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제 6 장. 안식일:봉사의 기쁜 소식 II. 자신에 대한 봉사로서의 안식일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적절한 묘사가 아닐까? 현대 생활의 속도와 압력은 우리 존재의 물질적인 성분과 영적인 성분사이의 균형을 파괴시키고 있다. 아카드 하암(Achad Haam)이 지적했듯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인간 속에 존재하는 영과 육의 두 요소는 완전한 통일을 이룰 수 있으며 또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31 그 일례로서 사도 바울은 “영과 혼과 몸”(살전 5:23)의 총체적인 성화와 보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169.3)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우선 사항들을 재정리하도록 함으로써 우리의 총체적인 존재에 질서와 통일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한 주일 내내 물건들을 생산하고 팔고 사고 즐기면서 우리는 물건들 이야말로 우선적이고, 긍극적인 실재이라는 생각에 빠져 들기가 쉽다. 우리의 의식과 관심이 너무나 물체적인 것에 쏠린 나머지 우리의 영적인 필요성이 자주 모호해지거나 등한시 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끝내 하나님에 대해서도 하나의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데까지 이를 수가 있다. (169.4)
 안식일은 우리에게 더 많은 물질을 획득하려는 욕망을 하루 동안 억제하고 대신에 영적인 가치와 관계를 추구하도록 명령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물질주의의 압제로부터 탈출하도록 돕고 있다. 안식일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 사물이 공간적 사물보다 우선적인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을 갖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와 같이 우선 사항을 재조종할 때 우리 생활에 통일과 조화가 회복된다, 안식일은 우리의 영혼에게 우리의 육체를 흔들어 일으킬 기회를 주고 있다. (169.5)
 사무엘 H. 드레스너(Samuel H. Dresner)가 말했듯이 “우리가 만약 안식일에 누더기 처럼 너털거리는 자신의 영혼을 손질하고 기쁨과 안식, 그리고 내면의 감정과 외면의 행위 속에서 육체와 영을 결합시키는 도리를 배운다면 아마도 우리는 이 날의 영적인 분량의 한 부분을 주일의 다른 날들 속으로 가져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써 안식일이 아닌 평일들도 안식일의 정신의 일부를 가지게 될 것이다.”32 (169.6)
 

