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3:3, 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87.2)
 “거듭나다”라는 술어는 헬라어 아노덴(anothen)이라는 부사를 포함하고 있다. 이 부사는 ‘다시’ 또는 ‘새롭게’라는 뜻보다 ‘위로부터’란 뜻이 더 타당하다. 요한복음 3:31에서는 이 말을 “위로부터”로 번역하였다(“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거듭남이란 “위로부터 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초자연적인 출생을 가리킨다(요 1:12). 또한 “물과 성령”이란 개념의 구약적 근거는 에스겔 36:25~27이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87.3)
 2. 예수 승천 이후
 요한복음은 구성을 보면 전반부(1~12장)에는 예수의 성육신과 계시를 다루고 있고, 후반부(13~20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올리우심 등 예수의 영광스럽게 됨을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13~17장에는 예수의 ‘고별담화’(farewell discoursed)와 ‘유언’이 들어있다. (88.1)
 1) 보혜사
 요한복음에는 성령에 관한 가장 길고 자세한 계시가 들어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16장에서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신다. 이 부분은 성령에 관한 성경의 계시의 절정이요 가장 위대한 교훈이다(요 3:3~5; 7:39 참조) . “보혜사”라는 헬라어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인데, 이 말은 파라칼레인에서 왔다. 이 용어는 파라(“곁에, 함께”)와 칼레오(“부르다”)가 합쳐진 말로 “곁에 와 돕기 위해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88.2)
 신약에는 “보혜사”라는 용어가 5번 나온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에 의해서만 4번 사용되었다(요 14: 16, 26; 15:26; 16:7). 또한 요한일서에서 “대언자”로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1번 사용되었다. “보혜사”라는 말은 예수의 고별담화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용어의 하나(요 14:16~26; 15:26-27; 16:7~15)로써, 요한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후에 활동하시는 ‘성령’(요 14:26), ‘진리의 영’(요 14:17; 15:26; 16:13)이 ‘보혜사’로 활동하실 것이라고 말한다(요 14:26; 15:26; 16:7). (88.3)
 이미 그 이전에도 성령은 존재하고 활동하였으나 그 기간 동안 활동하는 성령은 “보혜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다 마친 후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후 보내실 성령은 보혜사로 명명되었다. (89.1)
 “보혜사”라는 말은 성경번역들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되고 었다.11) 첫째, ‘변호자’(Advovate)이다. 헬라어로 이 용어는 수동태 동사-형용사로서 특별히 법정에서나 어떤 적대적인 상황에서 자문과 후원, 지지를 해주려는 목적으로 “곁으로 부름을 받은 자”를 뜻하는 말로써 법률적 배경을 지닌 용어이다. 이 말은 보통 어떤 사람을 대신해서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중보해 주거나 또는 법률적이거나 적대적인 상황에서 중개자, 중보자, 증언자로 일하면서 그의 변론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12) (89.2)
 둘째, ‘위로자’(Comforter)이다. 본래 이 용어는 “위로하다, 격려하다”라는 뜻을 가진 파라칼레인 동사에서 파생되어 나온 수동태 동사-형용사이다. 능동태 동사가 ‘위로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수동태 동사-형용사도 “위로자”란 뜻을 갖지 않겠는가 라고 추측한다.13) (89.3)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능동태 동사가 한 번도 사용된 바가 없고, 더욱이 헬라어 동사들은 태가 바뀌면서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 견해는 신빙성이 약한 것으로 보인다. (90.1)
 셋째, ‘권면자’(Exhorter)이다. 신약에 자주 나오는 파라클래시스란 말은 ‘위로하다’는 뜻의 능동태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권면, 격려’를 뜻한다. 어떤 학자들은 보혜사가 기독교 교훈과 권면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라고 생각하고, 보혜사를 “권면자” 또는 “교훈자”란 말로 번역하기를 제안한다.14) 그러나 이 해석도 앞의 해석과 같이 수동태 동사—형용사를 능동태로 번역한 문제를 가진다. (90.2)
 넷째, ‘돕는 자’(Helper)이다. 불트만 같은 이는 이 번역을 제안한다.15) 하지만 그가 이 용어를 영지주의 문헌 중의 하나인 ‘만다교’(Mandaean) 자료들 가운데서 발견한 ‘돕는 자들’ 개념과 억지로 연결시킨 것은 무리한 해석으로 보인다.16) (90.3)
 다섯째, ‘상담자’(Counselor)이다. 일부 영어번역들이 필론의 글에서 근거를 찾아 이런 식으로 번역하였다(RSV, NIV). 필론의 글에는 한 분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옆에서 조력하는 존재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 조력자를 굳이 번역하자면 ‘조언자’(Advisor)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90.4)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성령이 하시는 가르치는 자, 계시자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다(요 14:26; 16:13). 하지만 필론의 용법은 법률적인 의미는 소유하고 있지 않다. 요한복음에서 “보혜사”는 법률적인 기능들을 갖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필론의 비법률적인 의미의 술어를 꿀어다 쓰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17) (91.1)
 따라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보혜사”(파라클레토스)의 가장 적절한 번역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변호자”라고 할 수 있다. 변호자로서의 성령이 주로 담당하는 역할은 법률적인 변호자 기능보다 가르치고 계시하고 해석하는 기능이다. (91.2)
 최근 보혜사 성령론에 대한 중요한 두 연구논문이 나왔는데, 브라운(R. E. Brown)과 흘베르다(D. E. Holwerda)의 것이다. 브라운은 예수와 보혜사의 평행되는 활동들에 주목하여 보혜사 성령이 예수를 모델로 삼은 분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18) 예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알로스(allos)는 헤테로스(heteros)와 다른 말로, “같은 종류 중에서 또다른 하나”(another)를 뜻한다. 요한 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대언자(파라클레토스)”로 불리기 때문에(요일 2:1), 그가 첫 번째 보혜사이고 성령은 두 번째 보혜사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성령은 예수의 계승자이며 그리스도의 임재를 대신하는 보혜사이다. 브라운은 예수와 보혜사가 하는 일들 사이에 존재하는 평행점들을 찾아 제시하였다. (91.3)
 예수가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신 것처럼(요 16:27; 5:43; 16:28; 18:37), 성령도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실 것이다(요 15:26; 16:7, 8, 13; 14:26). 예수가 첫 보혜사이고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이다. 예수와 보혜사는 제자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스승들이다(요 14:17, 20; 15:1-10; 17:23; 14:25ff.; 16:13). 세상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것처럼 보혜사도 역시 영접하지 않을 것이다(요 14:17; cf. 1:12; 15:26, 18~26f.). 성령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던 예수의 사역을 계속할 것이다(요 16:8~11). (92.1)
 브라운이 예수와 보혜사의 평행적 성격을 드러내는데 공헌한 학자라면, 홀베르다는 보혜사의 모든 기능들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그들을 변호하는 법률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밝히는데 기여하였다.19) 그는 보혜사의 기능이 고아처럼 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적대적인 세상에서(요 14:18), 제자들을 위하여 활동한다는 점에서 법률적인 성격이 있다는 사실을 논증하였다. (92.2)
 변호자 되신 성령의 법률적 기능은 요한복음 16:8-11에서 분명하게 설명된다. 그가 오실 때 그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폭로하고 책망할 것이라고 확증한다. 첫째로, 성령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의 본질”이라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죄에 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