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65편 열방을 위한 감사의 노래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합한 후에는 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 즉, 하나님의 성전에서 갖는 그분과의 교제가 그것이다. (319.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65: 4)
(319.5)
 시인은 하나님의 선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택한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하지 않고 오히려 “주께서 택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사랑으로 먼저 우리를 택하셨다(요일 4:19). 그보다 더한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받아 주실 뿐만 아니라 당신과 함께 서서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도록 우리를 초청하신 것이다. (320.1)
 누가 과연 이런 특혜의 사람인가? 구약에는 레위 제사장만이 선택되었지만 본래는 이스라엘의 개개인이 모두 한 사람의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았다(출 19:5, 6).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더불어 이 계획을 회복시키시고자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 개개인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각기 한 사람의 제사장으로 택하셨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재차 “거룩한 나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리운다(벧전 2: 9).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오도록 초청받고 있다. (320.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히 10: 19~23).
(320.3)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에 편히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는 마치 성전의 “기둥”과 같은 존재이다(계 3:12). 고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만족한 경험을 했었다. “우리가 당신 집의 좋은 기물들로 채워졌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죄의 짐을 벗겨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 대신 좋은 것들로 채워 주신다. (321.1)
 그리스도께서는 이 거룩한 약속을 이행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321.2)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부요함을 모으시고 무한하신 능력의 자원을 펼쳐 놓으신 다음에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선물들을 사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에서 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라. 사람의 최대의 행복은 오직 나를 사랑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하신다”(시대의 소망 1권, 57, 58.)
(321.3)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마음에 깊은 감사의 정을 일으킨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재창조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321.4)
 창조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땅 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시 65: 5~8)
(322.1)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도를 들으시며 그리하심으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인하여 그분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5절. 2절과 비교),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적, 즉 당신의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응답하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322.2)
 “의의 일”이라고 지적한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게 나타났음을 암시해 준다. 하나님의 응답은 편애 행위가 아니라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행위이다. 행위로 드러난 당신의 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의가 되나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멸망이 된다. (323.1)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구세주 예수 안에서 응답하신다는 기별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 인상적인 계시로 묘사되어 있다. (323.2)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 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계 8: 3~5).
(323.3)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응답이 이 땅에 심판으로 나타나게 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32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의로운 심판의 하나님은 모든 이 방의 소망이요 신뢰가 되신다. 그들이 시온 산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의 유일한 피난처이시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끝의 의지”(시 65:5)가 되신다. (323.5)
 그분께서는 당신의 능력으로 이 땅을 조성하셨고 지금도 요동치는 바다를 지배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당신의 손안에 두셨다. 우리의 구세주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만물이 그분의 권세 아래 있다. 우리가 만일 그분과 언약 관계에 있기만 한다면 천연계의 능력을 두려 워하며 살 필요가 없다. 그분을 아는 것이 영혼의 평화를 찾는 길이다. 그분을 알지 못할 때에 두려움이 온다. 산과 바다는 전능하신 창조주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그분께서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것이다. (324.1)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를 잠잠하게 하시고 요동치는 물결을 고요하게 하심으로 이와 같은 신성을 보여 주셨다. 예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막 4:39).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자연의 모든 요소를 통치하심을 보여 주기 위하여 물위를 걷기까지 하셨다. 구원의 하나님과 창조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324.2)
 예비하시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