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그림자 제4편 봄 연례 절기 제 15 장 초실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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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 때가 가까웠음을 알려주는 황금의 물결이 들판을 가로지를 때, 여호와 앞에 첫 열매를 드리는 예식이 성전에서 거행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에 참예하려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할 때, 사방의 들판에는 누렇게 익은 보리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산들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첫 열매를 여호와 앞에 드리기까지는 곡식이나 심지어는 먹기 위해 이미 거둬들인 낟알에도 낫을 대어서는 안 되었다. (113.1)
 초실절은 유월절로부터 제3일 되는 날이었다. 아빕월 즉 니산월 제14일에는 유월절 음식을 먹었고, 제15일은 안식일이었고, 제16일, 즉 성경이 말하는 대로 “안식일 이튿날”에는 첫 열매를 여호와 앞에 흔들어 드렸다(레 23:5~11). (113.2)
 첫 열매를 드리는 일은 하나의 아름다운 예식이었다. 성의(聖衣)를 입은 제사장은 누렇게 익은 곡식 단을 한 줌 들고서 성전에 들어갔다. 성전 벽과 기구로부터 비쳐오는 황금 빛깔과 누렇게 익은 알곡에서 나오는 색채가 잘 조화되었다. 제사장은 금향단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여호와 앞에 곡식 단을 흔들었다. 첫 곡식 단을 흔드는 것은 수확을 주시는 여호와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첫 열매를 흔드는 것은 그날의 중요한 예식이었으나 양 한 마리도 번제로 드려졌다. (114.1)
 첫 열매의 어떤 부분도 불에 태우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다시는 죽거나 썩지 아니할 불멸을 입고 부활할 사람들에 대한 하나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114.2)
 수세기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성전에서 만나셨고, 그들이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예물을 받으셨으나, 이제는 하나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에서 돌아가시고 성전의 휘장이 찢겨졌을 때, 성전 봉사의 효력이 그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예전처럼 그들의 유월절 양을 죽였으나 그 예식은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해 아빕월 제14일에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다음날에 공허한 형식에 불과한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나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에게는 안식을 경험한 날이었고, 그 안식은 하나님께 가납되었다. 그달 16일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버리신 성전에서 곡식 단을 드리는 공허한 형식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가 되셨다. 표상이 실체를 만난 것이었다. (114.3)
 들에 익은 모든 알곡들을 곡간에 거두어들이는 것은 추수의 주인 되시는 주께서 그분의 추수꾼인 천사들과 함께 세상의 영적 추수를 하기 위하여 오실 때인 최후의 대추수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한 움큼의 첫 곡식 단이 다가오는 추수를 보증해주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은 의인의 부활을 보증해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114.4)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갈 때, 곡식 낟알 하나만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는 한 움큼의 곡식 단을 여호와 앞에 흔들었다. 예수께서도 혼자만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마 27:52~53).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첫 열매를 드리는 공허한 형식을 거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로마 군인들이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해 갔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동안, 부활한 성도들은 예루살렘 거리를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살아나셨음을 선포하고 있었다(마 28:11~15). (115.1)
 자기들의 주를 사랑하던 제자들까지도 너무나 눈이 먼 나머지 그들의 전 생애에 걸쳐 해마다 드려 왔던 제사의 위대하신 실체께서 나타나실 때가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심지어 그들이 그분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라도 그 사실이 그들에겐 쓸데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눅 24:10~11).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분의 일을 수행해 줄 대리자들이 언제나 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벙어리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잠자는 성도들을 깨우셔서 자신의 계획된 일을 수행하셨다. 표상에서 곡식은 성전 안에서 흔들어졌고, 그것의 실체를 성취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과 또 그분과 함께 살아난 무리들을 하늘 성소의 첫째 칸에서 하나님 앞에 제시해야만 했다. 부활일의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는 그분께 경배하려고 발아래 엎드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 20:17)고 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일어날 큰 사건에 대하여 자신이 제자들에게 알리시는 동안 지상에서는 하늘의 그 놀라운 즐거움에 대한 회답이 있게 될 것을 바라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고민하시던 그 밤에 그들이 잠에 취해 그들의 동정심을 구주께 표하지 못하였던 것같이(마 26:40~41), 이제는 그들의 마음이 불신으로 어두워져서 구주의 그 놀라운 승리의 기쁨에 참예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날 늦게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분의 발을 붙들고 경배하는 것을 허락하심으로(마 28:9), 잠시 하늘 아버지께 가셨다가 오셨음을 보이셨다. (115.2)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을 때,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았다(엡 4:8)고 말한다. 로마서 8:29~30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서 부활한 성도들의 무리가 어떻게 택함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었다.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부활한 성도들의 구성원은 아담의 때로부터 그리스도 당시까지의 각 시대의 택함을 받은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무덤에서 잠자는 자들을 부활시키는 분의 권능의 전리품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하였다. 표상적인 봉사에서 한 움큼의 곡식 단이 다가오는 추수에 대한 보증이 되었듯이, 부활한 성도들도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두 번째 오실 때 땅의 티끌 가운데서 깨우실 무수한 무리들에 대한 보증이 되었다(요 5:28~29). (116.1)
