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제 6 장. 안식일:봉사의 기쁜 소식 III. 타인에 대한 봉사로서의 안식일
 6. 휴양을 위한 시간
 안식일은 육체적, 영적 휴양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휴양이란 단어(recreation)는 활력을 재창조(re—create)하고 회복하기 위하여 고안된 활동들을 뜻한다. 이 장(章)의 앞 부분에서 우리는 영적인 소생(蘇生)을 위하여 안식일이 제공하는 여러가지 중요한 기회들에 대해서 검토했다. 그런데 안식일이 제공하는 바 육체적 휴양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안식일에 각 사람이 육체적 소생을 얻기 위하여 누려야 하는 표준적인 휴양의 척도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181.1)
 신체적인 필요는 연령과 직업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이다. 정력이 넘치는 십대의 육체적 필요는 중년기의 벽돌공의 육체적 필요와 크게 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옥외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농부는 사면이 벽으로 막힌 사무실에서 일주일 내내 일을 해야하는 사무실 노동자가 희망하는 옥외의 신체적인 휴양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안식일의 휴양 활동을 명시하려는 여하한 노력도 율법주의적인 태도들을 야기시키고 안식일의 자유와 창조의 정신을 질식시킬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적당한 안식일 휴양 활동들을 결정하는 데에 사용할 간편한 규범으로서 3개의 일반적인 기준만을 제안코저 한다. (181.2)
 하나님 중심적일 것. 안식일 휴양활동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 활동들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선함을 기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어야 한다. 안식일의 활동들은 말트 비 D. 바브콕크(Maltbie D. Babcock)의 다음과 같은 노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 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듯 저 맑은 새 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찬양해. (181.3)
 이사야는 말하기를 안식일의 활동들은 마땅히 “제 오락을 행하는” 수단이 아니라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했다(58:13, 14).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과 부모들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젊은이들과 장년들 모두에게 그들의 안식일 휴양 활동들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수단으로 인식되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하고 경험하는 특별한 날이다. 이 말은 안식일에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이 하나님의 임재의 인식을 손상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신장시키는 데에 기여토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182.1)
 자유와 기쁨. 안식일 휴양 활동을 위한 두번째의 기준은 그 활동들이 제공해야 하는 자유와 기쁨이다. 안식일은 주님이 주신 구속적인 자유를 경축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즐거워 하는 자유와 기쁨의 정신은 모든 안식일 활동들 속에 스며들어야 한다. 종교 교육자의 과업은 적합한 활동의 이름을 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안식일 활동들 속에서 구해야 할 자유의 경험을 묘사하는 일이다. (182.2)
 때에 따라 꼭같은 활동이 자유의 경험으로도 또는 속박의 경험으로도 느껴질 수 있다. 비근한 예로서 안식일 피크닉을 들어보자. 만약에 그 소풍을 위한 적절한 준비가 안식일 이전에 충분히 이루어져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그 소풍에 참가할 수가 있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휴양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기쁘고 자유로운 경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음식물을 구해야 한다든지, 어떤 사람들이 그 준비로 여러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든지 하게 되면 피크닉은 이기심의 표현이 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아 일의 부담 없이 안식일을 경축할 수 있는 기회가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에서 보면 안식일을 경축하는 자유를 제한시키는 여하한 형태의 휴양도 안식일 계명의 기본 기능과 위배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182.3)
 휴양적인 성격이어야 할것. 안식일 활동들을 위한 세번째 기준은 안식일 활동의 휴양적인 성격이다. 안식일 활동은 지적, 정서적, 육체적 활력의 낭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 안식일에 영적으로,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새로워지는 경험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경험할, 더 풍성한 회복의 전조(前兆)인 것이다. 안식일과 예수님의 재림은 주님의 백성들에게 제공되는 회복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위한 준비에 있어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182.4)
 달리 말해서 주님의 거룩한 날에, 시간속에서 주님을 맞기 위한 한 주일의 준비는 역시 재림의 때에 공간속에서 주님을 맞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식일의 휴양은 영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영적 특성은 매일의 휴양 속에 있는 영적인 특성과는 그 규모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안식일의 휴양 기능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룩하셨으며 또 장차 당신의 백성들의 생활 속에서 더 큰 규모로 성취하실 회복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니만큼 흥분된 불안을 초래시키거나 또는 다음 날의 활동을 할 수 없을 만큼 “녹초”가 되게 하는 여하한 형태의 리크레이션 활동들도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한 안식일의 휴양 기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182.5)
 어떠한 활동이 자신의 전체적 활력을 소생시키는 최선의 활동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 한 주일 내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판매원일 것 같으면 안식일 하루 동안은 혼자서 성경을 읽거나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흩어진 정신을 수습해야 되겠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한 주일 내내 혼자서 검사 재료를 검토하고 자료를 기록하면서 보내야 하는 실험실 기술자라면 안식일의 옥외 활동에 참가하여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낄지 모르겠다. 본질적으로 단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적절한 안식일 휴양활동의 여부를 가름할 수는 없다. 하나님 중심적인 활동으로서 자유, 기쁨, 휴양이라는 세가지의 기준을 결합시킨 것이면 안식일 활동으로 무난할 것이다. (182.6)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로서의 안식일이 뜻하는 바는 안식일 기념의 근본적인 기능이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과 동기와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흔히 안식일에 의하여 강화된 친교의 유대는 특별히 자연의 아름다움들 가운데서 자유롭고 즐거운 휴양을 얻도록 고무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우리들은 안식일의 기념과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 사이에 있는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183.1)
 참고문헌
 36. Cf. R. J. Banks, Jesus and the Law in the Synoptic Tradition, 1975, p. 124.

