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은 여러분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참 지식의 의미이다.”소크라테스(68.1)
지식인으로서의 사도 바울은 아마도 많은 세미나에 초청되어 참여하므로 다른 주제들로 심도있는 토론을 진행하였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은 율법에는 정통하였으며 유대인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임을 자랑하였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지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68.2)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0-29) (68.3)
바울은 “주님을 자랑한 것”이지 자신의 학문을 자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율법의 교사로,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것들은 더 이상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나를 자랑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4, 5). (68.4)
성령의 능력을 가지게 되면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롭게 되고, 약한 사람도 강하게 됩니다. 믿음은 지혜있는 사람에게나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68.5)
바울의 기별은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가리워져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박사” 라는 호칭으로 가리워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 15:19). (68.6)
바울은 수년동안의 그의 선교사업을 회상하면서 품위있는 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풍성하게 전하였노라.” 그의 설교가 효과적이었던 것은 성경을 여러 언어로 가르쳤기 때문도 아니요, 일류대학에서 배운 학문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설교가 효과적인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이 충분히 역사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68.7)
지식을 찾고, 학교에서 연구도 하고, 많은 다른 일에 관해서 많이 배우고,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면 명예롭고 좋은 설교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의 사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리 생활에서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지식이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68.8)
학위가 우리를 절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교육받은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학위가 나를 신학적인 지식을 더 많이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이 학위가 절대로 나를 더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거나 나를 더 자제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학위는 성령의 열매 맺게 나를 도와주지도 못하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가져 다 주지도 못합니다. (68.9)
대학에 가서 학위을 얻는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그런 정규적인 교육을 의지해서 사단의 군대를 물리 칠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정보를 알 수 있고, 충고도 할 수 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지만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유일한 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68.10)
아름다운 마음
벤자민 플랭크린은 “우리는 모두 무식하게 태어났지만, 어떤 사람은 열심히 공부해서 바보가 된다.” 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배움에 아주 큰 수용능력이 있으므로 배울 수 있을 만큼 배워야 됩니다. 에수님께서는 삼년 동안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바울처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강하지 않았지만 대신에 예수님의 발아래서 배웠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배웠습니다. 얼마나 큰 특권이었습니까! 제자들이 성장하고 배웠던 것처럼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읽고, 정보도 얻어서 지적으로 성장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규 교육을 받았던, 아니 받았던 성령의 능력을 받기만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성령의 능력이 특정한 장소나 동기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게 증거 되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68.11)
사도 바울은 왕들과 정부 관리들 앞에서 증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지식과 배경과 아주 특별히 받은 교육을 사용하셨습니다. 바울이 성령의 능력이 없었다면 다른 학문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지만 그러면 여전히 능력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68.12)
생각해 볼 문제
1. 바울은 그 당시에 가장 좋은 학교에서 가르칠수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었고, 아주 지적인 능력이 많은 사람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진 지식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을까요? (68.13)
2. 바울은 어디서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고 간증 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간증하라는 기회를 주셨을 때 언제든지 간증할 수 있겠습니까? (6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