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5장 벽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글자
 서론
 B. C. 539년 10월 12일, 바벨론 왕 벨사살은 큰 잔치를 배설하고 일천 명의 귀인들과 그들의 부인들, 그리고 빈궁들을 초청했다.1 술이 넘쳐 흘렀다. 사람들의 정신은 술에 빠졌고, 현실의 세계들은 아득한 곳에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느부갓네살 사후 23 년 동안에, 바벨론은 그 황금시대로부터 머나먼 곳에 떠내려가 있었다. (75.1)
 느부갓네살의 사후에는 왕위는 계속 용렬한 군주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의 아들에 윌므로닥(Evil-Merodach) (예레미야 51:31을 보라)은 보잘것 없는 인물이었다.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그의 처남의 손에 암살되었다. 그리고, 그 처남 자신은 4 년 후에 연소한 아들을 남겨둔 채 죽었다. 음모자들이 그 소년 왕을 암살했고, 그들은 그들 중의 한 인물인 나보니더스(Nabonidus)를 후계자로 내세웠다. (75.2)
 6 년 후에, 왕 나보니더스는 그의 수도를 바벨론으로부터 아라비아에 있는 오아시스의 도시 테마(Tema)로 천도했다. 그는 “그의 아들 벨사살에게 왕권을 넘겨 주고”2 바빌로니아의 수호신 인 마르둑(Marduk) 대신에 月神 신(Sin)을 섬기는 일에 전념했다. (75.3)
 월신을 경배하기로 작정함에 있어서,나보니 더스는 그 신의 여대사제(女大司祭)였던 그의 모친 혹은 조모의 영향을 받았다. 이 놀라운 여인은 놀랍게도 107세까지 살았다. 이 여인은 104세의 나이에도 설형 문자 비문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나의 시력은 또렷하고, 나의 청력도 최상의 상태이다 ∙∙∙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직도 나의 구미에 맞는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3 (75.4)
 나보니더스는 10년 동안이나 바벨론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인기 높은 바벨론의 신년 축제를 기념하지 못했다. 더우기, 그는 자신의 치세 기간에 바빌로니아의 지배층들에게까지, 일반 노동자들에 부과하던 노역(勞役)을 강요하였다. 이 외에도, 바벨론은 경기의 침체로 황폐되어 가고 있었다. 더불어 나보니더스의 인기도 폭락하고 있었다. (75.5)
 한편,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고레스) 대제의 세력은 가히 경이적인 모습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그는 메디아(Media) 왕국을 접수하고 먼 서쪽에 위치한 리디아(Lydia)를 합병했다. 나보니더스는 페르시아의 세력이 강화되는 것에 놀라 540년에 급히 테마로부터 바벨론으로 귀환하였다. 이미 폭락된 인기를 다시 수습하기 위하여 거창한 신년 축제를 바벨론에서 거행했으며, 그 밖의 여러 도시들에서 신상들과 여신상들을 모아 왔다. 그러나, 그는 지도급의 종교 지도자들과의 사이에 신학적인 불일치를 피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가 대중의 지지를 회복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75.6)
 그가 바벨론 북방 185 km(115 마일)에 위치한 오피스(Opis)에서 키루스(고레스)의 군대와 교전하고 있을 때, 바벨론에 있던 그의 백성들은 그를 반역했다. 전의를 상실한 나보니더스는 6.0. 539년 10월 10일, 바벨론 북방 80 km(50 miles) 있는 시파르 (Sippar)를 포기하고 남쪽의 보르십파(Borsippa)로 도주하였다. (75.7)
 그 사이에, 다리우스 휘하의 일부 병력은 신속하게 남쪽으로 전진하여 바벨론 성벽에 도달했다. (76.1)
 벨사살의 잔치에 수반되고 있었던 냉혹한 실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즉, 왕국은 사실상 몰락되었으며, 나보니더스는 도주해 버렸고, 적군이 이미 성문 앞에 다다라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76.2)
 그러나, 염려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바벨론 성벽은 높고 견고하였다. 그 성의 창고에는 양곡이 풍부하게 비축되어 있었다. 유프라테스 강의 깊은 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그 어떤 적들도 그 도시의 투항을 기다리다가는 결국 포위를 포기하고 물러갈 것이었다. 바벨론은 난공 불락의 성이라 하지 않았던가. (76.3)
 마치 타이타닉(Titanic) 호가 침 몰될 수 없는 것처럼. (76.4)
 술 기운이 무르익자, 벨사살은 주류를 담당한 궁정 관리를 불러 느부갓네살이 여러해 전에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취해 온 거룩한 기명들을 가져 오라고 명령하였다. 두렵도록 불경한 명령이었다. 연회 참석자들은 여호와께 바쳐진 기명에 술을 따라 그들의 신들 앞에서 축배를 들었다. 그때, 신비한 손하나가 궁정의 하얀 벽에 나타나 이윽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76.5)
 벨사살은 두렵고 놀라 사시나무같이 몸을 떨었다. 정신을 수습하여 글씨를 주목하였으나, 그 기별이 위협적인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뿐 그 정확한 내용을 알 길이 없었다. 박사들을 불러오라고 소리쳤으나, 그 음성은 자신에게조차도 가엾게 들렸다. (76.6)
 참으로 숨막힐 듯 두렵고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박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왕은 벽면의 글을 해석하는 자에게 “나라의 세째 치리자”의 지위를 약속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해석은 커녕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76.7)
 바로 그 때에, 왕비가 들어 왔다. 벨사살 왕의 왕비들은 이미 참석해 있었기 때문에, 이 때에 들어온 왕비는 고대 세계에 큰 존경과 힘을 가지고 있던 모후(母局)였을 것이다. 그 모후가 들어와 벨사살에게 다니엘을 부르도록 건의했다. (76.8)
 벨사살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보발(步檢)이 다니엘의 거처를 향해 떠나고 나자, 다시 무거운 침묵이 연회장을 압박하였다. 술에 취했던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 위대한 노선지자 다니엘이 들어왔다. 다니엘은 이 때 팔순의 나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노선지자의 “광채 나는 풍채”(단 10:8) 즉 아직도 윤기 나는 그의 피부와 탄력성 있는 걸음걸이, 그리고 명료하고 당당히 울리는 그의 음성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됨됨이는 그의 주변에 흔하게 자행되고 있던 방탕함과는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함부로 먹고 마시지 않기로 한 젊은 날의 결심에 대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인가! (76.9)
 다니엘은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하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생략했다. 그런 것은 벨사살의 임박한 죽음에 비추어 볼 때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는 이 암우한 군주에게 무례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말을 했다. 그 자리에 모인 귀인들 앞에서, 그는 지난날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교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사실을 상기시켰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신다고 고백하기까지 느부갓네 살 왕의 마음이 짐 승의 마음처럼 되지 않을 수 없던 자초 지종을 말했다. 그리고는, 표정을 바꾸고 엄정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단 5:22, 23) 그의 거룩한 기명들로 술을 마셨습니다. (76.10)
 “벽에 손가락으로 쓴 글씨”는 네 온사인의 불빛처럼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메네, 메네, 데겔 그리고 우바르신.” (76.11)
 다니엘은 이 글을 쉽게 읽었다. 그는 그 글을 해석하기에 앞서 잠시 멈추었다. (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