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2 부 안식일과 거룩 제 8 장  안식일, 하나님의 새 일 곧 새 언약의 초청
 안식일 언약, 그 바깥 어둠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이 처음으로 사람을 당신의 깊은 숨 속으로 초청하여 당신의 혼인한 여자로 삼으신 합일의 언약을 상징한다. 그리고 안식일은 또 사람을 당신의 거룩한 품에서 존귀한 아들로 삼으신 언약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첫 안식일은 그날 이후로 이어지는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사랑의 출발점이며 기초이다. 첫 안식일로 시작되는 에덴의 모든 날들은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쇠하지 않는” 생명과 영광의 나날이었다. 따라서 안식일은 에덴의 모든 날들의 표상이요, 대표이며 목적이었다. 그리고 거룩한 불꽃이 그 중심을 둘러싸고 밝게 불타듯 에덴의 모든 날들은 안식일을 중심으로 하여 거룩하게 돌며 빛났다. (212.1)
 에덴의 사람은 빛의 공간과 빛의 시간 안에서 빛의 옷을 입고 살았다.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안식일의 사람은 빛나는 에덴의 공간과 시간과 완전히 짝을 이루는 성소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인가. 언약에 신실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정절이 있는 자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며” 거룩한 삶의 “열매로써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요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계 14:4-5). 안식일의 혼약에 충실한 하나님이 신부이다. (212.2)
 그러나 인류는 끝내 하나님의 정절 있는 신부가 되지 못했다. 사람이 “준수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겔 20:13) 거룩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 안식일을 저버렸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룩한 합일의 언약, 곧 안식일의 언약이 깨어졌고 사람은 안식일의 친교, 곧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의 친교 밖으로 추방되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었다”(창 3:23). 언약을 배반한 사람이 하나님의 집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겼다”(마 25:30). (213.1)
 안식일의 밖은 언약의 밖이요 하나님의 밖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의 밖이다. 하나님의 집밖이다. 에덴의 밖이다. 예루살렘의 밖이다. 그 평안과 안식의 밖이다. 짐승의 울부짖음과 사람의 탄식이 파도치는 어둠이다. 성밖에는 “다툼이 있다”(고후 7:5). “밟힘이 있다”(계 14:20). “살육이 있다”(애 1:20). “부정한 곳이다”(렘 14:40). “육체가 불타는 곳이다”(히 13:11). 하나님 “나라의 본가지 자손들이. . . 바깥 어둔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었다”(마 8:12). (213.2)
 안식일 바깥의 인류는 애굽 땅의 종이요 바벨론 땅의 유랑민이다. 예레미야가 그 참담한 심정을 자신의 애가에서 노래했다. “슬프다 어찌 내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는고”(애 4:1). “이제는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그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4:7, 8). “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그 옷이 피에 더러웠으므로 사람이 만질 수 없도다”(4:14). (213.3)
 거룩한 언약을 저버리고 아버지의 집 바깥 어둠에서 울며 방황하던 인류는 스스로 탄식하며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오니 나를 이끌어 들이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애 5:1). “주께서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애 5:20). (213.4)
 늙은 다니엘도 인류의 눈물겨운 탄원을 제 기도에 담았다. “주여 공의는 주께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라”(단 9:7).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려 함이 오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소서”(단 9:18, 19). (214.1)
 제칠일 안식일, 여호와가 이룩한 새 일, 곧 새 언약의 약속
 에덴의 바깥 어둠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인류에게 제칠일 안식일은 늘 하나님 품속의 그 순결하고 복된 삶의 기억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여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는 기원의 근거이었으며,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케 하심이 본심이 아닐 것”(애 3:33)이란 믿음의 토대였다. 인류는 그 어둠의 땅에서나마 제칠일 안식일을 붙들면서 “주께서 그들을 영원토록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애 3:32)이란 믿음을 붙들었다. 그때나 이때나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합 2:4). (214.2)
 인류는 안식일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였다.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회개하였다: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애 3:39). 다만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애 3:40, 41).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자”(3:50). (214.3)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사람의 믿음은 저버림을 당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여호와이시다”(애 3:22). 진실로 “주께서는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케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다”(애 3:33). 주께서 안식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약속하셨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 30:11).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렘 31:20).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에게 포도원을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돌아오던 날과 같이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4, 15, 16, 19, 26).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렘 30:17).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렘 30:22). (215.1)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다”(렘 31:4).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렘 31:33).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라.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할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니라”(사 62:4). “패역한 땅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였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렘 31:22). (215.2)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를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 .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 . .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들로 다시 돌아와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임이로다”(렘 33:11). (216.1)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라라”(겔 20:44). “너희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고 거기서 너희 일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을 인하여 스스로 미워하리라”(겔 20:42, 43). (216.2)
 실로 그렇다. 용서야말로 하나님의 신성의 진정한 증거이다. 용서의 권세야말로 하나님의 진정한 권세이다. 예수님의 용서의 권세를 가야바도 빌라도도 빼앗지 못했다. 하나님의 용서하는 능력과 권세를 그 누가 빼앗고 물리칠 수 있으랴. (216.3)
 안식일: 새 언약의 초청
 하나님의 백성은 안식일의 언약을 파하고 더럽혔으나 하나님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고난의 날을 한정하였다. 인류를 위해 정해진 그 기한이 다하여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인류의 “허물이 마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하나님의 영원한 의가 드러났다.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았다”(단 9:24). 하나님이 이 땅에 “새 일을 창조하신”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안은” 것이다. 갈릴리의 비천한 여자인 마리아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을”(눅 1:35) 품은 것처럼 우상을 사모하여 하나님의 안식의 언약을 더럽힌 인류가 다시 하나님을 그 가슴에 품게 된 것이다. 인류의 허물이 마치고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된 것이다. 인류가 지극히 거룩한 자의 받을 기름부음을 입은 것이다. (216.4)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새 일”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마리아조차도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라고 했던 일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의 “새 일”을 순종으로 받아들였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으로 이제 후로는 만세에 복이 있다 일컬음을 받는 여인”이 되었다(눅 1:48). 여자가 지극히 거룩한 남자를 안은 것이다. 여인이 하나님의 능력을 안은 것이다. 육체가 성령을 안은 것이다. (217.1)
 교회가 그리스도를 안은 것이다. 새 언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안식일이 새로워진 것이다. 안식일은 새 날이 된 것이다. 안식일은 이제 예전에 죄지어 비천해졌던 여인이 옛적에 정혼한 존귀한 남자를 안는 날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안고 육체가 성령을 품는 날이다. 비천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보다 더 향기 나는 영혼의 사랑을 존귀한 남자의 머리와 온 몸과 발에 붓는 날이며 자기의 머리칼로 그의 발로 씻는 날이다. 그가 남자를 위하여 남자에게 쏟아 부은 사랑의 향기가 시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집을 가득하게 하는 날이다(마 26:7; 요 12:3 참조) (2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