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4 편 성소 제20장 황금 진설병상
 이 특별한 안식일 성찬은 매일 경건한 마음으로 생명의 떡을 떼는 것과 함께, 품성이 완전함으로 “자라는 데” 불가결한(essential)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죄로부터 떨어져 사는 데도 불가결한 것으로, 성경은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라고 말한다. 그것은 또한 성화를 위해 불가결한 요소로, 그것은 여호와께 “가장 거룩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말씀의 진지한 연구를 대신할 대용물이 있을 수 없으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성경 연구는 또한 “보충”의 역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같이(요 1:1, 14),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육신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말씀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말씀이 되어야 한다.10) (183.2)
 진지한 성경 연구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진지한 뜰의 경험을 끝마친 후에도,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엡 4:13, 킹제임스역) 자라나는 경험에 있어서, 매우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어린이”와 난쟁이로 남아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모두가 거룩한 말씀에 동등한 접근을 할 수 있으나, 많은 사람이 저들의 특권을 소홀히 하여 무지한 상태로 남아있다. 연회가 그들 앞에 펼쳐질지라도, 그들은 생애의 염려와 부의 열망이 말씀을 질식사시키도록 방치한다. 때때로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성경을 읽으나, 마음은 평범한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거룩한 단으로부터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나, 그 말씀의 씨앗은 돌밭과 가시덤불 가운데 떨어진다. 그래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곧 시들어 죽거나 또는 가시가 자라서 그것에 질식되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만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듣는 것이 둔하”며, “마땅히 선생들이 되었어야 할 터인데, 이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원리들이 무엇인지를 누군가가 너희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니, 젖이 필요한 사람들이지 단단한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되지 못하는도다.” (183.3)
 “젖을 사용하는 자는 누구나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나니, 이는 그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이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이니, 그들은 그 말씀을 사용함으로 감각들을 단련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들”(히 5:11~14, 킹제임스역)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성소로 들어간 우리 모두에 대한 도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약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영양실조를 깨닫게 해주신다면, 가장 확실한 치료제는 우리의 영적 음식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연구이다. (184.1)
 안전한 보호자 성경
 만약 성경이 시련의 때에 참으로 우리의 “안전한 보호자”가 되려면,11) 우리는 성경의 구절과 구절을 대조해 가면서, 진리의 풍부한 보고를 더 깊이 파야만 한다. 유예의 시기가 마치려는 이 시대에, 이전보다 더 진지한 말씀의 연구가 필요하다. 사탄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성경을 연구할 때, 그것이 마지막시대의 위기 동안에 우리의 “안전한 보호자”가 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사물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끊임없는 연구 과제이다”(교회증언 5, 740; 각 시대의 대쟁투, 593). 만약 우리가 성경의 지식을 얻을 기회를 활용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적의 난타(亂打) 속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는 배부르게 채워 주시리라는 약속이 있다(마 5:6). 이 약속을 “믿음의 골격으로 삼아”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도록 하”(교회증언 5. 630)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교제의 통로가 방해 받지 않을 것이다. “성령의 지도 아래 깊고 열렬하게 말씀을 연구하면, 그대들에게는 새로운 만나가 주어질 것이며, 그 동일한 성령께서는 말씀의 사용에 힘을 더하실 것이다”(교회증언 6, 163). 그러므로 우리를 위한 성경 연구를 함에 있어서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그분의 말씀의 보물을 찾아 갱도 깊숙이 파 들어가자. (184.2)
 혹 교육의 기회가 제한된 이들에게는, 다음의 말씀이 큰 용기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그 연구에 사용되는 지성의 능력에 의존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전심전력하는 태도, 곧 의를 열렬히 사모하는 마음에 달려 있다”(각 시대의 대쟁투. 599). “자신(그리스도인)의 능력과 재능을 매일 계발시키고자 하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말씀을 먹고 소화하며 ∙∙∙ 생명의 떡으로 양육받는 영혼은,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기능이 활기를 얻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6, 153). 이러한 태도로 우리가 날마다 말씀에 의하여 양육된다면, 예수님께서 다섯 덩이의 빵을 증가시켰듯이 그것을 증가시키실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 우리 자신이 충족될 뿐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통하여 무리들도 역시 먹고 만족할 것이다(막 6:35-44; 요 6:9~13). (184.3)
 그분의 임재의 떡
 진설병은 문자적으로 “대면의 떡” 혹은 “임재의 떡”이라는 의미이다.12) 스미스 성경 사전은 “대면의 떡이란, 떡을 통하여 하나님을 뵙는 것이다. 즉 참여를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앞에 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체의 생명에 영양을 공급하는 수단으로써의 그런 떡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거나 충당하는 수단으로써 영적 음식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진설병은 ∙∙∙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앞에 항상 계시는 산 떡(the living Bread),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부조와 선지자, 354). 지금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그분의 얼굴을 뵐 수 있다. 그러나 표상이 원형과 만나게 될 때,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분의 이름도 우리의 이마에 있으리라는 약속이 실제로 성취될 것이다(계 22:4). (185.1)
 1) Sanctification is surely a “golden” experience. The table provides our first opportunity for Christian growth for character perfection——sanctification.

 2) All around the table top was “a crown of gold,” called by Moffatt “a moulding.”

 3) The double border of crowns has a twofold significance. A crown worn by a sovereign indicates authority and power.

 4) ···are essential to the table of the Lord——pure table before the Lord. Lev 24:5, 6.

 5) 일 에바(ephah)는 220 이며, 일 파인트(pint)는 0.5quarts, 0.470 이다. 한 덩어리의 떡은 에바로 4.40 , 파인트는 1.70 , 쿼트는 3.40 로, 열두 덩이 떡은 24~52.40가 된다.

 6) 거룩한 곳(the holy place, 레 6:16, 26). “거룩한 뜰” (the sacred court, 민 28:7). 약속의 장막 (the Trysting tent), 거룩한 장소(the sacred place) 혹은 내부 성소(the inner shrine).

 7) The bread symbolized Jesus, the bread of Life(John 6:35). He is the Bread that came down from heaven, the word of God(John 6:32, 33. 38, 63; 1:1).

 8) “In Jesus there was no unevenness. He was always even, always the same. In Him one days walk never contradicted another, one hour's service never clashed with another. In Him every grace was in its perfectness, none in excess, none out of place, none wanting. In Him firmness never degenerated into obstinacy, or calmness into stoical indifference.”

 9) Its influence upon our lives destroys the carnal life, and imparts a new life——life of Christ,···It is through the Word that we are made perfect.

 10) we must not only know the word, we must be the word.

 11) If the Bible truly to be our “safeguard” through time of trouble.

 12) Shewbread״־means “bread of face” or “bread of His presence.” 대면의 떡과 임재의 떡이란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는 떡’을 의미이며, “얼굴의 떡”은 떡을 “내 앞” (출 25:30)에 진설(陳設)하기 때문에 사용한다. “봉정(奉呈)의 떡”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떡이며, “찔림 받은 떡”(레 24:5)은 떡과 떡사이에 28개의 갈대(갈비뼈의 수와 같음)를 넣음에서 유래된 말이다(리즐리 하딩, 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155~15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