전혀 다른 세계이고 천연계이다. 제6일의 천연계가 아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주님이 계셔서 새 하늘이요 주님 안에 내가 있음으로 하여 새롭게 피어나는 새 땅이다. 안식일의 중심은 “나의 사랑 너”이다. 하나님이다. 그리스도이다. “왕의 침궁”에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는”(아 2:16; 6:13, 10) 날이 안식일이요 아가의 세계이다. (231.1)
 그래서 안식일에 있어서 중요한 행사는 새와 물고기를 좇아 들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바다와 강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사랑하는 주님을” 묻고 찾는 일이다. 그를 예배하는 일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안식일 신앙의 뉴스타트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내가 내 자신과 화목하고 내 이웃과 화목하고 만유와 화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제칠일 안식일의 첫걸음이다. “내 마음에 사랑하는 너의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1:7)을 찾는 일이 첫 번째의 일이다. 이 거룩한 사랑의 날 안식일에 “나는 절대로 네 동무 양떼 곁에서 얼굴을 가리운 자 같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1:7). 나의 님 나의 사랑이 “바위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비둘기”라 할지라도 “나는 기필코 네 얼굴을 보아야 하고 네 소리를 들어야 한다.” “네 소리는 내게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기”때문이다(2:14). (231.2)
 나를 슬프게 하는 안식일은 비가 오는 안식일, 천연계로 나가지 못하는 안식일이 아니다. 과일과 포도주가 없는 안식일이 아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 사랑하는 주님을 찾았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는 안식일이 슬픈 안식일이다.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주님을 거리에서나 큰길에서 찾으리라하고 찾았으나 만나지 못한”(아 3:2) 안식일이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 할 곳을 알고자 하여”(욥 23:3)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그가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는”(욥 23:8, 9) 안식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주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를 붙들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않으련만”(아 2:4) 그리고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어 부탁하기를 사랑하는 나의 주님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기를 바라겠지만”(2:5) 그를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안식일이 슬픈 안식일이다. (232.1)
 실로 우리는 그를 찾을 수 없다. 큰길로 나서도 그를 찾을 수 없다. 오직 “그가 나의 가는 길을 아신다”(요 23:10). 나의 가는 길을 아시는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고 나를 당신의 침궁으로 인도하신다. 그날이 안식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택하여 세우셨다(요일 3:16 참조). (232.2)
 그러나 그렇지만도 않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며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요일 4:12). 사랑과 더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사랑과 더불어 안식일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안식일은 첫 안식일의 기억과 함께, 첫 안식일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셨던 그 사랑의 기억과 함께 우리의 사랑이 샘솟듯 하는 날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영이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의 성령과 함께 우리에게 오신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랑의 성령을 우리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붓듯 부으사 우리를 당신의 신부로 거룩하게 인치신 날이다. 이 성령 이 사랑과 더불어 우리가 안식일을 다시 기억 해낸다. 하나님이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시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안다”(요일 4:13). 하나님의 사랑의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의 안식일”을 증거하고 “사람의 아들”이 주인으로 계시는 “주의 날,” 곧 제칠일 안식일을 증거한다. 참으로 “우리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다”(요일 5:7). 참으로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더불어 오시고 안식일도 성령과 더불어 온다. 그리스도는 또한 물과 피로 우리에게 오신다 (요일 5:6). 안식일은 그리스도가 물과 피와 성령으로 우리에게 임하시는 날이다. (233.1)
 안식일: 그리스도가 예비한 그리스도 안의 처소
 안식일은 우리 주님이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처소”이다.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한” “내 아버지 집의 거할 곳이다”(요 14:2-3). “이제부터 너희가 그[하나님]를 알고 보는”(요 14:7) 시간의 침상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되는 그 날”(요 14:20)이다. “아버지께서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신”(요 14:16)날이다. 세상은 그 진리의 영이며 사랑의 영이신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지만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가 너희와 함께 계심이요 또 저희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요 14:17). (233.2)
 안식일은 “제칠일에 쉬어 평안하였던”(출 31:17) 주님께서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한” 주님의 “나의 평안을 우리에게 끼치는”(요 14:27) 날이다. 우리가 마음에 근심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요 14:27) 평안의 거처이다. “나의 대적이 제 아무리 많고 나를 치는 자가 제 아무리 많을 지라도 내가 저녁에 누워 자고 아침에 깨어 일어나는 하나님의 성산이다”(시 3:1, 4, 5).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하여도 내가 두려워 아니 할 수 있는”(시 3:6) 하나님의 거처이다.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므로 내가 편안히 눕고 자기도 하는”(시 4:8) 하나님의 침상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수 있는”(시 4:4)처소이다. 주님이 예비한 그 합일의 거처인 제칠일 안식일은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는”(시 84:3) 세계이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이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이오니까”(시 15:1). 오직 하나님의 안식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안식의 언약에 속한 자이다. 그 언약에 성실하여 “여자로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한 정절이 있는 자이다.” 언약의 주인이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며,”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다”(계 14:4). (234.1)
 안식일의 세계는 또한 하나님 아버지가 농부이시고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그 가지인 합일의 세계이다. 안식일 그 합일의 삶의 지체인 우리는 과실을 많이 맺어야 한다. 열매야말로 참된 사랑의 합일을 증거한다. 열매 없는 합일의 삶은 거짓된 합일의 삶이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이 하신다”(요 15:2).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과실을 더 맺게 하려” 우리를 깨끗이 하시는 날이다. 안식일에 우리가 주께로부터 듣는 말씀은 이것이다: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저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 말라지리니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3-6). (234.2)
 그렇다. 안식일 신앙이 열매를 맺으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합일의 안식일 신앙이라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안식일 신앙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한 신앙 생활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져 말라죽을 것이다.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를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일 신앙으로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요 15:8).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한 것 같이 너희도 나의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10).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