 세상의 거민들은 유대인들이 지상 성소에서 공허한 형식들을 거행하고 있었을 때, 하늘 성소에서는 그 놀라운 실체적인 초실절이 거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117.1)
 부활한 무리들은 하늘 궁전의 경이적인 존재들이 되었다. 천군들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에서 온 대표자들은 지금까지 치른 싸움 중에서 가장 무서운 싸움을 치르시고, 지금까지 쟁취한 승리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두시고 돌아오신 전능하신 정복자를 맞이하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땅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기 위하여 짧은 기간 동안 싸우는 지상 전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전쟁에 비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늘에 돌아오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치열했던 싸움의 흔적을 지니고 계셨다. 곧 그분의 손과 발에는 못 자국이 나 있었고, 그분의 옆구리에는 창 자국이 나 있었다(사 49:16). (117.2)
 천군들이 한 마음으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광경은 말로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천사들에게 뒤로 물러서서 기다리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허다한 형제들 중 첫 열매”로서 하늘에 들어가셨다. 그분은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세상으로부터 거두어들이게 된 수확의 첫 열매들을 아버지께서 받으시기까지는 천사들의 경배를 받지 않으실 것이었다(마 13:38~43). 그분은 아버지께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탄원하신다. 그분은 헛되이 탄원하지 않으신다. 여러 세기에 걸쳐 드려진 제사의 위대하신 실체가 완전히 성취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구속받은 자들이 그분의 가납하심을 받게 되리라는 하나의 보증으로서 이 첫 열매들을 받으신다. 그때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117.3)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찌하여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치욕과 굴욕만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으로 오실 수 있었는지 의아해 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얼마나 놀라운지! 세상에 남아 슬픔에 잠겨 있는 제자들이 그분께는 너무나도 소중하였으므로, 온 하늘이 경배한다 하더라도 그분을 그들로부터 떼어놓을 수가 없었으며, 그리하여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기 위하여 세상으로 되돌아오셨다. (118.1)
 유월절의 첫 3일은 우리의 구주의 생애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을 표상하였다. 첫 날은 그분의 상하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표상이 실체를 만나기 전날,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감격적인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셔서, 그분이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음과 고난을 기억하게 하셨다(마 26:26~29). (118.2)
 매주 돌아오는 주의 안식일은 예수께서 잃어버린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사역을 세상에서 다 마치신 후 무덤에서 쉬신 그 안식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118.3)
 하나님께서는 초실절의 위대하신 실체에 대한 기념물을 그분의 교회에 남겨두셨다. 그분은 이 영광스러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침례 예식을 제정하여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장사되신 것같이 침례 후보자도 물 무덤에 장사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데려가신 부활의 첫 열매들이 최후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 되었듯이, 침례의 물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에게는 부활에 대한 보증이 된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5). (118.4)
표 상 실 체
레 23:5-11 첫 열매는 유월절 후 제3일에 드려졌다. 고전 15:20; 눅 23:21-23 그리스도께서 제3일에 부활하셔서 첫 열매가 되셨다.
레 23:10b 제사장은 한 움큼의 곡식단을 흔들었다. 롬 8:29; 마 27:52-53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다. 그분은 여러 형제들 중 첫 열매가 되셨다.
(119.1)
  (120.1)
 참고 — 수세기에 걸쳐 성경 연구가들 간에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신 시간에 대하여 그 의견이 양분되어 왔다. 한 부류는 예수께서 사건상으로는 표상을 성취하셨으나 시간상으로는 성취하시지 못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해의 니산월 14일. 곧 유월절은 목요일이 되며, 그분께서 니산월 15일 연례 안식일 곧 금요일에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니산월 16일에 첫 열매가 성전에서 요제로 드려지는 동안에 무덤에 누워 계셨으며, 니산월 17일에 죽은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고 주 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은 다음의 성경절들을 인용한다. 마 26:17; 막 14:11; 눅 22:7. (120.2)
 다른 부류는 하나님께서 어떤 예물을 달의 어느 확정된 날짜에 드리라고 명하셨을 때는 표상이 그 명시된 시간에 실체를 성취했다고 믿는다. “이 표상들은 사건상으로뿐만 아니라 시간상으로도 다 성취되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399). 이것의 성취로서, 그리스도께서는 니산월 14일, 곧 금요일 제 9시쯤 [두 저녁 사이]에, 즉 유월절 양이 수세기 동안 드려져 온 바로 그 시각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분께서는 그 전날 저녁에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잡수셨다. 구주께서는 이 사건의 표상으로 연례 안식일로 준수되어 온 니산월 15일, 곧 안식일에 무덤에서 쉬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요제의 실체이셨고, 그분의 부활은 요제가 여호와 앞에 드려져야 했던 바로 그날에 일어 났다.”(시대의 소망, 785). 이날은 니산월 16일, 일요일이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다음의 성경절들이 인용된다. 요 13:1-2; 18:28; 19:14; 13:29; 19: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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