 37. David Hill points out that “the argument has the effect of placing Jesus firmly within the Law, rightly understood: he does good on the Sabbath, and so fulfils the will of God, who desires merciful action rather than ritualistic legalism” (The Gospel of Matthew, 1972, p. 213).

 38. G. B. Caird rightly asks: “Which is keeping the spirit of the sabbath better he [Christ] with his deed of mercy or they with their malicious designs? The question needs no answer: it is always right to do good, and what better day than the sabbath could there be fdr doing the works of God!” (Saint Luke, 1963, p. 99).

 39. Ellen White, The Desire of Ages, 1940, p. 287.

 40. W. Manson, The Gospel of Luke, 1930, p. 60.

 41. W. Rordorf (n. 7), p. 68. My response to Rordorf’s arguments is found in From Sabbath to Sunday, 1977, pp. 3 1-34.

 42. It is noteworthy that the Sabbath is related to social concern also in Isaiah 58. A study of the structure of the whole chapter indicates that the Sabbath is viewed “as the means by which Israel should manifest true fasting, i.e. social concern for the oppressed” (Sakae Kubo, God Meets Man, 1978, p. 47). James Muilenburg also argues for the unity of the chapter and thus the connection between the social concern of true fasting and proper Sabbathkeeping (“Isaiah 40-66,” Interpreter’s Bible, 1956, V, p. 677). Cf. C. Westermann, Isaiah 40-66: A Commentary, 1969, p. 340.

 43. Richard S. McConnell, Law and Prophecy in Matthew’s Gospel, Dissertation, University of Basel, 1969, p. 72. My extensive treatment of Christ’s pronouncement is found in From Sabbath to Sunday, 1977, pp. 56-61.

 44. Ellen White, Testimonies for the Church, 1948, VI, p. 359.

 45. George Elliott remarks: “In France, during the Revolution, the substitution of the tenth for the seventh day was accompanied by a divorce law, under whose provision within three months there was recorded one divorce for every three marriages in Paris alone” (The Abiding Sabbath: An Argument for the Perpetual Obligation of the Lord’s Day, 1884, p. 61).

 46. Samuel M. Segal explains that “according to Jewish law, every man should have marital relations at least once a week, preferably on Friday night. Since the Song of Songs speaks of the love between man and woman, the man reads it at the ushering in of the Sabbath in order to create an atmosphere of love and affection. It is for this reason, too, that on Friday night, during the meal, the man recites the last chapter of Proverbs, in which the woman is idealized” (The Sabbath Book, 1942, p. 17).

 47. See above n. 41.

 48. Cf. Jewish Encyclopedia, 1962, s.v. “Sabbath.”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