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사살이 다니엘을 그 나라의
“세째 치리자”로 삼겠다고 했을 때 그는 분명히 제 1왕인 나보니더스와, 테마로 떠난 나보니더스로부터
“왕권”을
“위탁받은” 공동 섭정인 자신(벨사살) 다음의 명령권자를 의미했을 것이다. 벨사살의 국왕 신분을 훌륭하게 확증시켜 주는 자료가 또 있다. 헤로도투스(Herodotus)는 그의「페르시아전쟁」(The Persian Wars) 1.191에서, 그리고 크세노폰(Xenophon)은 그의「키로파이디아」(Cyropaedia) 7.5.15에서 (다니엘이 기록한 것과같이) 바벨론이 멸망하던 그 밤에 궁중 연회가 있었다고 기록했다. 크세노폰은 그 잔치에서 바벨론의 왕이 살해되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설형 문자로 기록된「나보니더스 연대기」(Nabonidus Chronicll)
9는 나보니더스 왕이 당시에 바벨론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혀 주고 있다. 그는 보르십파(Borsippa)에 은신해 있었고, 그가 그 후에 바벨론으로 돌아와 메대一페르시아 인들에게 항복하여 체포되었다. 바벨론이 멸망하던 밤에 바벨론에 왕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왕이 나보니더스가 아닌 것이 사실이라면, 그 왕은 누구였을까? 그는 물론 벨사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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