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V부 제자들이 새 세대를 불러옴 (13-17) 제 12 장 제자들이 예수를 대신함 (13-17)
 예수께서 아버지와 맺는 관계가 제자들이 예수와 맺는 친교의 모본인 것처럼(요 15:10), 예수와 세상의 관계는 신자들과 불신자 사이의 관계와 대구를 이룬다(18절). 제자들을 향한 세상의 증오는 예수를 향한 증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22-25절). 예수께서 지상에 계신 동안, 세상의 증오는 전적으로 그에게로만 향하였다. 그가 떠난 후에는 그 초점이 지상에서 그를 대표하는 자들에게로 바뀌게 된 것이다. 반대의 이유는 예수와 제자들이 세상의 길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19절—어떤 의미에 있어서 반대는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25절). 세상의 가치는 종종 하나님의 가치와 상반된다. 세상은 자신의 통치를 위협하는 것을 쉽게 묵인하고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서 제자들은 자주 위화감(違和感)을 느끼게 될 것이다. (282.3)
 예수께서는 16:1-4에서 이 주제를 계속 말씀하셨다. 성령에 관한 간단한 언급(15:26, 27)은, 증거하다(testify)라는 단어(헬라어로 순교자[martyr]란 단어와 연관된)의 이중 사용을 통하여 이 부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자들은 세상의 반대를 홀로 직면할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는 그가 보내실 보혜사를 통해 그들의 증언을 도우실 것이다. 반대의 시기가 이르러 와서 사람들은 제자들을 핍박함으로 하나님 편을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16:2), 성령께서 기억나게 하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들은 힘을 얻게 될 것이다(1, 4절; 14:26). 예수께서는 미리 경고하지 않으시면 제자들이 “이중 공격”에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셨다. 그들이 예수의 육신적인 임재를 상실할 뿐 아니라 그들이 전에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강도로 세계의 반대를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282.4)
 예수의 떠나감이 제자들에게 그토록 많은 곤란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는 왜 그렇게 하는가? 그것은 성령의 임재의 유익이 예수의 부재로 발생하는 상실과 세상의 증오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16:7). 성령은 세상을 심판하는 일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8-11절), 제자들의 성령 없는 상태로 인해 예수께서 나눌 수 없었던 진리를 그들과 함께 나누실 것이었다(12-15절). 예수의 마음 속에는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제자들의 유익을 위해 그 모든 것을 계산하고 계셨다. 요한복음 16:16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수수께끼를 내놓으셨다. 그 수수께끼는 그들의 마음속에 네 가지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17-19절).

 (1) 예수께서 조금 있으면 그들이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의미인가?

 (2) 동시에 조금 있으면 그를 보게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3) 그가 아버지께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4) “조금 있으면”은 무슨 의미인가?