가치관들이 변하고 서로 충돌하는 시대에 있어서 안식일은 도덕적인 성찰, 그리고 도덕적인 의식과 책임의 개발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있다. 오늘날은 사람들로 하여 금 하나님의 계명위에 기초된 생활 방식을 세우도록 도와주어야할 필요성이 대단히 절실하다.
(170.1)
 도덕적 소생(生). 우리가 안식일에 우리의 우선 사항을 재조정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식의 정비(整備)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정치, 사회,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자신들과 계획들을 좀더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활력과 전략을 가다듬은 다음에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가기 위하여 자주 일시적인 퇴각(退却: Withdra wal) 또는 낙향(落鄕)을 계획할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그와같은 퇴각의 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 날에 우리는 우리 생활 속에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도덕적 방향을 검토하기 위하여 분주한 생활에서 물러 나온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와 동기,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들과 자신과 사업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기 위하여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171.1)
 때로 우리는 우리의 과거가 성취와 실패의 유감스러운 혼합물이었음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5장(章)에서 보았듯이 안식일은 우리를 과거의 실패들과 고통으로부터 자유케 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이다. 안식일의 기쁜 소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으며(눅 4:18).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용서 속에서 안식을 누리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난 실패들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후부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앞에 제공하시는 가능성과 기회들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이해는 특별히 예배와 명상의 경험을 통하여 더욱 높아진다. 시간을 구별하여 안식일에 의하여 기념되는 하나님의 업적들을 명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과 임재의 보증을 통하여 새로운 목표들을 달성하려는 의욕을 불태우게 된다. (171.2)
 가치들이 변하고 서로 충돌하는 시대에 안식일은 도덕적 성찰, 그리고 도덕적 자각과 책임의 개발을 위해 문을 열고 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계명에 기초한 생활 방식을 형성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 보다는 절실하다. 최근에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84%에 달하는 사람들이 오늘날도 10계명을 유효하다고 믿으면서도 ∙∙∙ 10계명 중 최소한 5개만이라도 그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은 그 절반(40%)도 안된다”고 한다.33 안식일은 우리 자신들로 하여금 인간의 행위에 대한 성서적 원칙들의 내용에 더 정통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 주는 데에 끝나지 않고 그러한 원칙들을 내면화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제공해 주고 있다. 안식일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본래적 표현을 뜻한다는 사실 자체가 안식일 준수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어느 한 계명 뿐만 아니라 모든 계명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재 다짐하 게 해준다. (171.3)
 영적인 소생(蘇生). 현대인들의 욕망 사항 중에서도 더 깊은 영적 경험에 이르고저 하는 회구는 그 순위가 상당히 높은 것이다. 동양의 명상법이나 환각제 사용에 사람들의 마음이 쏠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물질주의적인 것 이상의 무엇을 희구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도 우리는 최근 수년 안에 교파의 경계선을 초월하여 수많은 결심자를 얻고 있는 신(新) 오순절의 성령 운동도 이러한 예증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 한 갤럽조사는 미국의 성인(成人) 5명 중 한 사람이(2천 9백 4십만명) 자신을 오순절 성령운동파의 일원으로 생각한다고 보고했다.34 (172.1)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서구의 여러 나라들에도 오순절파의 성령운동의 불길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슬픈 현실을 도피하기 위하여 성령운동이나 환각제의 사용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그들이 자신들의 생활의 공허를 메꾸어 줄 어떤 영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그대로 남는 것이다. (172.2)
 안식일은 하나님과 더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려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안식일은 당신의 임재로 당신의 백성들을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상징으로서 신도에게 당신과의 특별한 영적 관계를 갖도록 초청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경험하고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있어서 안식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십분 인식하고 누누이 강조했었다. (172.3)
 에스겔은 국가적 배도의 위협에 직면해 있음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 속에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하라고 호소하였다(겔 20:12). 이와 비슷하게 이사야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라, 즉 이기적인 관심의 물질적인 오락(“너의 오락”사 58:13)을 구하기 보다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는 영적인 즐거움을 구하는 날로 부르도록 촉구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확언하기를 만약 백성들이 이와 같은 호소에 응답하기만 한다면 기필코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즐겨움을 얻을 것”(사 58:14)이라고 하였다. 여호와 안에서의 기쁨! 이것이야말로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공하시는 영적 소생(蘇生)의 원천이다. (172.4)
 A. H. 루이스(Lewis)는 세계 종교 총회(word’s parliament of Relgions) 석상에서 행한 연설에서 안식일의 영적인 기능을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강조하였다. “거룩한 시간들은 하늘의 교제가운데서 영혼을 높여주고 붙들어주며, 포근히 감싸 주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하나님이 항상 가까이 있음을 사람들이 인식할 때 가장 거룩한 것과 가장 선한 것이 생명 속으로 들어와 아름다운 것으로 자라난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의식에 의하여 일깨워진 개인적인 의무감은 종교 생활과 예배의 토대를 이룬다. 하나님의 날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감싸 주는 구속적 사랑의 완전한 상징이다.”35 (172.5)
 우리는 지금까지 안식일에 의하여 마련된 영적 소생의 여러 기회들에 대하여 논의를 집중해 왔다. 예컨데 안식, 예배, 생활의 재조정, 하나님의 용서의 경험, 하나님의 임재의 인식, 도덕적 의식의 각성,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재다짐 등을 위한 기회들이 그것들이다. 이제는 안식일이 제공하는 소생의 기회들 중 다른 것들을 검토하기로 하자. (172.6)
 참고문헌
 24. Gabriel Marcel views the lack of reflection as a major cause of the dehumanizing conditions prevailing in today’s world (The Mystery of Being, vol. I, Reflection and Mystery, 1960, pp. 44-47). On the significance of reflection in Christian worship, see James White, The Worldliness of Worship, 1967, pp. 48-78. John Bosco perceptively wrote: “Modern man is only satisfied with himself when he has not a moment left for himself; the more he does the more he believes he can do. But the speed one takes neutralizes in reality personality and life. The internal reality of man is destroyed by the swirl of external life. Man loses the ability to accomplish his acts, that is, to engage himself totally in a reflective action” (“Juste place dans notre vie personnelle,” in Le Semeur, 1947, p. 262).

 25. Harvey Gallagher Cox, Turning East. The Promise and Peril of the New Orientalism, 1977, p. 65.

 26. Ibid.

 27. Ibid., p. 66.

 28. Ibid., p. 68.

 29. Ibid., p. 72.

 30. Herbert Saunders, “Reaching a Pluralistic Society With the Sabbath Truth,” The Sabbath Sentinel 30 (1978): 5.

 31. Achad Haam, Ii Birio, 1927, p. 54.

 32. Samuel H. Dresner, The Sabbath, 1970, p. 63. Earlier Dresner writes: “Man is half-animal, half-angel, and for six days there is a struggle between the two. One day a week, however, we learn to make peace between body and soul, between spirit and flesh” (ibid., p. 52).

 33. “The Christianity Today Gallup Poll: An Overview,” Christianity Today 23 (Dec. 21, 1979): 14.

 34. Ibid.

 35. A. H. Lewis, “The Divine Element in the Weekly Rest Day,” in The World’s Parliament of Religions, John Henry, ed., 1893, p. 740.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