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V부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 (18-20) 제 15 장 예수의 부활과 재출현 (20)
 요한복음 20장과 함께 우리는 이 복음서의 중대한 지점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는 13-17장에서 제자들과 송별회를 가지셨고, 18-19장에서는 고난과 죽임을 당하셨다. 이야기가 십자가 상의 예수의 죽음으로 “끝났다”(“다 이루었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19:30을 보라). (333.1)
 그러나 이것이 다 끝난(이룬)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예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셨더라면 기독교는 없었을 것이다. 진실로 그의 부활이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이 좋은 소식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20장은 예수의 극히 중요한 부활과 그가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을 보고하고 있다. (333.2)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20장을 여러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333.3)
 1. 그대는 이 장을 몇 단원들로 나눌 수 있겠는가? 본문에서 다른 부분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인 다양한 동사들을 열거해 보라. (334.1)
 2. 이 장에 나타난 증거에 의하면, 예수께서 무덤에서 빠져 나오도록 무덤의 돌을 옮겨놓는 일이 필요했던가? 그렇지 않다면, 그대는 왜 돌이 옮겨졌다고 생각하는지 써 보라. (334.2)
 3.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실 때, 제자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어떤 용어를 사용하셨는가? 요한복음 13-20장을 다시 읽어 보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모든 용어의 목록을 만들어 보라. 친밀도가 점점 깊어감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께서 그들을 다르게 보게 만든 결정적인 전환점은 무엇이었는가? 예수와 제자들의 관계가 이 순간 이후로 달라지게 만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한두 단락으로 써 보라. (334.3)
 4. 예수께서 다락방에 돌아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어떤 말씀을 반복하여 사용하셨는가? 한두 단락으로 예수께서 이와 같은 특별한 인사 방식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써 보라. (334.4)
 5. 도마의 사건(24-29절)과 요한복음의 진술 목적(30, 31절) 사이에 평행을 이루는 단어들과 사상들을 기록해 보라. 20장의 정황에 비추어 이와 같은 결론적 진술을 읽게 되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이 복음서의 목적과 어떤 차이가 나는가? (334.5)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
 요한복음 20장은 예수의 부활과 연관된 네 가지 사건과 이 복음서의 결론적인 진술을 그 뒤에 담고 있다. 첫 번째 사건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보고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를 이제는 비어 있는 무덤으로 이끌어 간다(1-9절). 그들이 그 장면에서 사라지자 마리아가 다시 나타나 두 천사를 보고 난 후, 부활하신 예수와 직접 만나게 된다(10-18절). 세 번째 장면은 그날 저녁에 일어난다. 예수께서는 문을 잠그고 안에 모여 있는 그들에게 나타나셨는데(19-23절), 아마도 그가 “고별 강론”을 하셨던 곳과 동일한 장소인 것 같다(13-17장). 끝으로, 예수께서는 앞의 만남을 놓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도 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주셨다(24-29절). 이 장면들은 예수의 부활의 현실성과 많은 사람이 보지 않고 믿음을 가지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확증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334.6)
 문단의 배경
 생활 적용 성경(Life Application Bible, 1929)의 목록에 의하면, 신약에는 부활 후 예수의 출현에 대한 열한 번의 증거가 나타나 있다. 그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홀로 나타나셨고(막 16:9-11; 요 20:10-18), 그와 다른 때에 또다른 여인들의 무리에게 나타나셨다(마 28:8-10). 그는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에게 홀로 나타나셨다(눅 24:34; 고전 15:5). 그는 엠마오로 가는 두 여행자에게 나타나셨다(눅 24:13-35; 막 16:12, 13). 그는 문을 잠그고 있던 열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막 16:14; 눅 24:36-43; 요 20:19-25) 후에, 도마가 포함된 같은 무리에게 나타나셨다(요 20:24-29; 고전 15:5). 그는 일곱 제자가 갈릴리에서 고기 잡는 동안에 나타나셨고(요 21:1-23), 산 위에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셨다(마 28:16-20). 끝으로 그는 그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본 자들에게 나타나셨다(눅 24:44-49; 행 1:3-11). 이 사건에 첨부하여, 바울은 예수께서 그의 형제 야고보(고전 15:7)와 500명의 무리에게도 나타나셨다고 확언한다(6절). (335.1)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처럼 많은 증인은 부활 사건은 체면을 세우기 위해 얼마 안 되는 제자들이 날조한 이야기라는 비난에 대한 방패막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제자들이 살아있는 한 그들의 이야기는 비교되고 확인될 수 있다(눅 1:1-4). 제4 복음의 기자는 예수의 부활에 대해 생존해 있는 마지막 증인이었다. (335.2)
 그러나 그 사건에 대해 생존한 증인이 없는 사람들, 특히 제2 세대들에게 예수의 부활의 가장 큰 증거는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예수께서 참으로 죽음에서 일어나지 않으셨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될 것이다. 예수의 적들이 무덤에서 그의 시체를 옮길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설사 그들이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그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체를 내놓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336.1)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칠 능력도 의도도 없었다는 것이 현재의 본문 속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마 27:62-64). 예수께서 아직 살아계실 때, 그들은 용기가 부족함을 보여 주었는데(마 26:56; 막 14:50; 요 18:17, 25-27), 그가 돌아가신 후에 그들이 용기를 가질 이유가 있었겠는가? 사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미리 앞서 반복하여 강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스스로 죽는 것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전혀 믿지 않고 있었다(막 8:31-33; 9:30-32; 10:32-34). 그들은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그의 부활을 믿는 것도 매우 느렸다(요 20:1-9, 24-29). 어떤 경우든지 간에 로마의 보초병들은 결코 그런 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마 27:62-64; 28:11-15). (336.2)
 만일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쳤다면, 그들의 이후 행동은 전혀 설명할 수가 없다. 전 세상에 거짓말을 퍼뜨리기 위하여 명성, 재물, 그리고 가정을 희생시킬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을 위하여 조롱, 고문, 그리고 죽음을 겪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336.3)
 예수의 제자들이나 그의 적 모두 그의 시신을 훔친 것이 아니라면, 결국 빈 무덤은 예수 부활의 실제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신 것이라면, 오늘날에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그 한 가지로 예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셨다면 어떤 이적도 불가능하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은 없다. 제2 세대가 그에게 구하는 어떤 것이든지 그의 뜻에 맞으면 이루어 질 수 있다. 우리 자신의 부활은 그의 부활의 확실성으로 보증된다. 그뿐 아니라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킨 것과 같은 신성의 능력이 가장 절망적인 인간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생명과 치유를 가져올 수 있다. (3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