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3 장 신적 권위를 직접 드러내신 기적들 기적 4 ►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본문 : 막 1:21-28, 참조: 눅 4:31-37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다. 가버나움은 깊은 침강(沈降)의 갈릴리 호수 서북쪽 해안에 있는 호젓한 도시이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계셨으므로 고향으로 알려졌으며 예수님의 “본 동네”(마 9:1)라 칭해졌다. 그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온화한 기후를 가진 평온한 곳이요, 감미로운 갈릴리의 연풍(軟風)을 만끽할 수 있는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159.1)
 최근에 성지순례 길에 본 게네사렛 평야에는 무성한 종려나무와 감람나무, 포도밭, 오렌지밭, 대추야자밭 등이 검은 색의 기름진 옥토(決土)위에 즐비하게 있었다. 마치 경북 지역의 싱그러운 과원밭을 지나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상큼했다. 곳곳에 검은 현무암들이 점재(點在)해 있고, 호수에는 돛단배 두어 척이 잔물결을 일으키며 노닐고 간혹 모터 보트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달려 나갔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땅의 비옥함에 매료되어 황홀경에 빠져들었다고 한다(War, ΙII, 506-521). 가버나움 유적지에는 흐드러지게 만발한 화려한 꽃들이 답사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159.2)
 가버나움에 사는 왕의 신하가 가나에까지 가서 병든 자기의 아들을 치유해달라고 요청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시고 말씀 한마디로 80여 리나 떨어져 신음하고 있던 그의 아들을 고쳐 주셨다(요 4:46-54). 바로 그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왕의 신하는 너무나 기뻐 달려가 일행을 맞이했다. (160.1)
 “주님, 이곳에 오셨으니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일행과 함께 저희 집에 유하소서.” (160.2)
 “그래, 고맙네. 그렇게 하겠네.” (160.3)
 이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사회에 꽤 영향력 있던 신하의 집에 머물면서 얼마 동안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신하는 동네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외쳐 댔다. (160.4)
 “내 아들을 사경에서 건져 준 능력의 주님이 오셨다.” (160.5)
 “아, 당신이 늘 자랑하던 그분이 오셨다구요? 우리 모두 그분을 만나 보러 가겠습니다.” (160.6)
 왕의 신하의 선전은 아주 힘이 있었으며, 허다한 사람들이 몰려와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리하여 왕의 신하는 앞장서서 예수님에게 복음 증거의 길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160.7)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규례대로 회딩으로 가셨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사는 곳이면 어지간한 동네나 도시에는 다 있었다. 이는 유대인 열 가정만 있어도 반드시 회당을 지어야 한다는 그들의 율법 때문이다. 가버나움 회당은 로마 백부장이 유대인들을 위해 지어 준 것으로(눅 7:2-5) 참으로 아담하고 소담스런 건물이다. 주님께서 당도하셨을 때 회당은 이미 유대인 회중들로 입추(立推)의 여지가 없이 대만원을 이루었다. 회당장은 예수님에게 설교를 부탁했다. 주님께서 성경을 읽으시고 해석하기를 시작하자 청중들은 놀라운 말씀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말씀은 권세가 있었고 생명과 활기가 넘쳤으며 청중들은 깊은 감명과 감동을 받았다. 확실히 서기관들의 설교와는 달랐다. 성경보다도 자기들의 사상이나 유전을 더 중요시 여기는 서기관들은 항상 “∙∙∙ 와 같은 말씀이 있었다”와 같은 방법으로 율법 학자들의 권위 있는 말을 인용하거나 인증으로 일관하는 식의 생명력 없는 형식적인 설교를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말씀을 직접적이면서도 아주 단순하고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설교하셨다. 듣는 사람들이 전혀 논박할 수 없는 권세 있는 가르치심이었으며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 정말로 그분은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사 50:4)아시는 분이셨다.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실례를 들어서 사람들의 주의를 이끌었고 새, 꽃 씨앗, 양 목자 등을 예화로 사용하여 깊은 의미 있는 진리들을 아주 쉽고 명백하게 설명해 주셨다. 정신이 팔려 얼빠진 듯이 앉아 있던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 모두가 그분의 설교에 만족했다. 심령을 꿰뚫는 말씀을 듣고 깊은 회개를 하는 사람이 있었고 오묘한 진리를 터득하고 넘치도록 감사를 하는 자들이 있었다. (160.8)
 주님의 설교가 이제 막 절정기에 달했을 때에 갑자기 공포에 질린 한 광인(狂人)이 회중석에서 벌떡 일어나 쫓아 나오면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161.1)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161.2)
 “아니, 예배 중에 저런 소리를 지르다니.” (161.3)
 “그래서 미친 자가 아니오.” (161.4)
 회당 안은 금방 혼란으로 수라장이 되었고 놀란 모든 회중의 시선은 예수님에게서 떠나 그 귀신들린 자에게 집중됐다. 사단은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다. 사실 “나사렛 예수여”라는 말은 귀신이 제일 먼저 사용한 용어이며 아주 멸시하는 말이었다. 바울 당시에 한 번은 점하는 귀신들린 자가 사도들에게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행 16:17)이라고 인정했다. 이와 같이 귀신들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의 종들도 알아보며 떤다. (161.5)
 사실 그 광인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다가 감명을 받았고 자유를 얻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됐다. 잠깐 제 정신이 들었을 때 “내가 예수님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해야지”하고 결심을 했는데 사단은 바로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의지를 사로잡아 언어 기관을 장악하여 그를 통해 다른 말이 나오게 만든 것이다. (162.1)
 예수님께서는 잠시 설교를 멈추셨으며, 그 사람을 광인으로 만든 귀신을 세차게 꾸짖으셨다. (162.2)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162.3)
 청천벽력 같은 주님의 명령에 귀신은 반응했다.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