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제 3부—안식일 신학 제16장—안식일 신학에 대한 고찰
 우리가 안식일에 단순히 쉬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자동적으로 안식일의 특질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인 반면 하나님이 축복하신 하나님의 자신의 날인 안식일 이외에 어떤 다른 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특질이 안식일의 준수에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창 2:3).30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전까지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진실로 무엇을 뜻하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안식일을 단순히 쉬는 날로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사귐을 위하여 하나님이 부여하신 충만한 잠재력의 차원에서 안식일을 지키고자 했을 때 비로소 안식일 준수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289.2)
 인간의 노동이 갖는 적극적인 의미. 인간의 노동은 안식일의 안식과 예배에 의해 제대로 제자리에 자리 매김을 갖게될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적극적인 의의를 지니게된다. 안식일은 전체 인간에게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경험되고 기념되어야 할 하나님의 법칙을 인정하도록 요청하는 그리스도인 윤리의 기초가 되고 있다. (289.3)
 왜냐하면 이 날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듣고 받기 위하여 모이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똑같은 감사와 찬양과 기쁨은 사람의 일상적인 삶의 특징이 되어야한다. 사람들은 안식일의 예배를 통하여 진정한 하나님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살도록 촉구받는다. 그리스도인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의하여 그에게 제시된 책임 안에서 그의 도전적인 삶을 살도록 도전받을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삶을 살 자유를 부여받는다. 인간은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허물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또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기가 벌어들인 것으로 먹고살도록 요구받는다.31 (289.4)
 이제 자기가 하나님과 가까이 있음을 느끼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워졌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와 마주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되었다. 그는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매일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주간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더 잘 준비되었으며 생활의 모든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더 잘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가 새로운 한 주간을 출발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의 창조적이며 대속적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그리스도인이다(엡 2:6). 하나님과의 이같은 교제 안에서는 천하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 되며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자유케 했다. 그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으며 사물들을 예배하는 것으로부터 자유케 되었다. 안식일 안식 안에 함축된 윤리적인 차원들을 발생시키고 강조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안식일의 고요와 평화로부터 나와서 한 주일 내내 계속되는 하나님의 현존 그 자체이다. (289.5)
 안식일의 “독단성”
 하나님은 독단적인 태도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과 함께, 그리고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제칠일에 안식을 누리도록 요구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부여한 특별한 내용물로 가득한 이 날로 사람과 창조계를 초청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 날에 가득 채운 내용물은 자연의 순환적인 변화나 천체의 운동 같은 것에 관련된 그 어떤 것들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은 것들이다.32 그 내용물 가운데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이 절대적 주권은 심지어 시간의 자연적인 운행들과 생명의 리듬에 대한 간접적인 인식에 의해서 자격이 부여되는 그런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킬 때 그는 절대적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수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명령을 단순히 순종하는 것이다. 이처럼 안식일 계명은 영적인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보다도 그 영성의 단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안식일은 언제나 십계명의 여러 다른 계명들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시금석으로 자주 간주되었다(신 28:1-4; 사 56:2-7; 58:13, 14; 렘 17:24-26; 겔 20:12, 20; 출 31:15; 35:3; 민 15:32-36; 느 13:15-22; 렘 17:27; 겔 20:13, 16, 21, 24; 22:8, 26). 우리의 영혼이 고요하고 평온한 가운데서 하늘과 땅의 대 주재이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우리가 안식일에 자발적인 마음으로 세상 사물들의 독재적인 영향으로부터 물러 나오는 것은 우리가 심령과 영혼과 마음과 몸을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290.1)
 결론에 이르기에 앞서 한가지 더 분명히 지적해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안식일이 이 앞서의 어떤 세대의 사람들에게 보다도 현대인들, 곧 21세기의 사람들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날이라는 사실이다. 현대인들의 삶을 특징짓고 있는 일상의 현저한 변화들이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재발견하고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다시 수립하도록 시급히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그 정도가 심각해가고 있는 우리 문화의 세속화,그리고 생활의 병적인 분주함, 우리의 사회적 생활의 해체, 그리고 “하나님은 죽었다”는 현대인들의 광적인 주장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있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비인격적인 관계, 이 모든 것들이 현대 선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33 (290.2)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 거룩히 바쳐지는 안식의 날로서의 안식일은 너무나 자주 상처가 깊은 경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나 잦다. 우리들은 자주 안식일을 세속화하려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안식일의 초자연적인 내용들과 경험주의적 현상 넘어에 있는 안식일의 차원을 박탈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안식일로부터 그 본질적인 특질들을 박탈하여 안식일을 자신의 이기적 쾌락을 위해 사용하려 한다. 이제 안식일은 사람의 시간 전체를 밝혀주는 빛의 날이기보다는 사람이 새로 발견한 자신의 자치권으로 살아가는 여느 날들과 다름없는 날이 되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안식일은 그 성화의 차원을 상실하였다. 우리가 제아무리 많은 의미를 안식일에 부여한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일은 텅 비어있는 날로 남아 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안식일의 성격을 상실하고 있다. 사람들은 한 주간의 다른 날들에서 사물의 독재성과 노예화에 무릎 꿇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안식일에서까지 사물의 독재성과 노예화에 어이없이 무릎을 꿇고 있다. (290.3)
 그러나 안식일의 기본적인 의미를 부인하는 현상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도 안식일의 기본적인 정신이 거부되고 있다. 병적으로 분주하고 신경증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에서 여러 가지 미해결의 문제들 때문에 여념이 없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안식일이 권태롭고 불안한 한 날로 경험될 수도 있다. 안식일이 사람들에게 “속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날로 존재한다면 안식일은 이미 그런 사람들에게 짐이며 의무이다. 이렇게 되면 안식일 준수는 “종교의 고용살이”에 지나지 않게 된다.34 이러한 현상은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과는 전혀 공통성이 없는 것이다. 성경의 안식일은 사랑의 창조주로 말미암아 생명이 갱생하는 날이었는데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일이 짐같은 날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계획과 수단들을 수행하고 이용하기 위해 붙잡은 빈 시간에 불과하게 되었다. 안식일을 이러한 태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일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부인하는 날로 타락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준수를 잘못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비타협적으로 반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막 2:23-28). 그는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제정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셨다(막 2:27). 다시 말하면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은혜이지 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람으로부터 강제로 빼앗는 한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표시로 사람에 내어주시는 한 날이다. 안식일을 슬프고 침울한 한 날로 생각한다면 이는 기쁨과 즐거움의 날인 안식일의 본연적인 의미를 부인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사람에게 자유와 감사로 가득 찬 순종을 요구한다. 이러한 순종은 사람이 받은 축복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막 2:28)고 말씀 하셨을 때 확언하신 것이 바로 이 자유와 이 사랑이 었다. (291.1)
 결 론
 안식일의 진정한 신학은 자기의 피조물들을 사랑으로 걱정하시는 은혜로운 창조주 하나님에게 기쁨과 감사의 정신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초청의 호소이다. 안식일은 일하는 여섯 날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안식일은 일하지 않고 노는 한 날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 대한 관계의 회복을 위해 성별된 거룩한 한 날이다. 따라서 이 날은 믿는 자의 성품을 건설하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날이기도 하다. 이날은 우리에게 우리가 피조물이며 우리가 시간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구적으로 일깨워주는 날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요청하신다. 이날은 은혜의 표징이다. 이 날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다. 미래에 도래할 완전한 자유를 기념하는 날이며 또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내려오는 자유를 우리가 이 땅에서 직접 경험하는 날이다. (2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