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19장 그분은 만민의 심판자-구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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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1)
 창세기 19장에서 천사들이 소돔을 방문하여 롯을 구출한 후에 소돔이 유황불로 멸망한다. (136.2)
 롯을 구원한 두 천사, 심판자-구원자 예수님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창세기 19:1-3).
(136.3)
 심판자 예수님. 두 천사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소돔성에 갔다(창 18:22). 천사들을 해치려고 온 도성이 광란으로 떠들썩하던 그 밤에 소돔의 운명은 완전히 결정되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 19:24-25). (136.4)
 갑작스럽게 심판이 소돔에 임했던 것처럼 죄악의 길을 추구하는 이 세상은 갑작스럽게 주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9-10). 그 때에 제사장과 어린양으로 죄인을 위해 중보하셨던 주님은 제자 요한이 계시 중에 본 백마를 탄 분처럼 심판자로 임하실 것이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136.5)
 구원자 예수님.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창 19:15, 29). (137.1)
 심판이 있기 전에 구원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천사들이 소돔으로 가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구원 받아야 할 의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청했다. 하나님의 본심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시다. (137.2)
 두 천사가 멸망할 도시로부터 롯이 벗어나도록 재촉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그분을 거절하여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예루살렘 도성을 위해 집중적으로 마지막 봉사를 하셨다. 그분은 불신의 도시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비통하게 우셨다(눅 19:41; 마 23:37-39). 주후 70년에 있을 예루살렘의 역사적 멸망을 보시면서 성안의 성도들이 구원 받을 길을 제시하셨다. 신자들은 징조가 이뤄질 때 뒤돌아보지 말고 산으로 신속히 도망쳐야 했고, 그 무서운 환난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발생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했다(마 24:15-21; 눅 21:20-24). (137.3)
 승천하신 주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중보하시는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시다. 주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동안에는 누구든지 소망이 있다. 죄의 길에서 돌이킬 수 있고, 성령의 감화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죄와 사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137.4)
 영적 바벨론의 갑작스러운 멸망. 종말론적 기별을 가진 세 천사는 신속한 행동을 요청한다. 예언적 안목에서 볼 때 바벨론은 이미 무너졌고(계 14:8) 하나님 백성은 그 죄에 참예하여 재앙을 받지 말고 신속히 나와야 한다(계 18:4). 고대 소돔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듯이(창 13:13; 18:20; 19:4) 현대 바벨론의 죄악도 그러하다(계 18:5). 한 순간에 소돔이 멸망했듯이 현대 바벨론도 그러할 것이다.(하루 동안에, 한 시간에, 계 18:8, 10). (138.1)
 롯의 처를 기억하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세기 19:26).
(138.2)
 결정적이고 급진적인 변화.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예수님의 말씀이다. 본절은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피신하게 될 때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와 연결되는 것으로(눅 17:31)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에 상응한다1(창 19:26). 그리스어 ‘에피스트레포’(ἐπιστρέφω, 눅 17:31)는 뒤로 돌다, 돌아가다를 의미한다. 롯의 아내는 소돔으로부터 도망치는 발걸음이었으나 소돔에 둔 집과 재산과 볼 일 때문에 마음은 소돔에 사로잡혀 영적으로 소돔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구원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개인적인 재산과 자아 추구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만을 따라가는 결정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2 (138.3)
 제자도. 예수님은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βλέπων εἰς τὰ ὀπίσω 블레폰 에이스 타 오피소)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눅 9:62). 이것은 롯의 처에 대한 언급이다. 누가복음과 칠십인역 창세기는 돌아보다를 뜻하는 동사 ‘블레폰’(βλέπων, 눅 9:62)과 ‘에페블레프센’(ἐπέβλεψεν, 창 19:26 칠십인역) 뒤에 모두 ‘에이스 타 오피소’(εἰς τὰ ὀπίσω)가 뒤를 향하여 이어짐으로 언어적 상관성을 가질 뿐 아니라 누가복음 10:12에 복음 전도자를 거절하는 문맥 속에서 소돔을 언급하여 주제적 상관성도 갖는다.3 복음의 초청과 복음전도자로서의 소명을 무시하는 것은 영생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말론적 위기 상황을 초래한다. (139.1)
 예수님의 모본. 예수님은 그분의 교훈대로 사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 후(마 16:16)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must go), 고난 받고(must suffer), 죽임 당하고(must be killed), 살아나야 할 것(must be raised)을 비로소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마 16:21). 그리스어의 부정사가 사용된 이 구절들은 모두 필연성, ~ 해야만 한다(one must, has to)는 뜻의 그리스어 ‘데이’(δεῖ)에 걸려 있다. 주님은 온 세상에 영생을 선물하기 위해서 십자가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인식하셨고 뒤로 물러나는 일이 없이 십자가를 향해 전진하셨다. 지금 우리는 영광의 왕국의 문턱에 서있다. 주님께서 목숨 바쳐 준비하신 그 왕국의 궁극적 실현을 목전에 두고 뒤로 물러가 멸망당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히 10:37-39). (139.2)
 참고 문헌
 1. 눅 17:31,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μὴ ἐπιστρεψάτω εἰς τὰ ὀπίσω(메 에피스트레프사토 에이스 타 오피소). 창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καὶ ἐπέβλεψεν ἡ γυνὴ αὐτοῦ εἰς τὰ ὀπίσω καὶ ἐγένετο στήλη ἁλό (카이 에페블레프센 헤 구네 아우투 에이스 타 오피소 카이 에게네토 스텔레 할로).

 2. David W. Pao, Eckhard J. Schnabel, ‘Luke,’ CNTUOT, 348쪽.

 3. 앞의 책, 316쪽.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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