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난제는 구약의 난제라기보다는 우리의 난제이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의로운 분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분은 그분의 판단을 따라 벌을 주시거나 상을 주신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열왕기상 22장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아합을 어떻게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게 하여 쓰러뜨릴 것인가를 하늘 조정에서 의논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20절). 역시 거기서도 아합이 죽어야 마땅하다는 논의가 없었다. 유일한 질문은 그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가 문제였다. 마찬가지로,
사무엘하 24장에서도 인구 조사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논하지 않는다. 요압 그리고 곧 다윗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남은 문제는 그 죄를 어떻게 벌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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