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4 편 성소 제21장 황금 분향단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죄를 품는다는 말의 의미는 그것을 포기하기 위하여 진지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은밀한 죄는 그분께 나아가는 우리의 길에 장벽이 된다. 우리가 항상 진심으로 기도하려면 죄악을 포기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마에 포기의 촛불을 켜야 한다. 즉 악의적 태도, 은밀한 죄악, 고질적인 성향, 교만, 욕심, 불결, 나태, 증상, 분노, 미움 등 모든 악의 잡동사니들을 포기하도록 결심하고 기꺼이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분의 의의 향과 함께 우리의 탄원을 아버지께로 올릴 수 있도록, 왕의 고속도로를 깨끗이 해야만 한다. (192.4)
 5. 불경한 태도가 기도를 방해함
 불경(不敬)한 태도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그것은 우리에게도 불쾌한 것이다. 우리와 같이 평범하고 하찮은 사람들은 지상의 통치자에게조차 말을 걸기 어렵듯이, 위대하고 전능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께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갈 때마다, 그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안에 거하시는 왕 중의 왕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우리의 기도가 언제나 하나님의 보좌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당연하지 않은가? (192.5)
 6. 용서하지 않는 마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이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 6:12, 15). 우리는 한층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 24). (193.1)
 베드로는 이 문제에 관해 번민하다가 마침내,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여쭈었다. 예수님은 그 답으로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만 달란트(Talents)의 빚을 용서한 주인과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돈은 당시 가치로 삼억 달러로, 오늘날 화폐 가치로는 300억 달러(한화로 30조 원)이다. 그렇지만 이는 우리가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진 빚에 비하면 매우 적은 액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료 종이 일백 펜스(pence)의 빚을 갚지 않았을 때, 그 무자비한 종은 그를 붙잡아 모든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넣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형제들의 범과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말로 다할 수 없는 빚을 용서받은 자로서 이 얼마나 큰 수치인가. 그와 같은 자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21-35)고 말씀하신다. (193.2)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심
 바울은 기도를 감사와 바른 생각과 연관지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6, 8). 그와 같은 생각은 우리에게 확신 있는 기도를 하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하나님 앞에 인정할 때, 향기가 우리의 중보 기도에 주어진다 ∙∙∙ . 그분의 공로는 향기로운 향과 같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78).11) (193.3)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심을 인하여 비탄에 빠지고 싶을 때마다, 우리는 롱펠로우의 담화를 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모두 응답을 받는다면, 우주에는 얼마나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인가! 그때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통치하는 것이다.” (193.4)
 “그대는 우리가 세상을 더욱 잘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마치 위기에 처한 놀란 여인이 고삐를 힘껏 움켜쥐듯이, 우리는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붙들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완전한 마음으로(그 밖의 나머지 마음까지도 완전히) 복종하는 감사를 드려야 한다.” (194.1)
 효과적인 기도에 필수적인 것
 1.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은 효과적인 기도의 첫 번째 필수 요건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번 되풀이하여,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고민어린 기도를 하셨다. 그분은 매 기도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아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는가? 아니다! 그분의 기도는 “그의 뜻대로”(요일 5:14) 응답받았다. 그 잔이 거두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를 위해서였다. 우리 또한 그와 똑같은 완전한 복종을 통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 그리고 그분의 영광을 위할 수 있는 것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구할 때에 그분께서는 “그래”라고 하시는 대신에, “아니야” 또는 “기다려”라고 대답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틀림없이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빌립 브룩스의 말을 항상 기억하자. “기도는 하나님의 꺼려하심을 이겨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꺼이 하시는 일을 붙잡는 것이다.” (194.2)
 바울은 그의 “육체에 가시”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아마도 갈라디아서 4장 13~15절에 나오는 육체의 약함, 곧 심각한 눈 질환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고통을 “사탄의 사자”라고 부르며, 세 번에 걸쳐 주님께 이 고통을 떠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구했다(고후 12:7, 8). 주께서 고통을 제하여 주셨는가? 아니다! 그의 탄원을 들으시고 응답하셨는가? 그렇다!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고 대답하셨다. 바울이 이 응답에 만족하였을까? 그렇다!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 10). 이 얼마나 그리스도인다운 모범인가! 이 고상하고 유쾌한 태도의 결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사도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이루신 것이다! (194.3)
 열왕기하 20장에 기록된, 선한 왕 히스기야의 경험은 굴복하지 않은 마음으로 발설한 간구에 관한 슬픈 이야기이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다스리는 왕국이 번영하기를 소원했다(왕하 20:20). (194.4)
 만일 소원이 개인의 자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면 매우 칭찬할 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그들의 길을 가도록 허락하심으로 그분의 길과 지혜와 정의를 가르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시계를 역으로 돌리시어, 왕의 생명을 십오 년이나 더하셨다. 어떤 결과가 왔는가? 히스기야는 바벨론왕에게 나라를 잃는 첫 걸음을 밟았고, 히스기야가 죽은 후에 보좌를 이은 므낫세는 유다에서 가장 악한 왕 중의 하나가 되었다.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기도를 하는 대신에 전지하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의 바른 뜻에 굴복시키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롬 8:26, 27)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실 것이다. (195.1)
 2. 그분의 이름으로 구함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요 14:13). “내(예수) 이름으로”가 바로 승리하는 기도의 비결이다. 우리가 요청할 제목을 가지고 기도의 제단으로 가서,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들으신다.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의 요청에 그분 자신의 의의 향을 섞어 우리를 위한 보혈의 탄원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신다. “나의 피, 아버지, 나의 피, 나의 피, 나의피!”(초기문집, 38) 하고 그분은 부르짖으신다. “이 요청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분은 참되고 신실하신 분이시다.” (195.2)
 “그들(제자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간구해야 하였고, 그리하였을 때, 그 기도는 응답받을 것이었다 ∙∙∙ .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들의 표어요 ∙∙∙ 성공의 근원이 되어야 하였다. 그분의 이름과 명각이 없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그분의 나라에서는 인정되지 않을 것이었다”(사도행적, 28). 그분의 이름과 명각이 들어 있는 기도는 그분의 아들의 모든 탄원을 듣고 변론을 받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드려진다. (195.3)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그분의 아들의 모든 요청에 응답을 즐겨 하시지만,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동기로 드리는 요청은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지 아니하신다. 그분은 불의 위에 그분의 의의 향을 더해 주실 수 없으시다. 그분은 그와 같은 요청에 그분의 이름으로 보증하지 않으신다. 그와 같이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다른 향”(출 30:9)을 드리는 것이 된다. 우리의 요청은 “그분의 이름으로” 되어야만 한다. 그분의 뜻과 성품에 조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에 가서 서명이 없는 수표를 내놓는 것과 같으며, 그와 같은 수표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우리는 진지한 탄원으로, “주여 ∙∙∙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 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