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73편 의심에서 확신으로
 믿음의 확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이처럼 생동감 넘치며 변화시키는 경험에 이를 수 있을까? 아삼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으로 주어졌다. 그의 간증은 추진력 있는 현실적 능력을 지녔다. (343.4)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 23~26)
(344.1)
 신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가계(家系)로 우리가 양자로 입적되었음에 관한 확신과, 그리고 미래에 관한 새 소망을 전달해 줄 수 있다. (344.2)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 이니라”(롬 8:16, 17).
(344.3)
 살아 있는 믿음이란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에 있는 그분의 성소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345.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
(345.2)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345.3)
“눈을 예수께 돌려
그 얼굴을 주목하라
그의 영광스러운 광채에
세상 영화는 사라지네”
(345.4)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분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는가이다. 아삽이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라고 말하며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했을 때 그는 전능하신 분께 고착되어졌다.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아삽에 관해 “그는 지금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착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삽은 자신이 은혜로운 주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의식하였다.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23절).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제가 당신을 붙잡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약속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다. 사람의 손은 너무 나약하여 하나님을 붙들 수 없으나 하나님은 강하여 결코 놓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며 영원토록 안전을 누리게 되었다. (345.5)
“사람이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구주의 공로에 완전히 의지하는 것보다 더욱 속절없이 보이는 것이 없지마는 실상은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와 그분께서 함께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가장 약한 사람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을 붙드셔서 그들이 결코 떠나가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치료봉사, 165).
(346.1)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오른손으로 붙드신다는 것은 그가 영예로운 위치에 올리워져 하나님과 교제하며 결국에는 세상의 빛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이다. (346.2)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사 41:13, 14)
(346.3)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사 42:6)
(347.1)
 인간은 스스로 선해지려는 노력으로 이 영광의 자리를 결코 획득할 수 없다. 하나님과의 친교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의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유일한 선(善)으로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자들은 하나님과의 친교의 이적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교제는 그 영혼이 맛보는 열광적 희열의 경험이다. (347.2)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347.3)
 이 기쁨은 우연히 일어나는 전율이 아니라 전 생애를 통한 기쁨이다. (347.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 73:24)
(348.1)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그리고 각 사람과 개별적으로 하나의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 (사 55:8, 9 참조). 이에 대한 명명 백백한 견해는 그분께서 우리를 영원한 영광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분께서는 순탄한 항해를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분명한 도착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348.2)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히브리 어 동사 “들어 올리다”(lakach, 한역은 영접하다로 됨)는 성경에서 규칙적으로 승천 또는 영광스러운 부활로 사용되었다. (3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