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는 두 구절(5:19, 20)로 그의 편지를 결론짓는데, 얼른 보면 이전의 구절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진리를 떠나 미혹된 자와 미혹한 길에서 돌이키는 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그가 용서와 고백을 이야기했던 15, 16절을 회상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구절들이 서신 전체에 대한 결론적 진술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미혹된 사람들이란 그가 편지를 통해 이야기한 부정적인 활동들에 참가하는 자신들을 발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240.3)
 마지막 권고는 구약 성경(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과 후기 유대 문학서에 근거한다. 첫째로, 그것들은 고대 잠언을 떠올리게 한다: “무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잠 24:24, 25). 또한 그것은 사해의 쿰란 공동체의 방침과 사상과도 비슷하다(R. P. Martin, 217). (241.1)
 만일 마태복음의 본문이 올바르게 번역된다면, “너에게 죄를 지은 형제”(18:15-17)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마태복음의 기록과의 병행이 두드러진다. 비록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를 떠나 방황하는 사람과 관련은 없지만, 그분의 초점도 그런 사람을 다루고, 사랑받고, 유지하며, 교제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죄인은 “이방인과 세리”(18:17)로 취급되어졌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대우는 절교와 무시가 아니었다. 그분은 그들을 사랑과 용납과 용서로 다루셨다. (그 후에 즉시로 그분은 베드로에게 일흔 일곱 번 혹은 일흔 번씩 일곱 번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목하라—18:21, 22.) (241.2)
 하지만 야고보의 경우에는 방황하는 사람은 “진리”에서 떠나 방황하였다. “진리”는 정통(신뢰받는 진리)이라고 일반적으로 믿는다. 하지만, 야고보에게, 진리는 정통도 orthopraxis(살아있는 진리)조차도 아니다. 진리는 단순히 지적 사실에 대한 동의가 아니요 삶의 방편이다(2:14-26). 그러므로 야고보의 마지막 요청은 그의 독자들이 진리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도와주도록 권면한다. 순향적인 길에서 급진적인 반전으로 미혹하는 자들의 과오와 죄로 인해 고난받는 자들이 고통에서 구제될 것이다. (241.3)
 ■ 말씀에 들어감
 1. 야고보는 5:13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라고 말한다. 현대주의가 내 생활에서 노래를 다소간 듣는 쪽으로 바꾸고 있는가? 내 개인이나 가족 예배에서 어떻게 하면 생기 있는 찬양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어떻게 하면 처음으로 찬양의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까? (242.1)
 2. 병들거나 고통받는 교인들에 대한 목회적 요청이 그들이 해왔던 것보다 줄어든 것을 발견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 같은 초청에 더욱더 활동적이 되도록 교인들을 장려할 수 있을까? (242.2)
 3. 어떻게 현대 과학(예, 기상학)에 대한 나의 지식이 비에 대하여 기도하는 일과 같은 것에 회의적으로 만드는가? 어떻게 하면 강력한 기도 생활과 동시에 과학도 신뢰할 수 있을까? (242.3)
 4. 진리에서 떠난 사람을 돌이키기 위해 지난 12달 동안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 내년에 나의 공동체 안에 있는 “죄인들”의 회복을 지원하는 어떤 계획을 가졌는가? (242.4)
 ■ 말씀을 연찬함
 1. 성구사전을 사용하여, 이번 장에서 언급되지 않은 응답받은 기도의 예를 성경에서 여덟에서 열 가지 정도 찾아보라. 긍정적인 응답이 아닌 두세 가지도 발견하였는가? 그들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242.5)
 2. 당신의 성구사전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경에서 삼 일 반, 석 달 반, 삼 년 반의 기간에 대한 관련구절을 찾아보라. 각각의 배경은 무엇인가? 윗 부분의 “Exploring the Word” 부분에서 언급한 것 외에 이 기간에 대한 또 다른 상징적인 의미를 발견하였는가? 그것은 무엇인가? (242.6)
 ■ 말씀의 추가 연구
 1. 치료에 대해 야고보가 말한 것과 그가 말하지 않은 것, 우리 현대 시대에 의미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해석적 연구를 위해서는, J. Wilkerson의 “Healing in the Epistle of James”를 보라.

 2. 완전함에 이르는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통찰과 교훈들을 위해서는, E. G. White, Ministry of Healing“Prayer for the Sick”, 225-233을 보라. (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