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103편 감사의 태도
 에스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겔 33:11) 고 말씀하신 사실을 확인시키셨다. (359.3)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7)
(360.1)
 다윗은 하나님의 분수에 넘치는 자비를 경험함으로 마음속 깊이 감동을 받았다. 그의 영혼은 이 놀라운 구원과 마음의 평화를 인하여 하나님께로 향한 감사를 그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아직도 그분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를 원하고 있다. (360.2)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 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 103:9~12)
(360.3)
 바이저(A. Weiser)가 이 구절에 아름다운 주석을 붙이고 있다. (360.4)
“인간이 죄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측량치 못하는 한 은혜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이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죄보다 더 위대하고 그분의 사랑은 분노보다 더 강하다고 하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은 정확히 말해서 죄란 그의 생애 가운데서 가장 파괴적인 체험이기 때문이다.”
(361.1)
 다윗은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인상적인 유추법(類推法)으로 설명하고 있다. 끝 없는 공간을 뻗어 나가는 그의 묘사—“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도 하나님의 자비의 넓이를 올바로 평가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다윗은 이 비유의 표현에 보다 인간적인 본질 하나를 더 첨가하고 있다. (361.2)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 103:13)
(361.3)
 이스라엘의 아버지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알고 계신다. (36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시 103:14~16)
(361.5)
 인간은 하나님의 완전한 피조물로서 오직 하나님의 힘과 지탱하심에 의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하나의 죄되고 연약한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을 더더욱 필요로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 하실 때 라는 말은 그 분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당신의 자비가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동정심 깊은 생각이다.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우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롭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 12). 모세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자아 인식의 슬기와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겸손을 구하도록 촉구한다. (362.1)
 피조물인 인간의 덧없음은—“그 날이 풀과 같은”—하나님의 영원한 존재와 위엄의 빛 가운데서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창조주께서 아버지처럼 연민하시고 그분에게서 만 용서가 가능하다는 표현화된 사실은, 영혼을 위한 새날의 여명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경이로움이다. 그러나 은혜에는 높은 이상이 있다. 구원의 역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인 것이다. (362.2)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 103:17, 18)
(362.3)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나 당신의 율법에 순종하는 선한 의지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신의 자비가 우리로 하여금 그분과 동행하도록 동기를 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따르도룩 우리의 마음을 고무시켜 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이다. 여기에 삶의 뜻과 모든 인생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심과 헌신의 중심이 되실 때 우리의 마음은 하늘의 멜로디를 노래하기 시작할 것이다. (363.1)
 모든 피조물들의 찬미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분명하다. 그분의 마음은 우리의 감사하는 태도를 기뻐하신다. 이 영감적인 시인은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있다. 그의 예언자적인 눈은 한때 이사야가 받았던 것같은(사 6) 하나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포착한다. 그는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363.2)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시 103:19)
(363.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국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모든 열방의 하나님, 우주 천지의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탁월한 통치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만유를 통치” 하실 것이다. 그분의 보좌는 감히 넘볼 수 없으며, 그 분의 구원의 의지는 빼앗을 수 없고, 그분의 거룩한 영광은 찬양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인간의 목소리는 결코 하나님의 존재의 위엄을 올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우주의 왕 하나님의 모든 가족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다윗의 태도에 연합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364.1)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20~22)
(364.2)
 여기에 인간이 마음으로 묵상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주제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위대하신 창조주를 숭배하는 우리의 열정의 결핍을 더욱 더 부끄러이 여기게 된다. 이사야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라는 스랍들의 하늘의 송가를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입술이 하나님의 영광의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찬송하는 천사들의 뜨거운 입술과 비교해 보고 너무나 불결함을 깨달았다. (3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