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제 6 장. 안식일:봉사의 기쁜 소식 III. 타인에 대한 봉사로서의 안식일
 가족들은 매일의 일을 하느라고 사방에 흩어져 시간들을 보낸다. 업무의 압력 때문에 우리는 왕왕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보살핌을 펴 주지 못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서 까지 태만하기 쉽다. 안식일의 안식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과 자신과 가족들과 이웃들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 주어 우리들을 함께 있게 해주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업무 때문에 매일 일찍 집을 나가서 밤늦게 귀가함으로써 엄격한 의미에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나그네가 되고 있다. (176.3)
 아이들이 “우리는 아빠를 보기가 어려워. 아빠는 항상 나가 있는 걸”하고 말하는 소리를 이제는 어디서나 듣는다. 그러나 그가 안식일에 업무에 대한 걱정을 떨쳐 버리고 안식하게 될 때 그는 자신의 어린이들과 좀 더 충분히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갖게 된다. 우리 집에서 가장 환영받는 순간은 금요일 저녁이다. 이 때면 우리는 주일의 모든 분주한 일들을 끝내고, 5명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찬미와 독서와 기도로 안식일의 주님을 환영하며 차분한 마음으로 다른 식구의 관심사에 귀를 기울이고 또 한 주일 동안 각자가 모아 놓은 경험담을 나눈다. 이처럼 안식일은 가족을 동정과 애정의 띠로 다시 묶어 주는 귀한 기회이다. (176.4)
 성경이 여러가지 방식으로 안식일과 가족을 함께 연결시키고 있는 사실은 주목을 끄는 현상이다. 둘 다 에덴의 제도로서 소개되고 있다(창 1:28; 2:3). 이 두 제도는 타락 이후에도 여전히 미래에 회복될 낙원의 친교와 기쁨과 안식을 생각케 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 안식일 계명과 부모 공경의 계명은 십계명에서도 앞뒤의 순서로 소개되고 있다(출 20:8~12). (177.1)
 이 두 계명은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레 19:2~3)라고 하여 생명의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호소와 연관되고 있다. 어찌하여 거룩한 생명의 이상(理想)은 부모에 대한 경외 및 안식일 준수와 밀접히 관련되는가? 분명히 그것은 이 두 계명이 생명의 영적 본질을 향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종교 교육을 위하여 안식일을 이용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의 도덕심을 강화시키게 될 것이며 부모와 하나님에 대한 자녀들의 헌신을 깊게 하게 될 것이다. (177.2)
 이러한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하여 부모들은 안식일을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것으로, 즉 그들을 소외시키는 부담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기뻐하는 경축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날은 안식일에 행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생긴 좌절감으로 특징되는 날이 아니라 그 날에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축복들로 인한 환희로 특징되는 날이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하여 엘렌 화잇을 말하기를 “부모들은, 마땅히 그래야 하듯, 안식일을 주일 중 가장 기쁜 날로 만들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기쁜 날, 날 중의 날, 주님의 거룩하고 영예로운 날로 여기게 할 수가 있다.”44고 하였다. (177.3)
 안식일이 우울한 날이 되느냐 또는 즐거운 날이 되느냐 하는 문제는 주로 안식일을 지키는 동기에 달려 있다. 자녀들에게 안식일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율법이기 때문에 지키라고 가르치는 부모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대하여 마치 병 낫기 위하여 삼키지 않으면 안되는 쓰디쓴 약으로 생각케 하고 있다. 아이들은 안식일 시간이 지나가기를 마치 우주 과학자들이 우주선 발사 직전에 카운트 다운 하듯이 10초, 9초, 8초, 7초, 6초, 5초, 4초, 3초,2초, 1초, 제로, 일몰! 하고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이 끝나기가 바쁘게 안식일 시간 동안에 억제된 정력을 발산시키기 위하여 어떤 자극적인 활동을 찾아 자리를 차고 나갈 것이다. (177.4)
 이와는 반대로 그들의 자녀들에게 안식일을 하나님의 경이로우신 창조와 구속과 돌보심을 기쁘게 경축하는 날로 지키도록 가르치는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로 하여금 그 날이 먹기에 끔찍한 약이 아니라 달콤한 케이크로 생각하도록 인도하게 될 것이다. 특별한 음식과 유쾌한 사귐과 즐거운 활동들로 구성된 안식일의 시간들은 너무나 짧게만 느껴질 것이다. 다음에 우리는 안식일 활동들에 대한 일부 비판 기준들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177.5)
 4. 배우자를 위한 시간.