 16절의 수수께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표면적으로는 예수께서 그의 죽음(그들이 그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시점)과 그의 부활을 말씀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의미로는 그가 승천으로 인한 그의 부재와 그의 궁극적인 귀환의 때에 누릴 그들의 기쁨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283.1)
 20절은 대단한 역전을 묘사하고 있다. 세상이 예수의 떠나감을 기뻐하는 반면에 제자들은 슬퍼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하고 점차 세상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21-24절에서 세상의 증오와 성령 안에 누리는 제자들의 유익의 주제는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수의 부재로 경험하게 될 비통함은 예수와 아버지의 새로운 관계를 맺는 즐거움으로 줄어들 것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아버지를 발견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보증하셨다(25-28절)! 우리가 아버지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아버지께서는 기꺼이 들어주시는 귀를 가지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한 사랑과 그들이 그와 맺은 관계 때문에 이미 그들의 요구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 (283.2)
 만찬 이후에 하신 강론은 마침내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을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익살스러운 짧은 대화로 끝마치고 있다(29, 30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소 풍자적으로 그들이 현실을 직면하게 하셨다: “그래, 마침내 믿느냐? 이는 네가 이제 곧 나를 버리려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31, 32절을 보라). 제자들은 예수께서 의미하신 것의 가장 적은 일부를 깨달았음에도 그들의 성취에 큰 만족을 표했다. 그들은 적어도 그가 말씀하신 것을 이해했다고 짜릿한 감동을 느꼈던 것 같다. 예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는 한 분이 계신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32절). 지상에서의 최후의 시간에 그는 인간적인 동정 없이 살도록 요구받을 것이다(시 69:20을 보라). 그러나 어느 날 십자가 때문에 제자들은 그가 가졌던 동일한 발판, 즉 하나님과의 관계 위에서 평화를 누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33절; 14:27). (284.1)
 문단 주요 주제
 계속되는 사랑의 주제
 만찬 석상에서 논의의 핵심인 사랑의 주제(13:31-14:31)는 요한복음 15:12-17에서 보다 더 강조되고 있다.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보여준 사랑의 모본이 될 것이었다(15:12). 예수께서는 이 부분에서 인간 사이의 자기 희생적인 우정으로 묘사하심으로써 사랑의 개념을 확장시키셨다(13절). 예수께서 그의 생명을 그들을 위해 내어놓으실 때 서로를 위한 그들의 사랑은 자주 궁극적인 희생을 요구하게 될 것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실 때 그들은 단순히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명령을 받아 수행하는 종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를 잘 아는 상황 속에서 순종하는 친구였다(15절). (284.2)
 예수와 제자들 사이의 우정이 계속되게 하는 핵심은 바로 기도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와 그들 사이의 친교(15:7)와 그들이 맺게 될 열매(16절) 때문에 그들의 요구는 바로 응답하실 것이다(14:13, 14). 고별 강론에서 반복되는 개념은 제자들이 하는 요구가 예수 안에 거함으로 이르러오는 친밀한 이해로부터 온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요구하고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16:23-27). (285.1)
 세상이 미워함
 만찬 후에 있은 강론(15:1-16:33)의 주 강조점은 세상 속에 거할 예수의 추종자들이 당하게 될 이중적인 경험에 있다. 한편으로는 제자들이 예수께서 경험하신 것과 같은 증오와 핍박을 경험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예수와 같고, 세상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15:18-25; 16:1-4).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께 가서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생길 유익으로 상호 조화를 맞추게 된다(15:26, 27; 16:7-15). 제자들의 이 같은 두 가지 측면의 체험 사이의 긴장은 어린아이 출산의 복잡한 감정(16:21, 22), 평안과 환난의 혼합(33절), 보지 못하는 것과 보는 것(16절) 같은 개념으로 묘사되어 있다. (285.2)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17:1-26을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286.1)
 1. 성구 사전의 도움을 받아 요한복음에서 영광(glory)이란 단어를 사용한 모든 구절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라. 그대는 이 구절들에 기초하여 누군가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예수께서 여기서 진정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286.2)
 2. 성구 사전의 도움을 받아 이 복음서에서 진리(truth)라는 단어가 나오는 모든 구절의 목록을 만들어 보라. 어떻게 사람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가? (286.3)
 3. 예수의 기도를 그가 지상에서 한 활동을 그의 “상관”(“Superior”)에게 드리는 “보고서”라고 생각해 보라. 예수께서 그의 상관의 명령을 수행한 것을 특별히 강조하여 자신의 말로 보고서를 작성해 보라. 예수의 활동의 결과는 무엇인가? (286.4)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
 예수와 제자들의 고별 모임은 세 부분으로 된 중보(中保)의 기도로 결말을 짓고 있다. 1-5절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다. 6-19절에서 그의 관심이 제자들과 그들이 그의 육신적인 임재 없이 홀로 있게 될 경험을 대비해야 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전환되었다. 그런 후 20절에서 명백하게 예수께서는 그의 관심을 제2 세대, 즉 예수의 직접적인 사역보다는 제자들의 말을 통하여 믿음에 이르게 된 사람에게 나타내셨다(21-26절). (2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