 안식일은 자신의 배우자와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들을 마련해 주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날로 증가해 가고 있는 이혼율을 무력한 채로 지켜 보고만 있다.44 전문적, 사회적 이해관계의 차이로 특징이 되어 있는 현대 생활의 급속한 속도는 많은 남편과 아내들의 사이를 소원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78.1)
 안식일은 결혼관계를 강화시키는 촉매로서의 기능을 행사할 수가 있을까? 틀림없이 그렇다. 적어도 두가지 이유 즉 신학적인 이유와 실제적인 이유에서 그렇다. 신학적인 이유는 인식일의 신성성이 결혼의 신성성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안식일 제도와 결혼제도는 모두 상호의 소속관계를 표현하고 경험하기 위하여 제정된 제도로서 안식일은 하나님과의(5장에서 찾아본 것) 그리고 결혼은 인간 배우자 끼리의 소속관계를 위한 것이다(창 2:24; 마 19:5-6).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헌신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안식일의 시간을 사용하는 기독교인 부부는 불가피하게 그들 상호간의 헌신까지도 새롭게 하게 된다. (178.2)
 안식일은 그것이 인간끼리의 관계이건 또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이건을 막론하고 그 관계들은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특별히 안식일 시간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형태로 표현된, 그리스도인의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다른 모든 천신의 기초를 이룬다.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이 기회만 닿으면 자신의 결혼 서약까지도 무시해 버릴 것이란 점은 넉넉히 점칠 수가 있다. 달리 말해서 만약 하나님과 자신의 계약의 상징이 의도적으로 무시되 버리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결혼 상대자나 또는 그밖의 사람에 대한 충실 서약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막아 줄 아무것도 남아 있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178.3)
 성경에서는 이 두 사이의 관계가 배도와 간음의 관계로 암시되어 있다. 안식일의 모독이 배도(背道)와 같은 것이듯이(겔 20:13, 21) 결혼 서약에 대한 불성실은 간음으로 정죄되고 있다(출 20:14). 이 둘이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불충을 묘사하기 위하여 배도와 간음을 바꾸어 가며 사용한 사실로서도 잘 알 수 있다(렘 3:8; 겔 20:23~27). 따라서 신학적으로 안식일은 남편과 아내에게 하나님에 대한 그들 모두의 서약과 그들 서로간의 서약의 신성한 본질에 대하여 환기시킴으로써 그들의 결혼관계를 강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46 (178.4)
 

안식일은 주간(週間)의 날들 가운데서 하나님에 의하여 택함을 입은 날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거룩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항구적으로, 그리고 힘있게 깨우쳐 주고 있다.
(179.1)
 실제적인 이유는 안식일이 배우자들로 하여금 좀더 친밀한 교제와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쾌적한 분위기를 조성해 줌으로써 결혼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결혼관계의 질(質)은 대부분 두 배우자 사이에 존재하는 대화와 이해의 정도에 의존한다. 결혼 안내서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결혼을 파탄시키는 주요 요인으로서 적당한 대화의 결핍을 지적하고 있다. 안식일은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 가까이 접근하여 서로의 관심에 귀를 기우릴 수 있는 시간과 감동을 제공해 주고 있다. (180.1)
 부부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축하는 정신을 가지게 될 때 이들은 자신을 상대방에게 이기심없이 내어 주려는 동기를 갖게 된다. 이것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상과 관심과 기쁨과 필요한 의무들을 함께 나눔으로써도 가능하다. 함께 걷고 놀이를 하며 웃고 피로를 풀므로써도 가능하다. 남편과 아내가 안식일에 경험하는 몸과 영혼의 친밀감과 동반성(同伴性)이 이들로 하여금 지난 주간의 긴장으로 인한 여하한 불화라도 극복하게 해주며 새로워진 단결심과 또 하나님과 부부 쌍방에 대한 새로운 헌신의 마음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180.2)
 5. 도움이 필요한 자를 위한 시간.
 안식일은 우리의 직계 가족들에게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객”들에게 관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시간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다. 안식일 계명에 대한 여러 언급에서 때로는 “나그네” 또는 “외인”으로 일컬어지는(신 5:14) “객”(게르)은 안식일 축복의 수혜자로 특별히 언급이 되어 있다(출 20:10; 23:12; 신 5:14). “객”은 본래 이스라엘의 땅에 살았던 외국인을 뜻했는데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노동자, 또는 일군, 하인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180.3)
 고대 세계가 노동과 노동자에 대하여 취했던 경멸을 생각한다면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안식일의 관심을 강조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사야 58장은 사회적 관심 속에 나타나 있는 안식일 준수의 진정한 모습을 극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선지자는 진정한 금식과 진정한 안식일 준수를 관련 시키면서 참된 금식은 압제받는 자를 자유케 하고 굶주린 자와 더불어 떡을 함께 나누는 것이며(58:6~7), 진정한 안식일 준수는 자신의 쾌락 속에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47(58:13, 14). 복음서에서는 안식일의 이같은 인도주의적 기능이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강조되었다. (180.4)
 안식일을 기념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날의 축복들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 가정에서의 안식일 음식 준비는 예상되는 방문객들을 위한 식사 접대 계획의 의미가 크다.48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도 안식일은 교회나 사회에 존재하는 방문객, 고아, 외로운 사람, 노인, 소외된 자, 낙심한자와 더불어 음식과 친교를 나눌 기회가 되고 있다. (180.5)
 한 주일을 살면서 우리는 자주 우리의 친척이나 동료나 이웃이 신체적으로 병들었거나 정서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렇지만 업무의 부담 때문에 우리는 그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소홀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이 되어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시간을 내어 병자를 격려하고 고생하는 자를 위로하고 슬픔을 당한 자에게 용기를 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우정과 관심을 나누어 주어야겠다는 동기를 갖게 된다. 우리가 안식일에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에게 주는 도움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우리의 생활을 만족감과 평온한 성취감으로 풍요케 해준다.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